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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의 ‘광장민주주의’와 동네사람들의 ‘풀뿌리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3:29 57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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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의 ‘광장민주주의’와 동네사람들의 ‘풀뿌리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을까?
이정호(인드라망생협 상무이사, 불교생협연합회 운영위원장)


1. 촛불문화제 우리사회를 업그레이드 시키다.
촛불문화제가 50일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1년에 두 달 정도를 매일 우리나라 국민들은 광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말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그러나 그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고리타분하지 않아서이다. 가족단위의 참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광장에는 많은 정보가 생산되고 유통된다. 그 과정에서 광장 참여자들의 자기검열과 집단검열이 이루어진다. 자신의 정보와 다른 사람들의 정보가 광장을 통해 수렴되고 조절되는 과정을 통한다. 정보가 쌓여 의견이 되고, 그것이 점점 더 객관 사실을 충실히 반영되는 과정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우리들은 이 과정 전체를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있겠다.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피어나고 있다. 광장민주주의의 시대다. 광장민주주의는 눈앞에서 바로바로 민주주의를 볼 수 있기에 보다 더 학습효과가 직접적이다.

한 가지 부작용을 주의한다면 그렇다. 약간의 인내와 과정자체에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식견이 필요하다. 광장민주주의의 학습효과는 인내심과 과정의 즐거움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약이다.

의견의 다양성에 대한 인정, 다양한 의견에 대한 주의깊은 경청, 그 의견을 살찌우고자 하는 토론의 자세, 자신의 의견을 살 찌워나가는 적극성, 다른 의견에 대해 ‘짜증내지 않는 여유’, 이런 것들이 버무려져서 광장민주주의에 초대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뒤처지는 신세가 된다.

앞에서 뻔히 보면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진행된 ‘자유발언’의 행렬은 충격이었다. 2008년 5월과 6월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문화적 현상의 맨 처음에 그것이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 만들어 낸 온갖 형태의 악선동도 무력화 됐다. ‘배후론’은 서로들 배후라고 해서 의미가 없어졌다. ‘색깔론’도 워낙 색깔이 다양해서 없어졌다. ‘변질론’도 촛불문화제의 ‘진화론’으로 없어질 것이다.

2달간 이미 진행된 ‘광장민주주의로 학습된 사람들’은 앞으로 대한민국을 아름답게 만들어갈 것이다.


2. 광장민주주의를 80년대 정권민주화운동 방식으로 매듭짓지 말았으면 한다.
이명박정부의 광우병파동으로 시작된 흐름이 ‘미친교육, 미친의료보험, 미친공기업사유화, 미친공영방송장악’ 등의 5대 사회개혁과제로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급격히 ‘이명박정부의 퇴진요구’로 진화하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남겨진 4년 6월의 임기는 사실 개인적으로 생각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내가 싫다고 다수의 국민대중이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광우병파동으로 이명박정부는 7.4%대의 지지율을 보이지만, 그의 퇴진을 바라는 국민은 40% 정도이다. 아직도 50%를 넘는 국민들은 그의 퇴진을 원치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광우병대책회의’가 정권퇴진을 최대의 구호로 걸 때는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광우병파동을 확고히 매듭짓기 위한 ‘광장민주주의 운동’을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이 필요한 국면이다. 5대과제는 자연스럽게 그 과장에서 논의되고 토론될 것이다.

문제는 ‘광우병국면’에서 어떻게 ‘광장민주주의 운동’을 진척시킬 수 있느냐?이다.

이러한 물음에 나는 ‘쇠고기 협상고시’를 농림수산부 장관의 손에서 ‘국민’의 손으로 가져오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대답하고 싶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광장민주주의의 동력은 처음부터 ‘생명의 위협’에 대한 중고생들의 정당한 감수성이었다. 둘째, 그것의 두 번째 동력은 이 중고생들에게 미안함을 가진 3-40대의 직장인들이었다. 셋째, 세 번째 동력은 이 광장에서 진행된 5대과제등의 학습내용이 다시금 광장의 사람들에게 스스로의 발전동력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동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의 50%이상은 정권퇴진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사실은 ‘쇠고기 문제’에 대한 정부의 향후 대응 솜씨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그 지켜봄이 ‘쇠고기 정국’의 모든 과정에서 정부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쇠고기 정국의 마지막 과정인 ‘정부고시’를 ‘국민들의 고시’로 만드는 ‘국민투표운동’을 제안하는 것이다.

