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어린 공동체, 옛 길과 오늘 > 사부대중공동체

본문 바로가기

인드라망 아카이브

우정 어린 공동체, 옛 길과 오늘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11 550 0

본문

우정 어린 공동체, 옛 길과 오늘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삼천리에 가득한 나날입니다. 공공 영역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지위를 자신들의 개인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사용한 대통령과 측근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거대한 강을 이루고 있습니다.

‘분노’라는 마음은 대상을 미워해 그것을 나에게서 밀쳐내고 없애려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분노는 폭력으로 너무나 쉽게 연결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촛불은 그렇지 않습니다. 분노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을 드러내어 상대가 받아들이기를 기다립니다. 불의를 비판하되 불의한 방법에 의하지 않는 촛불문화제. 돌이켜보면 국가 권력이 폭력적으로 시민을 과도하게 억압하지 않았다면 평화로운 시위 문화는 20여 년 전부터 전통으로 자리 잡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6년의 촛불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확인시켜주는 바로미터입니다.


올 가을에는 수원 봉녕사 금강율학승가대학원에서 조계종법 강의를 했습니다. 강의를 준비하느라 종단 법을 훑어보는데 눈에 든 티처럼 자꾸 불편하게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이 법 제 ○○조를 위반하면 제적의 징계에 처한다.’ ‘이 법 제 ○○조를 위반하면 공권정지의 징계에 처한다.’ 하는 식으로 수많은 법에서 이 법을 어기면 이런저런 벌을 주겠다고 정해놓았습니다. 국가의 ‘형법’같은 법이 종단에는 ‘승려법’입니다. 그런데 승려법에 갖가지 잘못에 대해 징계할 수 있다고 해놓고 또 제각각 법마다 이 법을 안 지키면 이렇게 저렇게 징계한다고 해놓은 것입니다. 징계 과잉이고 징계 만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4월에 세월호 이준석 선장의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습니다. 선장이 가막소에 갔으니 세월호 참사는 해결된 것인가요? 사고로 인하여 가장 고통 받은 유가족들은 선장이나 선원으로부터 진심어린 사죄의 말을 듣지 못했고, 구조의무를 다하지 않은 대통령이나 정부, 해경으로부터도 사죄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국가공동체에 엄청난 고통이 생겼는데 그 고통은 고스란히 둔 채 선장을 비롯한 몇 명을 사법처리 하는 것이 국가가 이 문제를 다루는 방식입니다.

조계종도 다르지 않습니다. 94년 종단개혁불사 당시 각종 비리와 더불어 종권을 더 유지하기 위해 폭력배를 동원하여 스님들을 공격했던 서의현 당시 총무원장을 멸빈 징계에 처했습니다. 총무원장의 비리와 폭력으로 인하여 생긴 불교공동체의 상처는 총무원장이 징계를 받는 것으로 충분히 치유되었을까요? 또 손가락에 상처가 생겼다고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것이 언제나 적절한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인류의 가장 오랜 공동체 가운데 하나인 승가의 옛 규칙을 들추면서 어떻게 문제를 다루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아난다] “부처님, 좋은 우정, 좋은 벗은 청정한 삶의 절반입니다.”

 [붓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난다여. 그렇지 않습니다. 좋은 우정, 좋은 벗은 청정한 삶의 전부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벗, 좋은 동료가 있으면 그로 인하여 팔정도를 연마하게 되고 팔정도를 더 발전시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벗(선우, 선지식)들의 공동체가 청정한 삶(수행)의 전부다, 이 말은 수행을 하는 것은 좋은 벗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함이며, 좋은 벗들의 우정 어린 공동체야말로 청정한 삶의 구현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승가에서 서로를 부르는 가장 일반적인 호칭은 “친구여”였습니다.


좋은 벗들의 우정 어린 공동체는 항상 화합과 청정을 유지하고자 합니다.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여섯 가지 화합의 원칙을 보면 ① 공동체 구성원들이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들에 대해서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는 한 ②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는 한, ③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는 한 ④ 공동체 구성원들이 법도에 맞게 얻은 법도에 맞는 것들은 그것이 비록 밥 그릇 안에 담긴 음식일지라도 혼자의 몫으로 하지 않고 규칙을 잘 지키는 동료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하는 한, ⑤ 공동체 구성원들이 훼손되지 않았고 오점이 없는, 그릇됨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칭찬하는 그런 규칙들을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함께 갖추어 머무는 한, ⑥ 공동체 구성원들이 그대로 실천하면 향상으로 나아가는 이치와 방법에 대해서, 대중적으로나 개인적으로 동료들과 함께 그런 견해를 갖추어 머무는 한, 공동체는 퇴보함 없이 향상할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께 살다보면 나와 다른 여러 모습들이 불편함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나아가 함께 지키기로 정한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그 때 내가 불쾌해서 상대에게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향상을 위한 자애의 마음을 유지하는 한에서 상대를 위해 지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진 말을 해서 그 사람을 쫓아내는 것은 당장은 쉬워 보이지만, 그런 방식은 자신과 상대를 성장시키지 못하며, 우정의 관계를 깨뜨리고 공동체에 흠집을 만듭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잘못을 범한 사람에 대하여 자애로운 지적과 진솔한 참회를 통해 그가 청정함을 회복함으로써 이 우정 어린 공동체에서 함께 정진하는 도반의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을 화합의 내용으로 삼았습니다. 계율은 누구를 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규칙을 어긴 사람이 청정함을 회복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공동체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결정하는 회의인 ‘갈마’는 같은 구역에 거주하는 모든 수행자가 전원 참여하여야 하며, 의사 결정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만장일치에서는 한 사람의 의결권이 전체의 의결권과 같은 무게를 가집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가 참석해야 하므로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건을 통과시키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정치 소외, 정보 소외, 소수자 소외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 구조, 모두가 주인공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최대한 보장하고 있는 승가공동체는 오래전 선구적으로 제시된 미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공동체의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생각의 관점을 바꾸어야 하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공평’하고 ‘공정’한 것에 익숙해져서 ‘뭣이 중헌디?’, ‘어디가 급헌디?’ 하고 둘러보는 힘이 약합니다. 또 나와 남을 별개의 존재로 나누고, 마음에 안 들면 배제시키려는 마음이 걸핏하면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공동체가 바로 수행이다.’라고 정리하신 듯합니다.


열반경은 설합니다. ① 공동체가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이는 한, ② 공동체가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공동체의 업무를 보는 한 ③ 공동체가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온 규칙들을 준수하고 있는 한 ④ 공동체가 공동체의 지도자이며 선배이고 오랫동안 활동한 이들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받들며, 그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고 여기는 한 ⑤ 공동체가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한 ⑥ 공동체가 단순 소박한 삶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⑦ 공동체 구성원들이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사람들은 오게 하고, 이미 온 좋은 사람들은 편안하게 머물도록 하는 한, 퇴보하는 일은 없고 오직 향상이 기대됩니다.


우리 인드라망이 지향하는 오늘의 공동체를 더 구체적으로 그리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쏟아온 정성을 사업 항목 외에 공동체를 주제로 정리해보면 좋겠습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촛불은 밝아지고, 날씨가 차가울수록 맞잡은 손의 온기가 더 따뜻합니다. 이 길에서 평화롭고 행복하시기를 손모아..._()_


 

원묵스님_선덕사 주지

광주 선덕사를 도심 속에서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우리절 우리마을, 동네절’로 만들고 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