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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드라망사무처
2022-11-13 23:29 70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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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제 콩을 타작하였다.
지난 5월에 콩을 심어 10월 말에 수확하여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어제 탈곡을 한 것이다. 심은 면적에 비해 수확 양은 신통치 않았다. 80㎏ 이상이 나올 만한 면적에 심었으나 고작 50여㎏에 불과해서 된장 담을 메주를 쑤기에도 부족한 양이다. 콩은 대표적인 두과식물로 비료요구량이 많지 않은 작물이다. 비옥한 땅에서는 오히려 수확량이 감소한다. 콩만이 아니고 모든 작물이 그러하지만 수량과 품질에 미치는 요소는 다양하여 어느 한 가지만이 수량에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없다. 그 가운데서도 날씨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얼마 전 경남 산청에서 열린‘ 아시아생명농업포럼’에 참가하여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인도, 스리랑카, 필리핀, 일본, 방글라데시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로부터 각 나라마다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큰 화두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기상상태, 작물에 따른 토지비옥도, 품종, 파종시기, 비배관리 등 여러 요소가 수량과 품질에 영향을 미친다. 콩처럼 생육일수가 긴 작물은 어떤 요소가 수량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었는지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작년에도 같은 종자를 비슷한 시기에 심었고 다른 조건도 비슷하였는데 수량의 차이가 나는 것은 올해의 기상상태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해본다. 품종이나 파종 시기를 비롯한 다른 것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날씨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가 겪고 있는 요즘의 날씨는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콩 이외에도 경제작물로 토마토, 케일을 심고 있고 자급용으로 고구마, 감자, 옥수수, 밀, 메밀 등의 보조식량작물과 고추, 마늘, 양파, 파, 쪽파 등의 양념류도 하고 배추, 무를 비롯한 각종 채소들을 재배하고 있다. 올해의 농사는 수확이 별로 신통치 않았는데 결정적인 원인은 날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지역은 봄 내내 고온과 가뭄이 계속 되다가 초여름이 되자마자 시작한 장마가 거의 두 달간 이어졌던 것이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이다. 김장을 하고 콩을 터는 것으로 올해 농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 갔다. 상강에 서리가 내리면 아무리 기세 좋던 작물들도 그것으로 끝이 난다. 추수가 끝난 가을 들판은 황량하기만 하고 무성하던 나뭇잎들도 모두 떨어져서 알몸을 드러내고 있다. 잔치 집에 가기 보다는 초상집에 가라는 말이 성경에 있다. 죽음의 계절인 겨울을 앞둔 가을은 우리를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신통치 않은 농사야 내년을 기약하면 되지만 인생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아무 거둘 것이 없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돈과 명예와 권력, 인기를 누리던 여름은 가고 서리가 내리는 것과 함께 모든 화려한 것들이 사라지고 나면 적나라한 알몸만 남는다. 거기엔 대통령이든 재벌이든 혹은 노숙자든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인생의 수확물은 어디서 찾아야하나. 콩의 수확량은 무게를 달아보면 알 수 있는데 인생의 수확량은 무엇으로 측정하나. 앞서 살다간 사람들의 삶과 역사에서 그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한 삶은 상강에 서리가 내리면 나뭇잎이 떨어지듯 떨어져버리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과 사회를 위하여 사는 삶만이 수확물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해마다 반복되는 가을은 그것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농작물이 기온의 고저와 강수량 등 기상조건에 영향을 받듯 우리 인생에도 갠 날과 흐린 날, 때로는 비바람 치는 날도 있어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들 인생과 농작물이 다른 것은 농작물의 결과는 농부가 선택할 수 없는 것에서 더 많은 영향을 받는데 비해 인생은 나의 선택과 노력에서 결정적인 판가름이 난다는 것이다. 많이 준비하고 많이 땀을 흘리면 가을에 거둘 것이 많지만 준비와 땀 흘림 없이 맞는 가을은 황량하기만 할 것이다.
 

김준권_포천농부, 정농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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