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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시간, 역사교육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4:00 5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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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시간, 역사교육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은 늘 쓸쓸함과 분주함, 허전함 같은 느낌들을 동반하곤 한다. 가을비에 젖어 아스팔트에 깔린 낙엽을 원치 않게 밟으면서 쓸쓸함이 잠시 스쳐 가고, 이제는 그 인심도 야박해지고 있다는 새해 달력을 어렵게 구해 들고서 귀가할 때는 허전함과 함께 무언가 정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회한에 빠져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느낌들은 새롭지 않다. 돌이켜보면 작년에도, 그전 해에도 이런 회한과 분주함의 구비를 어김없이 밟아왔다. 한때는 새해가 시작되면 늘 달성하기 어려울 정도의 목표를 세우곤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 일의 부질없음을 몸으로 깨우치게 되었고 그 후로는 그저 별다른 감동이나 회한도 없이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게 되었다.

그 어느 구비쯤 시간에 관한 작은 깨침도 자리했을 것이다. 달력으로 헤아려지는 시간 말고 몸으로 느껴지는 시간도 있고, 더 나아가 아예 우리 능력으로는 쉽게 헤아릴 수조차 없는 영원 또는 공(空)의 시간도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몸으로 헤아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정말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시간의 흐름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더디지만, 무언가 급히 준비해야 할 때의 시간은 순식간에 흐르고 만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이 느끼는 시간이고, 우리는 삶의 결정적 순간들을 그 시간으로 살아내야만 한다.

인간의 역사는 바로 그런 시간을 근간으로 삼아 이루어진다. 그 시간은 누구도 독점할 수 없고, 단지 각자에게 주어진 수명만큼의 공평한 기회로 주어질 뿐이다. 불교에서 인간 생명의 세 구성 요소로 부모의 교합, 중음(中陰)과 함께 수명을 꼽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러한 시간의 겸허함을 깨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시간의 엄중한 한계가 가장 드러나는 것이 권력이다. 권력은 올바름을 가르는 저울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임시로 주어지는 한정적인 시간일 따름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그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역사 해석을 독점하고자 하는 권력의 욕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리석은 일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나면 곧바로 뒤집어질 수밖에 없는 허망한 시도일 뿐이다.

역사는 그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말 그대로 해석의 영역에 속하는 시간의 흐름일 뿐이다. 따라서 역사교육 또한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가 간직해온 시간에 관한 성찰과 그 성찰에 기반을 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에 대한 열린 생각을 길러주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물론 잠시 힘을 갖게 된 권력자가 자신을 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또 가르치고 싶은 욕심을 낼 수는 있지만, 그것 또한 무모한 욕심과 바람일 뿐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축의 압축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우리 현대사가 ‘헬조선(hell朝鮮)’의 절망감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모두가 잠시 물러서 시간의 흐름을 관조하는 지혜가 요청된다. 한 해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 권력자들에게도 그런 깨침의 순간이 문득 다가가기를 기원하며 두 손 모은다.

 

 

박병기_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전문위원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 문제, 윤리 문제들을 붓다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 대안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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