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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동물의 대량 매몰과 쌀 한 톨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3:37 48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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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동물의 대량 매몰과 쌀 한 톨
 

남쪽 지방에서 시작해 방역당국의 막대한 살처분과 더불어 한풀 꺾였다고 생각되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발생이 다시 충청도와 경기도에서 보고되고 있어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미 국내 AI 소동으로 한 달 만에 380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매몰되었고, 매몰에 따른 현장 피해액과 보상액까지 생각하면 그 금액은 700여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기하급수적인 매몰 숫자는 예방적 살처분 정책에 기인한다. 비록 초기에는 그 효과가 인정되는 정책이기는 하나, 어느 시점에서는 집행에 신중한 검토가 요구되는 정책이다. 다행히 이런 지적에 따라 최근 지자체에서는 선별적 살처분 형태로 전환하고 있지만,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한편, 생명존중이라는 불교적 입장에서 볼 때 과거 사회재난이 선포되었던 구제역 사태와 더불어 늘 반복되는 이러한 생명체의 대량 매몰 상황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방역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무조건 대량 매몰하는 상황은 과연 누구를 위하고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물론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실시되는 사육동물의 대량 살처분이란 현장의 방법은 단순히 과학기술적 측면만 고려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 관점에서 생산성에 근거한 공장식 밀집 사육과 과학주의에 근거하여 사전 예방주의를 표방한 과도한 예방적 살처분, 그리고 선수와 심판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제대로 된 정책 마련을 피하고 있는 방역 조직, 더 나아가 대기업에 의해 길들여진 소비자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생명존중으로 착각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대의 생명집착과 불교의 진정한 생명존중과의 미묘한 혼재도 보인다.
 
결국 대량 매몰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이 문제를 위해 우리가 살펴보고 적절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경제적 관점과 생명생태적 사육 방식, 육식문화와 채식주의 입장이라는 양쪽 입장을 인정하고, 그러한 대립적 시각의 적절한 중간 지점 어딘가를 찾아내어야 한다. 육식문화와 대량소비가 일상적인 현실에서 우리사회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 반드시 불교적인 불상생으로만 가야 한다고 하는 것도 원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기에 생략하지만, 어쨌든 이번과 같은 사육동물의 대량 매몰 사태에 있어서 생산자와 관련 행정 부처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생각해야할 점이 있다. 값싸고 보기 좋은 상품으로서의 고기만을 찾는 이들이 건강한 규모의 생태축산, 더 가깝게는 순환유기축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생산자는 소비자가 원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기에 소비자의 건강한 식품에 대한 인식전환과 요구가 없이는 결코 지금과 같은 상황은 개선되기 어렵다. 어떻게 보면 지금과 같은 대량살처분 사태의 가장 근본적 대처방법은 소비자의 인식전환일지도 모른다. 동물이건 식물이건 다른 생명체를 소비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인간을 위해 죽는 생명체의 고통에 대한 인식 없이 건강한 축산식품에의 인식전환은 불가능하다.

소비되건, 소비하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임을 인정할 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적어질 것이고, 인간도 건강해진다. 그런 면에서 모든 존재가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는 것은 머리나 거창한 틀에서만 생각할 주제가 아니라 우리들 밥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쌀알 하나 아끼는 행위가 진정한 생명존중이자, 작금의 대량 매몰 사태의 방지를 위한 일상의 작은 실천이다.
 

우희종_서울대학교 수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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