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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무너진다면...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3:58 6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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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무너진다면...

 


지난 8월 28일,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승인했다. 이미 2번에 걸쳐 부결된 뒤 3번째 신청의 결과다. 강원도 양양군이 2012년과 2013년 두 번에 걸쳐 제출한 신청서는, 환경성과 경제성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산양을 비롯한 멸종위기종의 서식지와 보존가치가 높은 나무들의 훼손이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주요 봉우리와 너무 가까워 탐방객으로 인한 훼손이 예상된다고도 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2015년 올해 계획서도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후퇴했다고도 할 수 있다. 케이블카 노선에서는 산양 흔적이 수두룩했고, 새끼 산양이 촬영되었다. 새끼를 낳고 기르는 번식지라는 의미다. 아고산대에 극상림, 곧 보전가치가 높은 식생들이 자라는 지역이다. 환경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케이블카가 들어

설 수 없다. 더군다나 양양군의 계획서는 "기존 탐방로와의 연계 금지"라는 기준을 위반하면서까지, 하산객이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경제성 검토 보고서는 처음부터 조작과 부실 투성이었다. 인건비도 안 되는 비용으로 책정한 것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

 

당연히 부결되어야 할 사업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1, 2차 때와 달라진 걸까? 바로 대통령의 한마디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기업의 민원을 수용해서 전국 산지에 대대적인 관광개발을 허용하려 하고 있다. 케이블카가 바로 그 시발점이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2014년 말, "설악산 케이블카를 평창올림픽에 맞춰 조기에 추진하라"는 한마디를 남겼다. 그러자 정부 부처들이 일사불란해졌다. 사업을 심의하는 환경부, 문화재청 등이 사업자인 양양군과 머리를 맞대고 계획안을 만들었다. 채점자와 수험생이 같이 시험지를 푸는 격이다. 그뿐이 아니다. 국립공원위원회는 유례없는 표결을 강행했다. 정부 측 인사가 과반이 넘는 상황에서 애당초 공정할 수 없는 표결이었다. 게다가 자격 없는 정부 측 위원까지 불법으로 회의에 참여해서 표를 던졌으니, 한마디로

정부는 케이블카사업 통과를 기정사실화 하고 밀어붙인 셈이다.

 

1965년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지켜온 설악산도 이렇게 대통령의 한마디면 빗장이 풀린다. 대기업 자본이 원하는 것이면 정치권력은 솔선수범해서 나선다. 그래서 남는 것은 무엇인가? 국립공원의 사유화다. 국립공원은 모두의 것이다. 양양군민만이 아니라 전 국민의 것이다. 지금 살아가는 세대만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의 것이기도 하다. 인간만이 아니라 산양, 하늘다람쥐, 분비나무, 까막딱따구리의 집이기도 하다. 하지만 케이블카는 소수의 이익을 위해 국립공원을 팔아넘기는 행위다. 누가 그럴 권리가 있으며 누가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우리나라 내륙국토의 단 4%만이 국립공원이다. 그중에서도 핵심인 자연보존지구는 단 1%에 불과하다. 그곳만이라도 자연의 몫으로 남겨두자는 것, 그래야 인간도 살 수 있다는 게 바로 국립

공원의 취지다.

 

설악산 케이블카의 환경부 허가 결정이 나자마자, 전국의 명산이 들썩이고 있다. 지리산, 신불산, 마이산, 소백산... 일파만파다. 지자체마다 산을 파헤쳐 돈벌어보자고 난리다. 예상하고 우려했던 바다. 하지만 우리 삶의 바탕을 무너뜨리면서 벌어들인돈은 과연 무슨 쓸모가 있는가? 인드라망의 구슬 어느 하나가 끊어질 때 전체는 무너지게 된다. 생명의 몫으로 남겨둔 1%가 무너질 때, 그다음 차례는 나머지 99%의 삶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문화재청과 산림청의 심의가 남아있다. 환경영향평가도 거쳐야 한다. 설악산을 지키는 것은, 전국의 명산과 국립공원, 나아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1%가 살아야 99%를 지킬 수 있다.

 


황인철_녹색연합 평화생태팀장

멸종위기야생동물 산양의 주서식지이자, 수많은 생명의 터전인 설악산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활동하는 녹색연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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