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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권리, 기본소득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06 59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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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권리, 기본소득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은 아주 간단하다. ‘노동을 하든 하지 않든, 재산이 많든 적든 조건 없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소득’이 기본소득이다. 2016년부터 경기도 성남시가 1년에 50만 원씩 만24세 청년들에게 ‘청년배당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것도 비록 액수는 적지만 ‘부분 기본소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 여기저기서 기본소득이 대안이라고 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서부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활동하는 환경운동가까지. 그리고 귀농한 농민에서부터 비정규노동운동을 하는 청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사회에서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친숙한 것은 아니다. 또한, 소득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기본소득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생각이 많은 사람의 머릿속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광주에서 기본소득에 관한 행사가 열렸는데, 현수막을 보고 찾아온 청년이 ‘최저임금’에 관한 얘기를 하는 줄 알고 왔다’고 한 것이다. ‘소득=임금’이라는 생각이 박혀 있어서 그랬을 것 같다. 농민이나 노동자 중에서도 기본소득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하는 분들이 있다. ‘일도 안 했는데 돈을 주는 것은 반대’라고 말하는 농민을 만난 적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서 한번 벗어나 볼 것을 제안 드리고 싶다. 기본소득은 어쩌면 우리 모두의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기본소득이라는 단어가 별로 마음에 안 들면 ‘시민의 자격으로 받는 배당(시민배당)’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사실 노동을 해야만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지금도 부동산이나 금융재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노동과 관계없이 많은 돈을 벌고 있다. 이런 비(非)노동 소득을 모두에게 보장하자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이미 대한민국에서도 노동과 관계없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받는 돈들이 생겨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양육수당을 받고 있고, 만 65세 이상 노인 중 70%는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지금 받는 돈들에 어느 정도의 조건이 붙어 있다면, 기본소득은 그 조건을 걷어내자는 것일 뿐이다. 조건 없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돈(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배당’은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다. 배당은 일정한 지분(몫)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받는 것이다. 주식회사의 주주나 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배당금을 받는 것은 회사나 조합에 대한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자격으로 갖는 지분이란 무엇일까? 

한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이면, 누구나 그 사회의 공유재(공동재산)에 대해 일정한 지분이 있다. 물, 바람, 공기, 태양, 천연자원 그리고 땅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존재해 왔다. 이런 공유재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실을 보면, 이런 공유재를 이용해서 몇몇 기업이나 개인들이 많은 이익을 누리고 있다. 그 이익 중 일부는 세금 등의 방법으로 걷어서 고르게 배당금으로 나눠주는 것이 철학적으로 옳은 일이다.

자연적인 공유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 금융시스템, 방송주파수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공유재도 있다. 이런 공유재들은 특정한 사람들만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여기로부터 나오는 이익을 특정한 사람이나 기업만이 독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에도 사회공동체의 몫이 있다고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기업을 창업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이 돈을 번 것은 자신이 잘난 덕분만은 아니다. 인터넷망을 구축한 사회적인 투자가 있었고, 과거로부터 축적되어 온 지식ㆍ정보의 덕이 있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허버트 사이먼은 개인이 버는 소득의 90%는 그 사회공동체가 가진 공통의 자산 덕분이라고 보고, 소득의 70%는 세금으로 걷어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았다.

이처럼 기본소득은 사회공동체의 구성원 자격으로 받는 시민배당이다. 이 배당은 본래의 자기 지분에 대해 배당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소득을 재분배 받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것은 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소득은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소득은 정치적으로 결정된다. 노동자들의 임금은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거나, 최저임금법에 의해 결정된다. 

농민들의 소득은 그 국가의 시장개방수준과 농가소득 보장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많은 농민이 부족한 소득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농민들의 탓이 아니다. 시장개방을 하면서 농산물 가격 수준이 낮게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고, 그런 상황인데도 정부가 농민들의 소득을 직접 보장하는 정책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 농가소득의 경우 절반 이상이 국가로부터 받는 직불금이다.

지금 노동자들의 상황을 보면 기존의 임금소득만으로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노동자들의 협상력이 점점 더 약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비정규, 저임금 노동자들은 아무리 노동조건이 나빠져도 파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파업을 하면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적용해서 당장 먹고 살길이 막연해지기 때문이다. 만약 노동자들에게 시민배당이라는 비노동소득이 보장된다면, 노동자들은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농민들에게도 기본소득은 절실하게 필요하다. 지금까지 정부가 찔끔찔끔 직불금 제도를 도입하긴 했으나, 농민들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그나마 있는 농업예산도 엉뚱한 곳에 쓰이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소농에게도 실질적 혜택이 돌아가는 소득보장 정책이다.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이 필요하다.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산업과 삶의 방식을 더는 유지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지금과는 다른 경제, 다른 삶의 방식을 찾아 나가야 한다. 그것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올해 6월 5일 스위스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국민투표가 치러졌다. 비록 투표한 사람의 76.9%가 반대표를 던져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방안은 부결되었다. 그러나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국민투표를 추진했던 사람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스위스만이 아니다. 핀란드에서는 집권당이 기본소득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 차원은 아니지만, 지역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도입 또는 실험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모든 주민에게 매년 석유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배당금을 지급해 왔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시는 최근 100명의 주민에게 월 200만 원을 지급하는 실험을 시작한다고 한다. 

대한민국이야말로 기본소득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회이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면, 기본소득을 요구하자. 그것은 모두의 권리이다.


 

하승수_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변호사였지만, 10년째 휴업중이다. 시민운동, 대학교수같은 일을 거쳐 2011년 여름부터 녹색당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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