80년대의 정권민주화 운동은 태동부터의 ‘반합법적’인 정부권력을 대상으로 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광장민주주의 운동’은 합법적인 정부를 대상으로 한 운동이다. 따라서 합법적인 틀을 가지고 운동을 진천시키기 위한 방법이 창조적이며 지속적으로 제안될 필요가 있다.


3. ‘정부고시’를 ‘국민들의 고시’로 만드는 운동은 쇠고기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여전히 남는 문제가 있다. 과연 그 국민투표 운동이 쇠고기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이다.

장관을 대신하여 우리 국민들이 ‘협상고시’여부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는 의미가 크다.

그것에서는 국민투표의 주체들은 철저히 자신의 아들딸들의 안전성 여부를 가지고 투표에 임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무역보복’과 ‘아들딸의 안전’에 관한 ‘사회적 논쟁’에 정면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의 또 다른 학습이 시작될 수 밖에 없다. 과연 우리사회를 어떠한 사회로 향하게 할 것인가? 이런 물음이 지속적으로 물어질 수 밖에 없다. 우리들 집안의 ‘밥상’문제가 즉각적으로 최고의 정치문제로 불거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장제일주의’와 ‘친인척, 친구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부권력’을 추구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는 크나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정말로 자국의 농업을 포기하고, 자국의 먹을거리를 국제무역의 대상물로 헌납하는 정부는 식탁의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다.

이제 우리사회는 ‘노무현 시절’로 퇴행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명박정부 퇴진운동으로 촛불문화제의 동력을 유실시켜 가기는 너무 아까운 현실이 아닌가?


4. 중장기적 문제해결은 광장민주주의를 이어갈 ‘풀뿌리민주주의운동’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 우리사회에는 수천개의 풀뿌리조직들이 이미 존재한다. 그리고 먹을거리 운동의 최대 주체인 ‘생활협동조합’의 조합원들만도 40만에 달하고 있다. 필자는 ‘촛불문화제’의 주요동력중에 하나가 바로 지난 20여년간 ‘생활민주주의’, ‘밥상의 혁명’을 추구해 온 이 풀뿌리조직들의 숨은 노력들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광장민주주의의 현상에 대하여 뭔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들어보면, 의식이 아직도 민주-반민주로 ‘중앙정부’의 향방만을 문제 삼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의 방법론이 많이 들어 있는 것 같다.

필자는 ‘협상고시를 위한 국민투표’라는 방법을 통해 광장민주주의 운동을 지속시켜 가길 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광장민주주의가 우리사회의 모든 사회적 개혁과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6월 11일에 거리로 나온 100만의 인파가 자신의 동네로 돌아가서 조용한 혁명의 흐름을 지속했으면 한다. 그것도 하나의 단일사안이며, 한시적 운동인 ‘쇠고기정국’에 동참하는 방식을 넘어 섰으면 한다.

100만의 인파가 자신의 동네를 돌아보기 시작해 보자. 이미 자신의 동네에는 꽤 여러개의 풀뿌리 지역조직과 생활협동조합 그리고 자활기관과 생산자협동조합 등의 단체들이 존재한다. 이 단체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 단체들에 참여하면서 이 조용한 혁명은 또 한번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광장에서 그리고 동네방네에서 ‘안전한 쇠고기’를 위한 촛불문화제 운동이 벌어져 간다면 ‘협상고시’의 주체가 ‘정부’에서 국민들에게 올 것이며,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쇠고기의 안전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마도 이 과정에서 우리사회는 사회 전체적으로 우리가 사는 방식에 대한 깊은 성찰도 더불어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육식문화’ 자체에 대한 성찰과 반성도 함께 수반될 것이다. 

끝으로 강남에 있는 우리 인드라망 사무처 식구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점심시간에 광우병반대 산책시위를 함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냥 손팻말 들고 점심 시간이후에 일대를 걷는 거다.

함 해보면 처음에는 '쪽'팔리지만 자주 해보면 그것도 괜챦다. 이런 시도가 여러 시민사회단체로 확산되고, 주변 주민들이 점차로 동참하는 운동이 된다면 좋겠다. 광우병이 너무 광장에만 갇혀 있는 것 같다.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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