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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모모’를 기다리며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3:59 56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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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모모’를 기다리며


 

인드라망 홍보 활동가로부터 청년의 입장에서 우리 시대 청년문제를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고 잠시 망설였다. 왜냐면 사실 ‘청년’과 ‘N포 세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살지 않기 때문에 요청한 주제로 글을 쓸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지금의 청년들이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개인의 투정으로 치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은 청년은 정말 아프다. 그리고 그 어려움을 뚫고 취업했으나 회사-집을 오가는 것 외에 인생의 다른 부분에 여력을 쏟을 수 없는 청년도 아프다. 성인이 되었지만 독립할 수 없는 청년을 부양해야 하는 어머니, 아버지도 아프다. 아직 청년이 되지 않은 10대도 자신들을 위한 자리가 없을까 불안하고, 심지어 노인 빈곤을 걱정해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프다. 이 사회 구조 속에 함께 살고 있는 대다수가 아프고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청년‘만’의 문제로 한정 지어 생각할 수가 없다.


작년에 인드라망 대학의 독서동아리 모임에서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소설을 읽고 마치 지금의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모모》에는 시간 저축 은행의 회색 신사 이야기가 나온다. 회색 신사들은 사람들을 방문하여 제대로 된 인생을 사는 데 필요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일상에서 시간을 아끼라고 교묘하게 유혹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가 내린 결정으로 믿고, 자신, 가족, 친구들을 위해 여유롭게 사용했던 시간을, 돈을 벌기 위해, 중요한 인물이 되기 위해 아끼기 시작한다. 이미 1970년에 미하엘 엔데는 지금 우리 사회와 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미하엘 엔데는 말한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도 《힘》이라는 책에서 “시간은 무엇인가? 시간은 바로 삶이다. 시간은 생명이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당신 앞에는 돈을 벌어야 하는 24시간이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 앞에는 삶을 살아가야 할 24시간이 펼쳐져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십 대 초반에 1년간 비정규직 사무보조로 일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한 일은 전산에 전표를 입력하는 것과 서류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이 일이 대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허상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한 달에 한 번 주는 월급은 하루 8시간 동안 자리에 잘 앉아 있었다고 주는 돈 같았다. 그리고 난 이렇게 지내다 다 닳으면 금방 교체될 건전지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사는 게 지루했다. 시간이 삶이자 생명이라면, 난 매달 삶을 내어주고 한 달 치 목숨값을 받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미하엘 엔데의 우려를 넘어서서 우리 사회는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어놓겠다고 하는데도 취업이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취업문이 좁아지니 이 문을 통과한 사람은 다시 낙오되지 않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전 시간을 회사 업무에 쏟아 붓고 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대한민국 평균으로 살기 위해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청년의 삶이 올라가리라는 혹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은 자취를 감추었다. 남은 건 순식간에 빈곤 계층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이 ‘청년 취업과 N포의 문제’로 해결책을 찾을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경계를 확장하여 이 사회에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우리 모두가 불안과 두려움에 마비되어 이렇게 낮아진 삶의 질을 개인의 무능함으로 치부하고 계속 감당할 것인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모모》의 결말은 주인공인 ‘모모’가 시간 저축 은행의 금고에 저장된 시간을 모두에게 돌려주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 시대의 ‘모모’는 누가 혹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나는 기본소득제가 그 역할을 해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기본소득제가 우리에게 시간, 삶, 생명을 돌려주는 모모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럴 돈을 어디서 가져오나? 가능한가?” “힘써 일해야 할 젊은것들이 나랏돈으로 노력 없이 편하게 살려는 수작 아닌가?”라는 질문이나 의심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감히 주장한다. 우석훈은 《88만원 세대》에서 한국 자본주의가 급하게 달려오느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배우지 못했다면 이제 가르치면 된다.


지난여름, 산내에서 녹색당 하승수 위원장과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청년들이 함께한 기본소득 전국투어 팀과의 만남이 있었다. 하승수 위원장은 '기본소득'을 다른 이름인 '시민배당'으로 설명하며, 공공재(땅, 물, 바람, 전파 등)를 독점하여 돈을 버는 기업들이 당연히 그 이윤을 이 땅에 사는 모두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즉, 공공재를 이용해 돈을 번 기업에게서 배당금을 받는 것은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이야기했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예의를 배우지 못한 한국 자본주의에게 우리 시민들이 가르쳐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연구를 통해 계산해 본, 실제 가능한 기본소득은 1인당 월 40만원. 이제 당신에게 질문 하나를 남기고 싶다. 당신이 청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기본소득에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당신은 매월 40만원의 시간, 삶, 생명이 돌아온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참고도서]

1) 미하엘 엔데 『모모』 비룡소, 1999. 98쪽

2) 틱낫한 『힘』 명진출판사, 2003. 98쪽

3) 우석훈 『88만원 세대』 레디앙, 2008. 204쪽

 

 

김한나_인드라망대학 1기 학생으로, 유명유실(有名有實)한 삶을 살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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