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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3:54 57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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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텃밭수준의 농사를 하다가 올해부터 축구경기장 몇 개 크기의 농장에서 전업농부의 삶을 시작했다. 친환경적인 유기농업과 자본에 예속당하지 않고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농사를 실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주위에서는‘ 농사를 왜 어렵게 하느냐’는 부정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여러 가지 많은 것들과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은 예상했었다. 자주 봐야 하는 이웃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을 내세우기 보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점차 농장주변의 정서에 익숙해지면서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사람들의 관계도 가깝거나 멀어지는 복잡하게 얽혀있다는 것도 알았다.


적게는 10년 길게는 30년 이상 경력의 농부들에게 농사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좋은 공부도 없다. 그 경험들이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들어주고 있다. 많은 이야기 중에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인정하기 어렵거나 가볍게 흘려버릴 것들도 많다.


요즘에는 오랜 농사경력에 비해서 다양한 경험이 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농사이야기를 듣다 보면 병충해 없고 다수확의 비법(?)이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들의 대부분이 자연적인 환경에 의해서 농부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농자재기업에게 의존하여 돈을 쓰는 농사가 되면서 경력은 오래되어도 다양한 경험에 의한농사기술의 축적이 안 되고 있음을 많이 느낀다.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여러차례 말을 했음에도 여전히 독성이 강한‘ 풀약’을 제품이름까지 알려주며 권한다. 돈 되는 농사를 하려면 (특수)화학비료를 써야 한다며 비밀이라며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는다는 때깔 좋고 다수확의 비법이 그것에 있음을 알고는 실망한 적도 있었다.


씨앗은 일회용 F1(1세대 씨앗) 변형종자에 오래전부터 익숙해져있었다. 가격은 내 생각의 몇 배를 넘어가기도 해서 놀랐는데, 비싼 종자를 써야 병충해에 강하고 상품경쟁력에서 이길 수 있다는 종자회사의 전략에 넘어가 있다. 방문판매하듯이 농자재 회사의 영업사원들이 농장에 나타나기도 하는데 나에게도 왔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토종종자에 대한 말을 꺼낸다는 것은 아직은 멀어 보인다.

 

생산한 농산물 대부분을 경매시장으로 넘기다 보니 가격이 좋은 때를 알아야 하고, 작물선택도 한정적이다. 그리고 시장에서 원하는 상품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멀쩡한 작물에 살충제를 정기적으로 뿌려댄다. 때깔 좋고 더 크게 하는 호르몬농약을 사용하는 것도 농사 잘 짓는 비결로 통한다.


이렇게 돈을 써가며 건강을 위협 받으면서 농사를 지었음에도 스스로‘ 개죽음’이란 표현을 쓰는 농부도 있다. 알타리무 한단에 100원에 낙찰되었다는 문자를 받고는 며칠간 잠도 못자고 품값도 건지지 못한 화를 다스리느라 술병만 찾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올해 또 다시 같은 작물을 심는다고 한다. 삼세번 중에 한번만 제 가격을 받으면 된다는 도박 같은 심리가 농사에 참 많이 퍼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서로 다른 방식의 농사를 짓고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는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멀리 할 수도 없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래도 멀리 했으면 하는 자본에 예속당하지 않는 농사를 지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력을 실천하고 있다.



오창균_소식지 편집위원

흙에서 사람냄새를 느낄 때 가장 행복한 도시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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