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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26 66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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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전쟁을 피할 수 있을까



작년에 슬로라이프 운동으로 유명한 쓰지 신이치 교수의 초청으로 동경에서 ‘생명평화사상’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교수로 있는 도쿄메이지가쿠인대학의 한 동료 교수를 소개받았다. 자그마한 여성인데 일본에서 시리아 내전 상태를 알리기 위해 세미나를 열고 사람들을 조직하는 등 동분서주한다고 했다. 그분은 직접 만든 커다란 시리아 내전 포스터를 건네주었다. 여행 옷차림으로 이동 중이어서 난감했지만, 이 분의 노고를 무시할 수 없어 포스터를 두 번이나 접어서 한국으로 가져왔다.


명색이 대학원에서 제3세계를 전공했다는 사람이 사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자책하던 차에 우연히 내셔널지오그래픽 TV에서 ‘이슬람 국가(IS)’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시리아 내전이 어떻게 촉발되었고 이후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다룬 현장보고였다. 철저히 미국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상이지만, 사태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전쟁의 참혹함이야 누구나 알 테지만, 시리아 내전만큼 처절하고 복잡한 내전은 유례가 드물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아랍의 봄’에서 촉발되었다고 한다. 한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벽에다 ‘독재자 물러가라’고 쓴 낙서가 빌미가 되었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극적인 뉴스를 만들어 내기 좋아하는 기자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사건을 조작했다는 뜻이 아니라 특정 일화를 끄집어내 기승전결을 가진 사건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아랍의 봄’ 자체가 미국이 뒤에서 사주한 음모라는 견해도 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엄청나게 다양한 투쟁 주체들이 생겨났고 이를 후원하는 외부 세력 또한 그만큼 많아졌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다. 피아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복잡한 전쟁 마당은 결국 미국과 러시아의 힘겨루기 사이에 ‘이슬람 국가’가 끼어 있는 구도로 진행된 모양새다. 이 내전으로 지난 6년 동안 시리아 인구의 절반이 ‘난민’으로 전락하였고 50만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집안싸움을 해결하려고 외세를 끌어들였는데 집이 그만 거덜 나 버린 꼴이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시리아 내전을 보며 이런 공식을 끌어 낼 수 있다. 첫째, 먹이가 있는 곳에 내부 갈등이 있으면 반드시 이를 이용하려는 외부 세력이 존재한다. 둘째, 내부 갈등 수준이 높을수록 외세가 이를 이용하기 쉬워진다. 셋째, 외세를 한번 끌어들이면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는 한 이를 다시 물리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넷째, 외세가 많이 개입할수록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진다. 다섯째, 어느 한 외세가 압도적이지 않는 한 갈등은 절대 해소되지 않는다. 여섯째, 폭력적 갈등의 시간이 길어져 더는 투자로 이익이 나올 수 없음이 확실해질 때에야 갈등 봉합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불행하게도 지금 한국은 이러한 공식이 적용될 만한 가장 유리한 땅이 되어 가고 있다. 일단 남한 내부의 갈등과 남북 간 갈등이 한국전쟁 이후 최고 수준에 올랐다.


시리아 내전이 휴전을 모색하는 사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은 단연 한반도이다. 북한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장거리 핵 미사일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여 남한이 독자적으로 핵을 가지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들여와야 한다는 주장이 연일 터져 나온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제멋대로 전쟁 시나리오를 써 대지만, 핵전쟁의 예측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다. 아직 인류는 핵을 가지고 싸워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는 패배가 확실한 상태에서 종지부를 찍는 의미로 핵폭탄을 썼을 뿐 핵전쟁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핵전쟁이 벌어지면 초장에 전쟁이 끝나리라 예측하지만, 내가 보기엔 절대 그렇지 않다. 핵폭탄으로도 잠재울 수 없는 내부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남한 땅에는 1000년 동안 지속되어 온 호남과 영남의 지역 갈등이 있고, 100년 권세를 누려 온 친일파 문제와 70년 된 분단 갈등이 있다. 전쟁이 벌어지면 남쪽은 우파와 좌파, 자주파로 나누어진 위에 지역 및 종교 간 갈등이 더해지고 여기에 외세까지 개입하여 매우 복잡한 분파가 만들어질 것이다. 북한 역시 일당독재라지만, 드러나지 않은 다양한 분파들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시리아도 처음엔 독재자 ‘바사르 알 아사드’에 대항하는 반독재 세력만 있었으나 외세가 개입하면서 수많은 분파가 생겨나 나중엔 누가 누구를 반대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 버렸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지난 전쟁과 집회 시위에서 보여 준 한국인의 기질로 보아 시리아 내전의 잔인함 정도는 애들 장난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특히 방사능에 오염된 상태에서 벌이는 전쟁이므로 이판사판으로 벌이는 말기적 증세가 많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추측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하다. 전쟁을 준비하고 예상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전쟁이 누구에게 이익이 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만약 전쟁이 가까워졌다면 지난 70년간 누려 왔던 분단에 의한 이익이 점차 줄어들어 간다는 뜻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동시에 꺼낸 ‘전쟁’과 ‘FTA 재협상’ 카드는 전쟁을 해야 할 만큼 경제가 어려워졌다는 고백이다. 북이 핵미사일에 집착하는 까닭도 미국의 반응을 끌어내려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북의 경제가 재래식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판단이 옳다면 전쟁을 피하는 해법은 나온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상호불가침조약(북미평화협정)을 맺고 그 대신 북은 핵을 포기하는 일이다. 이 경우 미국은 북미 대결에서 얻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남한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FTA에서 미국에 대폭 양보할 수밖에 없다. 이 그림은 전쟁을 피하기는 하지만 남한 민중의 희생이 너무도 큰 데다 대미종속이 더욱 심화하고 만다. 그래도 이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까닭은, 핵을 가진 북과 어떤 의미 있는 대화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남한의 ‘멕시코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겠지만, 이는 비핵국가 북한과 경제협력을 하게 하는 압박 요인이 될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전쟁불사론’이나 ‘핵무장론’ 같은 무책임한 발언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지만, 한반도의 전쟁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은 모든 전쟁을 뛰어넘을 정도로 참혹할 수 있다. 한국은 FTA를 미끼로 미국이 북과 평화협정을 맺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과의 불리한 경제협정이 국내 정치의 불안 요소가 되겠지만, 이는 중국과 북한, 러시아와의 경제 교류로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막막해 보여도 평화를 위한 의지만은 한순간도 놓아서는 안 된다.


*경향신문에 실린 글을 고쳐 실었습니다.


 

황대권_생명평화마을 대표

전남 영광에서 농부로 살며 평화로운 삶과 생명의 가치를 품고, 생명평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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