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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탈출기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30 64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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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탈출기



인간의 성장은 다른 동물에 견주어 더딘 편이라고 한다. 생후 몇 시간 만에 일어나 자신의 몸을 가누고 몇 개월 안에 생존 기술을 익혀 부모 품을 떠나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십수 년간, 부모의 시각을 빌어 세계를 발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나는 나의 부모님의 시각으로, 나의 부모님은 그들의 부모님의 시각으로… 어쩌면 한 개인의 인생은 특별한 전환이 없는 한, 조상의 삶을 변주하는 과정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누적된 습관의 노예에서 벗어나는 삶을 꾸리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나는 인드라망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인드라망 활동가에게는 다양한 자리를 통해 나는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듣고 묻고 반복하여 새기는 기회가 주어진다. 그 과정을 통해 지난 삶의 궤적을 돌이켜보면, 나는 늘 스스로를 결함 있는 존재로 여기며 결함을 고치고 결핍을 채워 특별하고 완성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했고, 내 영혼의 동반자와 특별한 경험을 찾아 어딘가로 떠났다. 무엇을 결함과 결핍으로 여겨 고치고 채우는 이런 노력을 애써서 했을까?


그동안 나는 ‘아버지는 나에게 무언가를 해낼 똑똑하고 능력 있는 딸이 되길 기대한다. 어머니는 나를 이미 힘든 삶에 하나 더 얹어진 부담으로 여긴다.’라는 이야기를 믿고 반복하여 상연하고 있었다. 난 스스로 알아서 잘하는 딸이 되어 어머니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방식으로 어머니를 사랑했고,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는 믿음직한 딸이 되어 특혜를 얻어냈다. 그렇게 애써 노력하는 것으로 나의 존재를 정당화했고,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것에 상처받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마음 밑바닥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전달되지 않음에 대한 절망과 무력감, 그리고 외로움으로 베어진 가슴의 상처로 깊은 분노와 슬픔이 쌓여갔다. 그러나 나의 분노를 드러내어 내게 제한되게나마 사랑과 안전을 제공하는 부모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싶지 않은 두려움이 분노를 막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도록 가슴을 꽁꽁 묶었다. 가끔 내면의 분노가 드러날 때면, 두려움과 분노 사이의 갈등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나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는 것 같았다. 특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삶의 활력을 나의 분노와 슬픔을 억누르는 데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십 대부터 난 꾸준히 집을 떠날 기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몸은 집을 떠났는지 몰라도 마음은 여전히 부모님에게 묶여 있었다. 사랑에 굶주려 있으면서도 상처받을까 봐 엄마를 외면했듯 사람에게서 멀어지려는 마음이 컸다. 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나를 보호해줬으면 하는 아버지에 대한 기대는 세상이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되어 여전히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내가 원하는 것과 상관없이 굴러가는 세상과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실망으로 난 수시로 분노했고 상처받았다. 그리고 이 절망감과 슬픔을 지속해서 느끼며 살 수가 없어 가슴을 닫았다.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한 수용과 보호를 갈구했지만, 좌절했던 기억은 여전하여 내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주무르기도 했다.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도 전혀 모자라지 않을 나이임에도, 여전히 그 늪에 빠져 옴짝달싹 못 하는 내 모습은 말뚝에 매어 제 자리를 빙빙 도는 짐승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전혀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이렇게 유아기적 소망과 기대, 분노, 좌절, 슬픔 위에 구축된 삶은 허약하고 위태로웠다. 


다행스러운 일은 이것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생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나라고 생각했던, 부모님에게 생존을 의지하느라 꽁꽁 묶어두었던 마음을 하나씩 걷어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고 또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발견하는 과정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의 기대와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믿음직한 사람이 되는 것. 이런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나는 어떤 사람일까?


살면서 내가 바랐던 보호와 안도감을 느꼈던 때를 기억한다. 무언가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 집에 왔다는 느낌. 그런 느낌을 2013년 아르헨티나 어느 부부의 농장에서 지낼 때 처음 받았다. 유명한 이과수 폭포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그 농장에서 생태 뒷간을 사용하고, 그것을 퇴비로 이용하여 텃밭을 만들고, 생태 건축으로 집을 짓고, 사유지를 가로질러 흐르는 계곡에서 더위에 지친 몸을 씻었던 그 기억은 행복하고 안전함을 느꼈던 기억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이전에는 혼자 애써서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고 막막했다. 그런데 그 농장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내가 어느 큰 그룹 안에 속해 있고 내가 들어감으로써 하나의 원이 완성된 느낌, 비로소 뿌리내린 느낌, 그로 인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소속감과 안정감, 안도감을 느꼈다. 전 생애를 걸고 내가 찾아다니던 게 그것이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아마도 공동체 감각이었나 보다. 생명의 공동체 안에서, 생태적 순환에 참여하는 자체로 기쁨과 즐거움, 안정감이 있음을 알았다. 그것을 알게 된 이상 이전처럼 도시의 임금노동자가 되어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돈을 통해서만 다른 것과 연결되는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쉽게도 나의 가족 역시 내가 돌아가고 싶은 공동체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바란 공동체는 아니었다. 서로에게 의지하여 각자의 완성을 돕는 온전한 존재로 여기고 존중하기보다 우리는 서로를 자신의 기대와 필요를 충족시킬 수단으로 보았다. 나의 가족을 탈출하여 멀리서 돌이켜보니 그랬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공동체로 산다는 것을 깊이 공부하게 한다. 이곳에 온 것만으로 모든 어려움이 일거에 해결되었으면 좋겠지만, 여기서도 여전히 나의 습관은 나를 휘두르고 사람들과 멀어지고 가까워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지금은 그 휘둘림에 큰 심리적 손상을 받지 않는다. 여기서 더 나아가 단순히 사람들만의 공동체를 넘어 생명의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미약하지만, 그 노력으로 생명에 뿌리내린 소속감과 다른 사람이 내게 기대하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맨얼굴 그대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얻어가고 있다.


비록 시작은 결함을 고치고 결핍을 채우기 위한 탈출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여정을 통해 지금 여기에 다다랐으니, 인생의 고통도 버릴 것 하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명의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잘 잡아보려는 노력이 마냥 쉽지는 않지만, 지금 이대로의 내 삶이 꽤 괜찮다. 다 고마운 일이다. 이제는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남들보다 특별한 사람이 되지 않아도 초조하거나 불안하지 않다. 더불어 사는 다른 사람들이 고맙고 그들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 삶이 보람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 한켠이 든든해진다. 한 가지 더 소망한다면, 하루빨리 나의 가족도 이렇게 공동체 안에서 든든하게 사는 삶을 선택하였으면 좋겠다.


 

김한나_생명평화대학 활동가

생명평화대학 1기를 졸업하고, 유명유실(有名有實)한 삶을 살기 위해 인드라망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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