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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황우석 교수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8 16:39 74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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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순례길에서 같은 내용으로 한 번은 중학교, 다른 한 번은 부자동네인 강남에서 강의를 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무얼까요?” “부모님이오.” “돈이오.” “먹는 것이오.” 강의실이 한바탕 왁자지껄하다.
“물론 여러분들의 대답이 틀리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여기 누구에게나 제일 중요한 것,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요?”

- ‘생명살리기’는 가장 소중한 가치 -
한 아이가 불쑥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해주세요”라고 말한다.
“좋습니다. 여러분이 내놓은 대답들이 모두 맞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들 중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거든요. 그게 뭘까요? 바로 자신의 생명이죠.”
아이들이 ‘에이, 그거야’ 하며 잠시 소란스러워진다. 당연한 것을 뭘 그리 심각하게 이야기하느냐는 투다.
“이야기를 좀더 해 보지요. 정말 지금 여기에서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을까요? 물론 당연히 없지요. 생명이 살아있어야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해요. 살아있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할 수가 없잖아요.” 여기저기에서 “맞다. 맞아요” 하고 대답한다.
“다음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훌륭한 일에 대해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모두 그 답을 알고 있어요. 답은 바로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무수히 많지만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훌륭한 일은 어디에도 없지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아이들이 조금씩 긴장한다. “자,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일 중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어요. 그 일이 무엇일까요?”
“경제요.” “자연보호요.” “의학이오” “생명과학이오.” 아이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 가감없이 쏟아져 나온다.
“여러분들의 대답이 어느것 하나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있으면 좋고, 없다 해도 생명 자체가 위험하지는 않지요. 그러니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들은 아니지요.”
아이들이 실망스러워하면서 ‘그럼 뭐야’ 하며 빤히 쳐다본다.
“정확하게 말하면 정답은 하나뿐이거든요, 그런데도 그 대답이 나오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책임이 아니지요. 바로 이야기할게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훌륭한 일은 농업과 농부들의 삶이죠. 그들의 삶이 없으면 서울도, 서울대학교도, 대통령도, 황우석 교수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자동차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만들어질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하는 현실의 일 중에 농사짓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훌륭한 일은 없습니다. 음식은 생명이죠. 음식을 어디에서 누가 만드는가요? 자연과 농부죠. 자연과 농부의 수고가 없으면 음식이 만들어질 수 없고, 음식이 없으면 우리들의 삶도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게 볼 때 농부와 황우석 교수 중에 누가 더 중요하고 훌륭한가요? 당연히 농부지요.”
강의실이 조용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 앞에서 아이들이 당혹스러워한다.
“우리 모두는 너나없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차분하게 삶의 참된 가치를 따져보면 농부의 삶보다 더 중요하고 거룩한 삶은 없습니다. 당연히 여러분은 훌륭한 농부가 되는 것을 자기 인생의 꿈으로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할래요?”

- 농업·농부가 홀대 받아서야 -
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다.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부자동네 강남 어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구체적 삶의 진실과는 다르게 우리의 현실은 뒤죽박죽이다.
절대가치를 책임지는 농업과 농부는 마치 천덕꾸러기처럼 취급되고, 상대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과학과 황우석 교수는 고귀한 몸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 결과 생명위기, 평화위기, 삶의 위기라는 최악의 상황이 우리들의 삶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하루 빨리 근본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근본가치에 입각한 지식과 논리, 사고와 삶의 방식을 확립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염원인 생명평화의 삶이 현실의 삶으로 실현되는 길이 열리게 된다. 정신 차려야 할 때이다.


경향신문(05.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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