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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붕괴와 텅빈 교회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8 17:00 65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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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어느 가난한 시골교회를 방문했다. 교회마당에는 찬겨울 바람만 스산할 뿐 사람들의 자취를 만날 수 없었다. 목사님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교회당 안은 한겨울의 냉기만 가득할 뿐 사람들의 체온을 느낄 수 없었다. 텅 빈 집처럼 느껴지는 예배당 안에 모셔진 십자가 앞에 넙죽 큰 절로 예를 올렸다. 왠지 알 수 없는 슬픈 아픔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시골교회의 운명이 마치 십자가에 못박혀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절규하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신자들 발길 끊겨 쓸쓸한 풍경-
목사님으로부터 머지않아 문닫게 될 시골교회의 사정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을 들었다. 문득 모두 떠나가고 무너져내린 오늘의 농촌 풍경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시-농민 시인 박운식의 ‘사랑방’이 떠올랐다. 아마도 ‘사랑방’이라는 제목을 ‘시골교회’로 바꾸면 머지않아 문닫게 될 시골교회의 풍경이 그대로 그려지지 않을까 싶다.

“모두 떠나간 빈 교회에 썰렁한 바람이 붑니다/교회 마당에 왁자지껄하던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교회 골목길에 가득했던 신자들의 발자국 소리도 끊긴 지 오래입니다/교회 밖 빈 마을에 죽음 같은 겨울밤이 깊어갑니다/찬란한 십자가의 불빛도 신앙심 깊은 할머니의 다정다감한 이야기도 없습니다/달빛이 찬 겨울밤/보고 싶은 얼굴들 듣고 싶은 목소리들 다 어디로 뿔뿔이 달아나고 없습니다/윙윙 찬바람만 텅 빈 교회 골목길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목사님께 여쭈었다. “농촌공동체 사회가 무너진다고 해서 교회를 문닫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그 누구, 그 무엇도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무슨 말씀이신지?” “연못과 연꽃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농촌 지역사회가 연못이라면 그곳에 자리잡고 있는 시골교회는 연꽃인 셈이지요. 연못을 떠난 연꽃은 존재할 수가 없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연못과 연꽃은 하나의 공동운명체이지요. 연못이 고갈되면 연꽃은 시들게 되지요. 연꽃이 없는 연못은 더러운 시궁창에 불과하고요. 마찬가지로 농촌사회라는 연못이 고갈되면 교회라는 연꽃도 시들 수밖에 없지요. 그런가하면 진리를 의미하는 종교정신을 망각한 우리 사회는 모순과 혼란과 불행의 늪이게 마련이지요. 대부분의 종교인들이 입을 열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면서도 정작 교회의 이웃인 농촌사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던 것이지요. 만일 교회가 교회와 농촌이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갖고 농촌사회를 지키고 가꿔왔다면 농촌이 오늘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을 겁니다. 농촌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농촌교회를 문닫는 일이 생길 까닭도 없었겠지요.”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거릴 뿐 달리 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종교가 빛과 소금으로 빛나길-
농촌 붕괴의 중요한 책임이 종교가 본연의 자기 역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이다. 교회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오늘의 농촌 붕괴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인 것이다.

불교, 천주교, 원불교 등 그 어떤 종교도 예외가 없을 터이다. 종교 본연의 역할을 망각한 종교는 우리 사회의 아편일 뿐 절대로 빛과 소금일 수 없다는 뜻이다. 더 늦기 전에 모든 종교가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서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공동선인 생명평화를 위해 함께 하는 건강한 모습을 보여야 할 때이다.

지금부터라도 농촌 붕괴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종교 본연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할 때인 것이다.

뭇생명의 염원인 생명평화의 삶, 생명평화의 세상을 위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종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종교가 아편이 아니고 빛과 소금으로 빛날 수 있도록.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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