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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6호] 삶과 불교- 중묵스님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3:49 7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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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에,



햇볕이 잘드는 만행당(萬行堂) 마루에 걸터 앉아 절을 감싸고 있는 숲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겨울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진 않았지만 숲은 적적하고 스산하다. 형형색색의 잎들이 다 떨어져 산의 골격이 온전히 드러나고 거친 바람소리만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고적하고 쓸쓸한 계절이 주는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좋다.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이 무성(茂盛)했던 가을과 여름 그리고 봄이 아니라, 적나라(赤裸裸)한 겨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잎을 털어낸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과 같이,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허위허식(虛威虛飾)을 털어내고 벌거숭이 진면목으로 지난 내 삶의 여정(旅程)을 되짚어 보라 하는 뜻이 아닐까 한다. 


올해 초, 일 년 동안 꼼꼼하게 읽어야 할 책들을 책상옆에 쌓아 두고는 마치 그 책들을 다 읽은 것처럼 흐믓하게 바라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믿지 못할 것이 나의 의지였다. 그렇게 다부지게 원(願)을 세웠지만 스스로 만든 여러 가지 핑계와 게으른 천성으로 그 책들의 반 이상을 첫 장도 들춰보지 못하고 말았다. 사실 읽었다고 하는 책들도 끝까지 읽어 개운하게 마무리 지은 책은 몇 권 되지 않았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더니 딱 내 경우을 두고 한 말이다.


공자님 말씀마따나 이미 지난 날은 어쩔 수 없고 오는 날은 잘해 볼 수 있으려니 희망하면서 읽지 못한 책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몇 권의 책과 함께 다시 쌓아 두었다. 이번에는 올해 초와 같은 ‘흐믓함’이 아니라 같은 돌에 두 번 세 번 넘어지는 우(愚)를 범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함께.


모처럼 찾아온 도반(道伴)스님에게 방 한쪽 구석에 쌓아 놓은 책들을 가르키며 나의 지난 일년의 반성과 다부진 2007년 새해 각오를 펼쳤다. 항상 사리가 분명한 도반은 내 기특한 생각을 듣고는 씨익 웃으면서 “새해다 지난해다, 과거다 미래다하며 나누고 거기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는 분별상(分別相)이고, 분별지(分別智)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어우러져 생성하고 소멸하는 것이 사물의 이치인데 어디를 잡고 과거다 미래다 새해다라고 할 수 있을까?”   “.  .  .  .  .  ”


자주 있는 일이긴 하지만 또 한방 먹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온 마음을 기우리는 것이 수행자가 지녀야 할 태도라는 것을 지적한 도반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흔연하게 수긍되진 않았다.


아기가 걸음마 배우듯이 옛스승들의 가르침을 익혀가는 설익은 수행자인 우리들은 한해의 첫날, 일주일의 월요일, 또는 하루의 아침 등등, 크고 작은 일상의 계기들에 의지해서 흐트러진 자신을  다시 곧추 세워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세월이라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흐름속에서 만나는 이런 계기들을 통해 되새기고 추스르는 지속적 과정이 한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내용을 결정짓는다고 생각한다.


아직 다하지 않은 12월 달력 뒤로 겹쳐서 새해 달력을 걸어 놓았다. 새로 만든 달력이 이전 달력보다 좀 커서 매번 그곳으로 눈이 갈 때 마다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년(一年)이 사천왕상(四天王像)처럼 떡하니 버티고, 내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중압감을 느낀다. 그래서 오늘은 새벽예불을 마치고 새해 달력 앞에 서서 호기(豪氣)를 부려본다. 


‘나에게 펼쳐진 새해가 숱한 곤란(困難)과 근심걱정으로 점철되고 비록 무기력과 깊은 상처가 따르더라도, 그 속에서 작은 깨달음 하나 분명하게 체득(體得)할 수 있다면 모든 시주(施主)의 은혜, 스승의 은혜를 져버린 것은 아니라고’.


중묵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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