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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생명운동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08 68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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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생명운동 

 


메르스갤러리 이후 미러링(거울에 비춰 남성이 쓴 언어를 되받아치기)으로 인해 최근 여성혐오(미소지니)를 둘러싼 자리가 뜨겁다. 십 수년 동안 남성들이 여성을 혐오했던 사이트와 언명들은 아무런 저항 없이 유통되었지만, 남성을 비난하기 시작하자 대대적인 반격을 당한 것이다. 일부 여성들은 신상이 털려 고소를 당하고 성매매 사이트에 올려져 하루 수십 통의 폭언과 비난 전화를 받고 한 만화작가는 ‘여자는 왕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티셔츠를 구매했다는 이유로 계약 해지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SNS도 잘 안 하고 한 발 떨어진 많은 사람은 혐오란 표현이 불편하고 아무리 가부장제가 문제 있긴 하지만 ‘미러링’도 나쁘다는 양비론을 취한다. 어떤 정당은 ‘남자 여자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자’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양비론이 마음 편하긴 하지만, 혐오는 약자가 강자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면 흑인이 백인을 혐오한다거나, 노동자가 자본가를 혐오한다거나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혐오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가부장제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워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인식하기 어렵다. 여성차별은 여성살해와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등 눈에 잘 띄고 범죄시되는 폭력부터 여성을 성상품화하고 대상화하는 것, 성별분업을 정당화하고 유지하는 것,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고 비가시화 하는 것, 여성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 것 등 그 형태가 다양하다. 보통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문제라고 인정하지만, 집에서 여성만이 가사와 육아를 하는 것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민운동하는 남성조차 집안일을 ‘도와준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여전히 집안일이 자기 일이 아니라는 인식과 여성의 일은 집안일이어야 하고 여성의 직업은 ‘반찬값 버는’ 하찮은 일이라는 사회 인식이 남아있다.

 

그러나 지금 여성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밤에 외출하면 안 되고 결혼을 하면 살림과 육아를 위해 자기 일을 포기해야 하고 어디서든 꽃이어야 하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어쩌면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아야 하는 세대는 이제 끝이 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아직도 남성들의 의식은 여성에 대해 ‘어머니의 추억’에 머물러있다. 그것이 오늘날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민낯이다.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사건의 가해자는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살해했다고 말했으나 정부는 애써 조현병이라는 한 개인의 일탈 행위로 치부했다. 혐오살인을 인정하고 성차별 사회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왜 우리 사회는 그런 조현병 환자가 발생하는가를 성찰하는 것이 이렇게도 힘든 일일까. 가해자가 살아왔던 생애에는 우리가 만들었던 사회가 거울처럼 담겨있다. 미루어 짐작건대 무시당하고 실패하며 모멸감을 느끼며 살았겠지만, 개인으로서는 사회의 시스템에 어떻게 저항할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에 온 여섯 명의 남자들을 보내고 일곱 번째 여성을 골라 살해했다. 그에게는 가장 약한 타자였던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무시했지만, 어떻게 여성마저 나를 무시할 수 있을까. 여성은 어머니처럼 언제나 밥과 따뜻한 위로를 주는 존재여야지 나의 경쟁자거나 나를 무시하면 안 되는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포스트잇을 붙이며 여성혐오를 멈추라고 애도한 여성들은 그 남성에 대한 비난이 목적이 아니었다. 한국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멈추고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절규한 것이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기대와 절망에 따른 폭력적 대응은 90년대 말 한 대학 잡지에서 예비역에 대한 글을 쓴 여성들에 대해 전국의 예비역들이 단결하여 사이버 폭력을 행한 ‘월장’ 잡지 이후 본격화되었다. 이후 여성들은 온라인 속에서 무수히 비난받아왔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명품을 좋아하고 더치페이를 하지 않는다 하여 된장녀, 김치녀 취급을 받았고 결혼을 하면 김여사 취급을 받았다. 일부 여성의 모습은 모든 여성을 폄하하고 비난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여성들은 개념녀가 되기 위해 더욱 몸을 사려야 했다. 2000년 이후 강력범죄의 80% 이상은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되었고 ‘여성의 전화’ 통계로는 3일에 한 명씩 남편과 남자친구, 아는 남성들에게 살해당하고 있다. 살해와 폭력의 이유가 무시해서, 헤어지자고 해서, 어제 반찬을 또 내놓아서... 등이다.

