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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욕망위에 세워진 탑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3:28 5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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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욕망위에 세워진 탑
이정호(인드라망 운영위원, 초록정치연대 비상위원 )


1. 2008년 거리시위를 밤 세워 보다!
참으로 묘한 기분이다. 거리 시위를 인터넷 티브이로 봤다. 그것도 소위 날 밤을 깠다. 새벽 새소리를 들으며 글을 쓴다.

종로2가 거리시위의 모습은 묘했다. 80년대 우리들의 경험과는 판이했다. 어떻게 전경과 저렇게 가까이서 시위를 이어갈 수 있을까? 80년대 그들은 바리케이터 너머의 존재였다. 2008년도에는 그게 없다. 서로 섞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금 여기저기서 소규모의 소란들이 진행되곤 했다.

두 번째로 이상한 것은 날밤세우는 시위모습이었다.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시위군중이었다. 거기에는 지도부가 없으니, 내적 통제도 안되었다. 그리고 경찰 또한 다수의 조직안된(소위 운동권이 아닌) 날 밤까는 시위군중에 대하여 대단히 적응안되는 모습이었다.

이 현상에 대하여 언론들이 두 패로 나뉘었다. 한패는 그 ‘어중이떠중이 시위군중’을 좌익세력에 세뇌된 폭도로 몰고 싶은가 보다. 그리고 한패는 그 시위군중의 에너지원이 ‘잘못된 정부정책’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앞의 패거리는 정말로 씨알도 안먹히는 소리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뒤의 패거리는 약간은 부족한 느낌이다.


2. 합법적으로 뽑혀진 대통령, 그리고 우리의 욕망을 정확하게 아는 대통령
전두환은 쿠테다 세력이었다. 그리고 군부였다. 태동부터 불법적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합법적으로 뽑혀진 대통령이다. 누군가는 민정당과 한나라당이 뿌리가 같다고 하고 싶겠으나, 그것은 옳지 않다. 민정당이 나쁜 것은 쿠테타 세력이기에 그러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

그 합법적인 대통령은 국민들이 자신을 뽑아준 그 공약대로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하니 사실은 현재 그 시위군중의 에너지원인 ‘잘못된 정부정책’의 근원은 우리 국민들이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자면 ‘3-40대의 서울사람’이 그를 대통령으로 뽑는데 1등공신이지 않나 싶다. 이러하니 사실 현재 ‘잘못된 정부정책’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3-40대의 서울사람들이다.

3-40대의 서울사람에는 나도 속한다. 나는 40대이고 남자이고, 서울에 살고 있다. 오늘날의 대통령은 바로 이 사람들의 '욕망‘에서 출발하였고, 그리고 이 사람들의 ’욕망‘위에서 존재하며, 이 사람들의 욕망이 무너지지 않는 한 영원할 수 밖에 없다.

그 욕망은 ‘더 좋은 아파트’와 나아가 그를 통한 재산증식, 또 증권투자를 통한 여유 있는 생활, 더 좋은 자동차는 기본, 나의 아이들이 행복해 지는 비결은 ‘자율적 사립고’로 가는 것, 조기영어교육이 험난한 인생길의 유일한 동반자, 우리나라가 부국강병이 되기 위해서는 한미에프티에이를 통해 체질을 강화해서 다른 나라에게는 우리가 미국입장에 서는 것! 등등 이런 것들이지 않나 싶다.

여하튼 혼자서 쎈놈이 되는 것이 장땡이라는 생각이다. 20대의 우리의 욕망은 ‘함께 잘 사는 사회, 옆에 놈 생각할 줄 아는 개인’ 뭐 그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현재의 대통령은 앞의 욕망에 바탕한 탑이다. 뒤의 욕망은 잊혀진지 오래이다. 그냥 젊었을 때 한번 가져봤던 열병과도 같은 경험일 뿐이다.


3. 우리 아이들이 묻고 있다. 당신들의 욕망을 채우려면 우리를 죽여야 합니까?
나의 선배와 나의 동료와 나의 후배들은 하나의 상처를 공유한 세대이다. 몇몇을 제외하고는 사회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사회로 밀려왔다. 지난 20년 동안 정말로 ‘뭐 빠지게’ 뺑이 돌았다. 한 번의 위대한 꿈(혁명이었다)을 꾼 대가 치고는 꽤 큰 상처를 감수해야 했다.

우리가 잘쓰던 말이 있었다. 우리들 후배와 우리들 후손에게는 이런 험한 세상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었고, 주변사람들에게 설득했다. 미래의 다음세대를 위한 위대한 사랑이었다.

사실, 우리세대는 나름의 힘든 시대를 지났다. 그리고 그 총명하던 우리들이 다음세대를 위해 마련한 것이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욕망들이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묻고 있다. ‘당신들이 당신들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나를 죽이고자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이 답을 찾는 행위를 이 시대는 ‘성찰’이라고 부른다. 지금 나에게는 그게 필요하다.

나의 욕망이 쌓아올린 그 탑은 무얼까?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 무력감과 주변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왠지 모를 불신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4. 욕망위에 세워진 탑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들 3-40대의 욕망위에 올려진 탑일 뿐이다. 그는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건설자본과 권력과 우리들’ 사이의 음험한 커낵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을 뿐이다. 단지 그 뿐이다. 그러나 그 커낵션이 유지되는 한 쇠고기는 수입될 것이다. 그리고 강제로 우리 아이들과 우리 후배들에게 먹여질 것이다.

그리고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GMO(유전자조작식품)이 우리들의 식탁을 점령할 것이다. 그리고 프랑케슈타인이 국익을 위해서라는 미명으로 현실화 될 것이다. 그 뿐이랴, 우리의 욕망으로 인해 없어질 우리의 농촌을 대신하여 몽고지역과 동남아에는 우리의 양식이 지워질 것이며, 그것을 지키기 위한 무장력 파견이 언젠가는 자연스런 현상이 될 것이다.

이미 우리는 대중교통 비슷한 함께 탈거리에 대한 꿈이 없다. 그저 우리들의 자동차는 열심히 굴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욕망을 위해서 우리들은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렇게 ‘새끼 제국주의의 길’을 가고 있다. 이제 누가 ‘일본 제국주의’가 나쁜 것이라는 ‘진실’을 지속적으로 진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문제는 나의 고백의 문제이다. 나의 성찰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 성찰에 입각하여 나의 가족들과 대화(우리들의 편리를 위해 너는 죽어줘야겠어!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이다. 나의 욕망, 우리들의 욕망에 충실한 대통령을 제대로 바꿀(?)수 있는 길은 그가 서 있는 우리들의 욕망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이 욕망을 바꾸는 길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이미 유럽을 중심으로 한 많은 나라에서 이 문제에 대한 대안은 연구되어 왔다. 그리고 이제 기술적으로 거의 완벽하게 대안에너지와 대안적인 먹거리에 대한 연구는 끝나 있다. 다만 우리사회는 이 대안을 정책적으로, 정치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있을 뿐이다.

그것의 큰 이유중에 하나가 우리들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상처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다시 보자 ‘원래 인간’은 죽어도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설사 그것이 또 한번의 아픔으로 이어지더라도 버릴 수 없는 숙명이 아닐까 싶다.

그를 바꾸는 것이 먼저가 아니다. 나의 그리고 우리들의 욕망을 바꾸어야 한다. 그 순서라면 반드시 길이 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우리가 쌓아 놓은 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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