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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예찬

인드라망사무처
2022-11-13 23:40 58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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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예찬

 


가능한 한 앉아있지 마라.

야외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생겨나지 않은 생각은 무엇이든 믿지 마라.

근육이 춤을 추듯이 움직이는 생각이 아닌 것도 믿지 마라.

모든 편견은 내장에서 나온다.

꾹 눌러앉아 있는 끈기는 신성한 정신에 위배되는 진정한 죄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걷기 두발로 사유하는 철학’에서 재인용)

 


니체는 건강한 생각은 걷고 움직이는데서 나온다고 설파했다. 예전 같으면 깊은 사유를 하게 해주는데 앉아서 명상하는 좌선보다 나을게 없다고 반박했을 것이지만, 이번에 순례를 하면서 니체의 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적절한 속도로 걷다보면 잡다한 생각이 사라지고, 걸음과 걷는 자신에 집중 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걸으면서 무언가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좌선하며 화두를 드는 것에 못지않은 집중적 성찰이 가능함도 알았다.

 

화쟁코리아 백일 순례가 끝났다. 걸을 때의 원칙은 한 줄로, 침묵으로, 길 한편으로 걷는다였다. 한 줄로 걷게 되면 앞사람의 움직임에 전적으로 내 움직임을 맡겨야 하므로,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추게 된다. 그렇게 전체 대열의 호흡이 맞으면, 걷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된 느낌을 갖게 된다. 전 순례자들이 이렇게 하나 된 느낌으로 걸었을 때, 그 안에서 큰 에너지가 나옴을 느꼈다. 걸을 때는 침묵으로 걸었다.

처음 순례에 결합한 사람들이 가장 어색하고 불편해 한 것이었지만, 걷고 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침묵하며 걸은 것이 가장 좋았다고 평했다. 침묵하며 걸으면,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고, 부산스럽던 일상을 내려놓고 자기를 쳐다볼 수 있게 된다.

 

길 한편으로 걸었다. 길을 걷는 다른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인도가 있으면 인도로 걷고, 불가피하게 차도를 걸어가야 할 경우에는 차량이 진행하는 반대편에서 걸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마주 오는 차량 운전자도 조심을 하게 되고, 그때 손을 흔들며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지역에서 만난 대부분의 운전자들은 손을 흔들어 주거나 목을 끄덕이기도 했다. 이렇게 한 줄로, 침묵으로, 길 한편으로 걷게 되면 고요한 발자국 소리만이 남는다. 걷는 순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순간이 된다.

 

이렇게 백일을 꾸준히 걸은 순례단에게 자기 내면을 보는 힘, 남을 배려하는 힘, 공동체를 위해 애쓰는 힘이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순례가 끝날 즈음 모두가 모여서 며칠 간 평가모임을 하였는데, 모든 단원들이 순례를 통해 자신이야말로 가장 큰 혜택을 입었다고 했다. 그 원인은 걷기 자체가 준 선물이라는 점이 첫째 이유일 것이고, 둘째, 그냥 걸어도 좋은데‘ 화쟁’이라는 지혜와 자비로 가득한 주제를 마음에 품고 걸은 것이다. 우리사회의 갈등 현장을 돌며‘ 보리심’을 먹는 연습을 하였으니, 그럼으로써 순례단원 스스로가 누구보다 큰 혜택을 입었지 않았나 싶다. 세 번째는 공동체에 헌신함으로써 얻는 행복을 선물로 받았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 스무 명이 100일간을 함께 자고 함께 먹고 함께 걸었으니 처음에는 좀 삐걱대기도 하고, 갈등도 있었다. 그런데 순례 중반 이후부터는 자신을 내려놓고 서로를 배려하는 기운이 높아졌다. 울력도 척척이고, 쉴 때는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늘 넘쳐났다. 기쁘고 행복한 기운으로 서로 연결되니 각자의 행복감은 높아졌다.

 

걷기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인데 이렇게 남을 위해, 공동체를 이루어 걸었으니, 그것이 개인의 삶이 영그는데 큰 감동과 행복감을 주지 않았나 싶다. 나는 화쟁순례를 통해 순례 예찬론자가 됐다. 어떤 프로그램, 어떤 교육도 이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얻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길에서 평생을 보낸 붓다의 삶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정웅기_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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