 

여성폭력이 법으로 금지되자 미디어를 중심으로 여성혐오 발언이 확대되었다. 실업 및 사회적 위험의 증가로 인해 청년세대가 자기 세대의 여성들이 군대를다녀오지 않고 취업 시장에서 자신과의 경쟁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다는 피해의식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그 청년세대에는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IMF 이후 가장 먼저 해고되고 비정규직이 되고 저임금에 시달리고 결혼이나 출산으로 가장 먼저 피해자가 되는 여성이 고려되고 있지 않은 것이다. IMF 이후 첫 노사분쟁이었던 현대차 노조가 여성식당노동자들의 비정규직화를 결정하고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사회 위기를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그리고 더 약자인 나이든 여성에게 전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고통이 가장 낮은 이에게 흘러간다는 법칙 말이다.

 

인드라망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이다. 우리가 잊고 지낸 가장 소중하고 회복해야 할 사상의 핵심이 바로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이다. 우리는 자연과 연결되어 있고 태어나 서로 의존하며 살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관계망 속에 있고 동시에 남성과 여성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 연결 모두가 실패했음을 뼈저리게 인정해야 한다. 지난 시대 성장과 개발중심의 한국사회는 이 연결 모두를 철저히 반사회적으로 끊어냈다. 이 글을 쓰는 오늘 백남기 농민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한국사회 정치에서 농업은 언제나 자동차와 스마트폰보다 하찮은 것이었다. 정치인들에게 삶의 절박한 문제들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평화 대신 응징만이 난무하다. 4대강은 4급수에서나 사는 갯지렁이들로 고여 썩어가고 있고 핵발전소가 밀집된 경주 지역에 지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것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생명의 가치를 말하고 ‘연결’을 말할 때조차 남성과 여성이 맺고 있는 관계는 깊이 성찰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생명운동이 진지하게 질문해야 할 것이다. 태아에 있을 때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셋째 딸은 죽어야 했던 지독한 남아선호가 지금은 사라졌는지, 여성의 절반 이상이 성폭력의 경험이 있고, 소라넷과 같은 사이트에 수백만 명이 접속하여 누군가 돈을 벌고 포르노 문화와 성매매 문화가 만연한 사회, 동일한 일을 해도 남성의 60%밖에 임금을 받지 못하는 사회, 일하는 여성이라도 가사와 육아는 여전히 여성의 몫인 이 변하지 않는 가부장제의 공기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올해 설거지는 시아버지가 다 해주마’ 지난 추석 때 진도군의 의신면 이장단이 내건 플랭카드는 우리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할 일을 생각해보게 한다. 도시와 농촌과 세대를 뛰어넘어 성찰할 무수한 자리들. 오늘 아침밥은 누가 지었는가. 오늘 저녁 된장찌개의 된장은 누가 콩을 심어 거두었으며 누가 그 콩을 삶아 메주를 쑤어 소금물을 붓고 오랜 시간 기다려 얻었는가. 오늘 쓴 수건은 누가 만들었고 누가 빨았고 이부자리는 누가 햇볕에 말렸는가. 우리는 하루하루의 삶을 누구에게 의탁하며 살고 있을까. 자연과 일하는 손, 그리고 여성에게 의존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돌봄은 여성들만의 몫이 되어선 안 된다. 기울어진 이 돌봄의 연결망에서 여성들이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생명운동이다.

 

 

장이정수_여성환경연대공동대표

여성의 관점에서 생태적 대안을 찾고 지속가능한 녹색사회를 만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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