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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림 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야 정부도 나라도 산다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19 63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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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뭇거림 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야 정부도 나라도 산다



불교교리 가운데 일상적인 시민윤리로 해석해도 무방한 것이 적지 않은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성제(四聖締)입니다. 사성제의 고(苦)와 집(集)은 문제와 문제의 원인을, 멸(滅)과 도(道)는 문제의 해결(혹은 비전)과 문제 해결의 방법을 의미합니다. 두 쌍은 각기 인과관계를 이룹니다. 집이 원인이 되어 고가 발생하고(집➜고), 도가 원인이 되어 멸이 발생합니다.(도➜멸)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이,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고, 여러 노력을 기울여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치로는 알기 쉽지만, 실천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원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문제를 규정하거나, 문제 해결의 원인이 아직 제대로 지어지지 않았는데도 해결된 상태를 기대하는 오래된 습관 때문입니다.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관념으로 진단하고 헛된 기대를 하면 실패와 오류를 반복하게 됩니다. 반야심경에서는 이를 전도몽상이라 했습니다.


벚꽃 대선이 끝난 후,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뜨겁습니다. 대통령의 탈권위적인 모습을 보며 시민들은 마치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듯 기뻐하고 뿌듯해합니다. 소탈하고 격의 없는 모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극명하게 비교됩니다.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국민을 대하는 태도인 듯합니다. 박 전 대통령 또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생각했을 터이지만, 국민과 눈을 맞추며 소통하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장벽을 치고 권위를 지키는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 대통령이 보여주는 수평적 리더십은 지난 촛불시민혁명 과정에서 시민들이 만들어낸 광장민주주의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대통령도 잘못하면 처벌받아야 한다’라는 놀라운 평등의식과 탈권위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대통령을 끌어내렸고, 망설이는 국회와 헌법재판소까지 움직여 권력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애증의 상징인 아버지 박정희의 유산까지 물려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이 무너짐으로써 2대를 통해 형성된, 거의 신화에 가까운 권위가 무너졌습니다. 이제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과거와 같은 초법적 권위를 갖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을 지탱하던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하향식 문제 해결 관행은 종언을 고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사성제에서 멸(滅)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道)라는 원인이 반드시 지어져야 하듯이 평등이 권위주의를 대체하고, 직접민주주의가 엘리트주의를 대체하고, 수평적 의사소통이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을 대체하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공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최소 수십 년 이상 뿌리내려온 기존의 질서를 뛰어넘는 담대한 구상과 신념도 필요하고, 기득권층의 저항도 뚫고 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시행착오도 불가피할 것입니다.


내임기간에 결실을 거두려는 것도 과욕입니다. 아마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성 질서의 문제점을 잘 드러내고, 변화되는 시대에 맞게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대로 세우는 정도만 해도 대성공일 것입니다. 대통령이 이렇게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갈 때 시민들도 진정한 희망으로 기쁘게 함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지난해 촛불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촛불은 탈권위적 평등의식, 민주 의식과 함께 평화라는 가치를 전면에 등장시켰습니다. 백만이 넘는 시민들이 평화로운 방식을 지키기 위해 서로를 독려하며 끝까지 저항하는 기적적인 장면을 만들어냈지요. ‘폭력’이라는 과거의 프레임은 평화의 촛불 앞에서 무력하게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어떻게 하여 세계가 놀랄만한 평화가 가능했던 것일까요? 그 원동력은 광장에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문제를 다루는 태도’에서 나왔습니다. 시민들은 자신의 생활 영역을 박차고 광장에 나와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국가적 문제를 풀기 위해 놀라운 평등의식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과정에서는 차이의 존중이 돋보였습니다. 태극기 부대까지도 용인하는 성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광장에서는 나이, 성, 직업과 같은 기성의 질서를 뛰어넘어 각자가 존귀한 인간으로서 연대하고 소통하였습니다. 어린 고등학생들의 의견에 어른들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광장에는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전환의 에너지들이 마음껏 분출되었습니다. 거기서 우리는 기성의 질서를 대체할 희망의 동력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문 대통령은 당선되면 촛불 정신을 받아 안겠다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전환의 징후를 읽고 있는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광장에 모인 촛불의 힘에 대한 단순한 추종이어서는 곤란합니다. 중요한 것은 촛불의 함의를 제대로 읽는 것입니다. 탈권위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선공후사의 자세로 차이를 존중하며 평화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다루어 가야 하고, 이렇게 문제를 다루는 사회적 태도를 성숙시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 각 영역에서 실질적인 전환의 길을 하나하나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풀어가야 할 국정과제들은 대부분 해묵은 것들입니다. 기존의 시스템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것들이므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작은 조직에서조차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관성을 벗어나기 쉽지 않은 법인데, 국가적인 제도와 구조, 사람 모두가 바뀌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민 또한 대통령 하나 바꾼다고 해서 기존의 질서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끈기 있게 변화를 주문하고 지켜봐야 합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길을 내는가에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특히 견해가 다른 이들,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과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저 사람들은 어차피 반대할 것이라 예단하고, 아예 소통조차 않았던 이전 정부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계는 한계대로 인정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대로 먼저 사과하고, 상대의 견해를 진심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내 편으로부터 욕먹을 각오도 기꺼이 해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는 한 저성장과 양극화, 북핵과 한반도 평화, 민주주의 심화 등 안팎으로 산적한 현안들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기존과 같은 차원,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다뤄서는 비슷한 결과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임기 초에 새로운 길이 열리지 않으면, 제대로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적당히 지지자들을 위무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것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타고 있습니다. 한눈팔고 머뭇거릴 틈이 없습니다. ‘적대적 공존’이라는 과거로 회귀하고픈 안팎의 유혹과 관행을 물리치고, 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합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와 기대가 있습니다. 임기 초반 작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내는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준엄한 촛불의 준엄한 명령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오솔길이라도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전환의 과제들은 그 길 위에서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정웅기_생명평화대학 운영위원장

지리산 실상사 생명평화대학에서 청년들과 공부하며 새로운 사회, 길에 대한 모색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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