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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려내고 제거하는 변화에서 함께 바꿔 나가는 변화로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24 64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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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려내고 제거하는 변화에서 함께 바꿔 나가는 변화로



적폐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을 의미합니다. 폐단이라 하면, 어떤 일이나 행동에서 나타나는 옳지 못한 경향이나 해로운 현상을 일컫습니다. 이 안에는 분리, 배제, 단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모든 행위가 다 옳을 수는 없고, 각자가 지닌 가치에 따라 그 행위에 대해 평가를 달리할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이나 세력을 적폐라고 이름 붙이고 도려내고 제거하는 방법에는, 갈등과 싸움이 전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법(률)이나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나 경향을 벌해서 없애는 일은 마땅히 해야 할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적폐’ 또는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미디어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낯선 이 낱말이 우리 귀에 익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공공의 언어로 적폐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인 걸로 압니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박 전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오랜 세월 사회 곳곳에 누적된 적폐를 개혁하겠다’라고 하면서 쓰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정치권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말인 셈입니다. 과거 ‘정의사회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만들어 버린 경험이 잘 말해주듯, ‘적폐청산’ 또한 정치적인 언어로의 성격이 강해지면서 또 다른 적폐를 쌓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우리 마음속에는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암 덩어리)을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허상이 함께 자라납니다. 적폐의 등장 배경에는 이처럼 ‘다른 이’를 겁주고 길들여서 질서를 잡겠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 의도가 없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언어가 함의하고 있는 것

언어는 그 나라의 현재를 반영하는 척도입니다. 언어에는 정치․사회성이 함의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적폐라는 표현은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이편과 저편, 우리 편과 다른 편, 옳고 그름이라는 구분 짓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적폐는 또 다른 적폐를 낳으며 되풀이됩니다.


그리고 적폐라는 낯선 낱말은, 보통 사람들과 적폐 사이에 기나긴 거리감을 주기도 합니다. 적폐청산은 나 자신, 나아가 우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힘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언어가 되게 하는 경향이 커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언어를 고르는 일에 신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그 해결 방법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적폐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표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불교에서 사용하는 표현 가운데 ‘저마다 공동으로 선악의 업을 짓고 공동으로 고락(苦樂)의 인과응보를 받는 일’을 의미하는 ‘공업(共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나 역시도 문제를 일으킨 데 책임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반면, 적폐는 누군가를 분리, 희생시킴으로써 사람들을 결집하는 효과로 쓰이는데, 이는 그 책임으로부터 나 자신은 떼어놓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습관화되거나 관행화된 어떤 것이 따지고 보면 적폐에 해당하지 않을까요? 개인을 놓고 보면 선입견이나 편견 등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유로워져야 하고, 사회로 보면 좀 더 살기 좋은 공동체로 거듭나는 것인 셈이지요.


그래서 불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적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내 안의 씨앗이 잘 자라거나 조금 덜 자랐을 뿐입니다. 이 씨앗이 잘 자랐다면 모든 존재-요소가 거기에 이바지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공동의 선악과 고락으로 맺어진 ‘공업’인 셈이지요. 이를 전제로 두고 이야기한다면 지금의 사회 상황을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적폐 새로운 적폐를 낳다

적폐로 인한 갈등은 우리 사회 안팎으로 다양하게 있습니다. 나는 또는 우리는 빠져 있는 적폐청산은 갈등을 불러오기 쉽습니다. 적폐로 지목된 쪽에서 ‘그러는 너(희)는 깨끗하냐’는 식으로 버티며 힘 싸움으로 전개되어 진흙탕 싸움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제3자인 국민들 눈에는 정치 혐오만 남습니다.


최근 ‘언론 적폐청산’, ‘언론 정상화’를 요구하며 공영방송이 동시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10여 년간 켜켜이 쌓인 언론 적폐를 청산하고 언론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투쟁에 들어간 것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영방송의 사장단 임명과 관련해 벌어지는 갈등은 여러 갈래로 편을 나누며 전개됩니다. 우리가 관념적으로는 한편이라고 해도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견고하지 않은 공동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기존 공동체의 제도가 민주적이고, 공동체성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면, 조건이 바뀌어도 공동체 외부에서 쉽게 사람이 들어오거나 다양한 갈래로 편이 나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튼튼하지 않은 현재의 공동체는 이편과 저편으로 나뉘고, 서로를 적폐로 바라보게끔 하는 상황을 쉽게 만들었습니다. 적폐를 청산하기 위해 모인 구성원 사이에서 새로운 적폐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적폐청산’은 언어 선택에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선과 악을 나눠 어느 한쪽을 제거하겠다는, 근대 이후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생각의 틀에 갇혀 있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적폐 청산이, 모두가 바뀌어 가자는 공동체 운동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한 때인 셈입니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우리는 그간 적지 않은 세월을 이편과 저편으로 구분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대립과 갈등의 순간은 공동체뿐만이 아니라 개개의 마음속에서도 매 순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좋지 않은 쪽으로 마음이 움직일 때를 정확하게 바라보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불교적 관점으로 갈등을 해결한다고 할 때, 그것은 모두가 성장하는 방향-화쟁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고자 함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역시나 실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힘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저마다의 씨앗을 품고 나온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존재인 나의 생명이 평화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의 생명 또한 평화롭고 행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외따로이 떨어져 살 수 없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존재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각자가 지닌 마음의 씨앗에 생명평화의 물을 계속해서 주어야 합니다.


 

글_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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