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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5호] 칼럼 - 평화는 가꾼 만큼 이루어진다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3:47 81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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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가꾼 만큼 이루어진다

- 북한의 핵실험 방침 발표 이후 일련의 사태를 보며 -

수지행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운영위원, 생명평화결사 사무국장)



지난 10월 4일 북한의 핵실험방침 발표가 나자 온 나라가 한바탕 들끓었다. 정부와 여야정당들은 북핵에 대해 강한 반대의 입장을 천명했고, 대북정책기조의 변경과 고수를 둘러싸고 격렬한 정쟁을 벌였다. 일부언론에서는 연일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를 써댔고, 여러 세력과 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성명서를 냈다. 한편 익명성을 전제로 인터넷상에서는 국민의식의 단편들이 가감 없이 표출되기도 했다. 대략은 ‘북한은 태생부터 다른 사악한 적대국’이라는 적대감과 ‘북핵은 대미용’이라거나 또는 ‘통일되면 우리 것’이라는 근거도 없는 심정적 옹호로 나뉜다. 이러한 생각들은 대부분 미국에 대한 인식과 맥을 같이 했고, 미국을 우방, 수호자로 보는 편과 침략자, 약탈자로 여기는 편으로 나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분법적 사고와 대립의 틀거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북핵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있어서는 ‘좋다, 나쁘다’의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되며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의 정치적이고 정략적인 관계를 파악해야 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그들도 결론에 이르러서는 ‘북한의 핵실험을 정치적으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1차적인 책임은 미국에 있다.’거나 ‘현재의 국제정세에서 미국의 힘을 무시하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식이다. 결국 이분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인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국민적 합의를 모아낼 수 있는 원칙과 기조는 정말 없을까?



■ 핵무기 반대, 한반도 비핵화는 생존의 문제이다

북핵과 관련한 많은 논쟁들은 우리 사회가 핵의 위험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보여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핵문제를 가지고 정쟁을 일삼고 또는 저토록 낭만적인 해석을 하겠는가.


핵무기는 어느 나라는 갖고 놀아도 되고 어느 나라는 갖고 놀면 안 되는 장난감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과 인류의 안정적인 삶을 파괴하고 미래세대마저 절멸시킬 수 있는 대량살상무기이다. 그것이 방어용이든 공격용이든 핵을 안고 살아가는 삶은 그 자체로 불안과 위험 가운데 있다. 그것은 ‘남한의 핵무기 보유가 전쟁억지력을 갖는다’거나 ‘북핵은 대미용이며, 통일되면 우리 것’이라는 식의 취사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반핵은 우리 생명의 안전과 평화를 위한 절대절명의 조건이다.


나아가 한반도의 핵은 우리를 주변국들과의 정략적인 핵경쟁의 굴레 속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주변국들의 개입은 더욱 거세질 것이며, 그로 인해 한반도의 통일을 저해하는 조건과 상황은 더욱 고착화될 것이다. 예로 만약 미국이 ‘한반도에 전술핵을 늘려서 배치하겠다’라거나 일본이 ‘북한이 저렇게 나가니 우리도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핵무장을 하겠다.’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겠는가. 한반도에 핵무기를 용인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핵문제를 확대재생산하는 길이다. 한반도의 핵문제는 정치적 해석과 상황논리로 접근해선 안 된다. 안보와 전쟁을 빌미로 장사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런 해석과 논리에 더욱 능숙하고 훨씬 실천적이다.


따라서 북핵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되어서는 안 된다. 북핵 반대는 미국이나 어느 특정세력에게 이롭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북핵을 포함하여 모든 핵무기에 대한 반대와 한반도비핵화는 우리의 생존과 평화를 스스로 보장하기 위한 기본원칙이어야 한다.



■ 이해와 소통, 대화와 협상은 최선의 방어이며 최선의 공격이다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한다고 해도 뒤따르는 여러 가지 논쟁지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대북정책의 지속이냐, 대북제재냐로 갈등하던 정부와 한나라당의 대립도 그 가운데 하나다.


