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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시장 개방의 역사적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3:40 5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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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시장 개방의 역사적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쌀시장이 전면 개방되었다.

쌀시장 전면개방 문제는 갑자기 대두된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진행되어오던 것이 지난 7월 18일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쌀 관세화’를 선언하면서 표면화된 것이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껏 보여 온 대로 자신은 뒤로 숨은 채 그 선언이 가지는 역사적 무게에 대한 책임을 힘없는 일개 농식품부 장관을 앞세워 선언이라는 형태로 발표하면서 고율의 관세화로 쌀시장을 지킬 수 있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

 

그동안 여러 정부를 거쳐 오며 다른 나라들과 협상할 때에 다른 분야를 더 내주면서까지 버텨오고 지켜온 것이 쌀이다. 쌀은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이 이어온 우리 농업의 근간이며 주식으로, 우리에게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아온 것이었으나 이제는 골치 아픈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율의 관세화가 쌀시장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허구이다. 중국에서 3-4년 묵은 고미(古米)가 '찐쌀'로 한 가마에 2만 4천원에 수입된 적이 있고 또, 세계 각국에서 남아도는 싸라기들이 쌀가루 형태로 수입되어 국내에서 한 가마당 2만 원 정도에 거래되기도 했다. 이제 정부가 513% 관세를 매겨봤자 수입쌀 80키로 쌀 한 가마에 12만원 남짓 밖에 하지 않는 싼 가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그 관세율을 지키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그 513%를 방어하려면 다른 분야를 양보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쌀에 대한 관세예외가 인정되어 1995년부터 금년까지 두 차례에 거쳐 관세화유예 조치를 받았다. 그러나 관세화가 유예된 20여 년 동안 쌀과 관련한 장기계획이나 쌀 생산기반의 개선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시간만 끌어오다가 뚜렷한 대책도 없이 쌀 시장 개방을 선포한 것은 식량주권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예전 같으면 쌀시장 개방문제는 커다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텐데 세월호 사태 등 우리 사회에 워낙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틈을 타서 정부는 구렁이 담 넘어가 듯 은근슬쩍 넘어가고 말았다

 

쌀시장이 개방되어 값싼 수입쌀이 홍수같이 밀려오면 농민들이 쌀농사를 포기하게 될 것이고 쌀을 재배하던 농지에 다른 작물을 생산하게 될 터인데 그러면 다른 농산물의 동반하락이 예상되거니와 관개시설 등 한번 훼손된 벼농사 생산기반은 위기 시에 회복불능 상태가 되고 말 것이다. 긴 여름 장마가 있는 우리나라에서 논은 일시에 쏟아지는 그 엄청난 장맛비를 가두는 댐 역할도 하는데 그러한 환경. 생태적인 공익 기능도 사라질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쌀 문제가 마치 농업과 농민들만의 문제인양 호도하며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따돌리는데 성공한 듯이 보인다. 아무 것도 아닌 듯이 슬쩍 넘어가는 이 문제가 앞으로 가져올 피해는 우선은 농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겠지만 결국은 모든 국민들이 감당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때도 이것을 계획하고 결정한 사람들은 빠져나갈 것이고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침묵하고 있었던 대부분의 서민들은 피해자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농민과 농촌이 사라지는 이상한 나라가 될지 모른다.

농업과 농촌이 사라진 자리에 카지노와 호텔을 짓고 반도체공장이니 상업시설을 지어 장사하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인데 그런 사람들을 위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희망적인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 세월호 참사로 기업자본 지배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사회전반의 안전성 문제에 대한 관심

이 확대되었다. 그와 더불어 생태환경과 안전한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는 것 같다.

'쌀 없으면 인간 없고 인간 없으면 세계 없다' 는 말이 있는데 쌀을 생산하는 일은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만이 아니고 세계를 유지시키는 일이다. 깨어있는 시민과 현명한 농부들이 힘을 합쳐 이 어둠을 돌파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준권_인드라망전문위원, 전 정농회 회장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직업이 농업이라며, 자식들에게 당당하게 말하시는 포천 농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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