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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집과 새가 사는 집

인드라망사무처
2022-11-13 22:50 78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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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는 집과 새가 사는 집

강수돌(고려대 교수, 전 마을 이장, 인드라망 전문위원)


 

조치원 서당골에 귀틀집을 짓고 산 지 13년째다. 그 사이 꼬맹이 아이들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다. “자연이 최고의 교과서”라는 우리의 믿음처럼 아이들은 잘 자랐다. 몸도 건강, 마음도 건강하게 잘 커주어 아내와 나는 고맙게 여긴다.

 

대개 사람들은 아이들의 성적표를 보고 잘 키웠는지 판단하지만 아내와 나의 기준은 다르다. 스스로 건강하게 자라면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 나아가 자신의 꿈을 찾는 것, 이런 것이 우리에겐 중요하다. 그래서 고맙다. 아이들이 내면의 꿈틀거림에 대해 정직하게 반응하며 건강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스런 귀틀집에도 문제는 생겼다. 가장 힘든 점이 겨울에 ‘통풍’이 너무 잘 되어 춥다는 점이다. 그래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적응이 되어 별 문제 없지만, 간혹 손님이 오시면 말은 못 해도 아마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듯 했다.

 

영하 7도 이하의 날씨가 며칠 계속되면 더운 물부터 얼기 시작하여 찬 물도 얼어붙었다. 간신히 살아 있는 화장실의 찬 물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 물로 밥도 해먹었다. 그나마 얼어붙으면 눈을 녹여 밥을 지어야 할 판이었다. 둘째로 어려운 문제는 쥐였다. 흙집이다 보니 생쥐들이 자기 집을 짓고 넘나들었다. 안방이고 아이 방이고 가리지 않았다. 특히 한밤중에 쥐가 바스락거리면 신경이 쓰여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셋째로는 지붕 끝자락의 비가림막에 쏜 실리콘이 오래 되어 간혹 비가 새는 일이었다. 자연스런 흙과 나무로 지은 집은 비가 가장 무섭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자던 방에 빗물이 뚝뚝 떨어지던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마침내 13년 만에 대대적으로 집수리를 시작했다. 과연 집 구석구석 ‘통풍’이 너무나 잘 되는 구멍들이 다 노출되었고 쥐들이 들락거리던 쥐구멍들도 다 드러났다. 그런데 놀랍게도 툇마루 내지 쪽마루 짝을 다 들어내고 보니 마루를 끼웠던 홈 자리에 벌들이 집을 짓고 알을 까놓고 겨울을 난 게 아닌가. 정말 자연은 어느 곳이든 생명을 키운다.

 

칡넝쿨은 어떤가? 칡은 뻗는 곳마다 보일 듯 말 듯 뿌리를 내린다. 깊게 박혀 있어 절대 뿌리째 뽑히지 않는다. 내가 힘을 주면 스스로 잘린다. 뿌리는 남아 나중에 또 올라온다. 아, 그래서 ‘풀뿌리’ 민중이란 말이 있는가. 자연의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해 그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는….


그리고 놀랍게도 아내와 나는 버려진 서랍장들 사이에서 갓 태어난 새끼 새들이 눈을 뜨지 못한 채 입만 벌리고 있는 둥지를 발견했다. 오래된 조각 나무를 치우는 도중 새 한 마리가 휙 날아가는 게 보여 수상히 여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새 둥지가 있었다. 그렇다. 나와 가족들이 살고자 지은 집이지만 이렇게 벌이나 새, 거미, 쥐, 칡 따위의 온갖 생명체들이 부지런히 자기만의 집을 짓고 새끼를 키우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어린 새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에 ‘생명의 경외감’을 느껴 조심스레 그 둥지가 든 서랍장을 길 한쪽에 놓아 주었다.

 

다행히도 나중에 박새 한 마리가 그 둥지 속으로 들어가 새끼들과 재회하는 모습을 보았다. 다행이었다. 나와 다른 생명체들의 집이라 해서 함부로 여기지 않는 내 마음이 고맙게 여겨졌다. 바로 이런 것이 사랑이고 생명의 그물망, 인드라망에 동참하는 것이다.

 

결국 아내와 나는 집수리를 하면서 우리 마음도 수리를 하는구나, 하는 마음으로 단잠에 빠져 든다. 아, 내일은 또 어떤 생명체를 만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될까.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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