평화로 가는 길에는 이해와 배려, 모심과 살림의 정신이 있다. 일상의 작은 폭력 상황에서조차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설득의 노력이 있는데 그 설득조차도 이러한 정신을 전제한다. 압박과 제재는 때로 하나의 방법일 수 있지만, 북한이나 남한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일방적인 압박과 제재는 올바른 처방이 아니다. 그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일방적 승리는 더욱 큰 피해와 비용을 요구하고, 50여 년 전 한국전쟁보다 훨씬 크고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남길 것이다. 그 길은 죽음의 길이다. 이 길을 벗어나는 가장 최선의 해법은 대화와 소통임을 명심해야 한다.



■ 평화의 길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우선과제는 친미냐, 친북이냐 등의 문제 이전에 한국사회의 사회적 합의이다. 그동안 긴장된 정세 속에서도 남북 고위당국자나 정상은 7.4남북공동성명에서 6.15선언에 이르기까지 평화의 길에 대한 기본 합의들을 만들어왔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국민통합적 실천이 아니라 문제를 확대재생산해서 기득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정치세력들 간의 게임만 있다. 이제 우리 국민들 스스로 큰 소리로 묻고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질문은 단순하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가, 평화적 통일을 원하는가. 답도 단순하다. 예, 또는 아니오.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고 평화적 통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화해와 협력을 통해 상생의 길을 모색할 것이다. 평화의 길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고 그 합의에 근거한다면 미국이나 북한에 대한 대응방법도 훨씬 풍부해질 것이다. 그리고 경제협력, 민간교류의 확대 뿐 아니라 훨씬 더 다양한 평화의 길이 모색되고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통일일 수밖에 없는 조건과 상황을 지속적으로 가꾸는 일이다.



■ 평화는 가꾼 만큼 이루어진다

평화는 가꾸는 만큼 이루어진다. 삶의 문제를 평화적으로 다루는 문화를 가꾸지 않고 평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북한핵실험 논쟁에서 우리 사회의 불안을 더욱 부추긴 것은 문제를 둘러싼 대응방식임을 보았다. 진정으로 국민의 불안을 덜어주고 국민의 힘을 통합하는 관점에서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정쟁을 벌이는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분열하였고 평화를 잃었는가. 정책결정의 지연으로 얼마나 많은 비용을 지불했는가. 그것은 명백한 퇴보였다.


우리가 정작 걱정하고 두려워할 것은 그렇게 들끓듯 논쟁을 벌이고도 어떤 합의도 도출해내지 못하는 현실이다. 매 사건마다 똑같은 논쟁이 소모적으로 되풀이된다. 이것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끊지 못한 악순환의 고리이다. 생명평화탁발순례 3년 동안 남한의 절반 이상을 돌면서 느낀 점도 마찬가지다. 6.25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개발과 성장정책의 난립과 몇 번에 걸친 선거 이후 우리 사회는 급격한 해체를 겪고 있다. 해체는 지역을 넘어 집단이나 계급을 넘어 개인관계에까지 확대․진행되고 있다. 대화와 소통을 위한 사회적인 노력과 실천이 없이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그간의 제각각 주장들은 실패한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성명서로만 부끄럽게 남게 될 것이 자명하다.


이러할 때 대화와 소통은 평화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나로부터, 가족과 이웃, 주변의 모든 관계들 속에서부터이며, 물론 이것은 가장 먼저 나 스스로의 정직함을 전제로 한다. 경쟁과 승리에 집착하는 의식을 알아차리기, 감정적이거나 정서적으로 판단하여 지지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지지하고 옹호해야 할 분명한 원칙을 세우기 등… 그렇게 생명평화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훈련을 하자. 지금 바로 여기에서 생명평화의 문화를 가꾸자. 생명평화의 문화는 가장 강력한 평화의 힘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 속에 한반도를 생명평화지대로 가꾸어가고 동북아평화, 세계평화의 허브로서 한반도생명평화지대를 선언하자. 얼마나 신명나는 일이겠는가. 머리가 아플 때 머리를 때린다고 아픈 머리가 낫지 않는다. 머리가 아플 때 손가락을 따는 그 지혜로움이 정말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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