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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품’이 사라진다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8 16:09 75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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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평화 이야기]‘고향의 품’이 사라진다
“앞으로 10년 후면 마을이 없어질 터인데 지금 집을 지어봐야 무슨 소용이여!”
“앞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여.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누가 알거여!”
“무슨 소리여?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고도 모른다면 말이 되는가! 우리 마을만 해도 해마다 초상을 치르고, 아이 울음소리가 끊긴 지도 벌써 몇 년이 되었지 않은가! 사람은 줄어들고 빈집은 늘어나는데 무슨 수로 마을이 유지된단 말인가?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 괜히 돈 버리며 헛수고 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여!”

-우리겨레 역사·문화 산실-
순례 길에서 들은 마을 분들의 대화 한 토막이다. 우리 고향마을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어찌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 있겠는가? 사실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짐작할 때의 느낌과 구체적 사실로 무너질 때의 느낌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농촌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산실이다. 도시 사회를 낳고 키워준 아버지, 어머니의 품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지탱해 줄 굳건한 대지이다. 우리 삶에서 고향마을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인가?
생명의 나무를 키우고, 평화의 꽃을 피워낸 모태이다. 인간적인 따뜻함과 넉넉함을 길러준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슴이다. 우리들의 영원한 염원인 생명평화의 삶을 실현할 엄숙한 현장이다.
그 누구도 농촌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의 현실은 경제성, 효율성, 경쟁력 논리로 농촌과 고향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함부로 취급하고 있다. 도시 한복판에 서서 TV 뉴스나 신문을 통해 농촌 붕괴 소식을 들을 때의 느낌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농촌문제를 바라보는 종교인, 시민활동가,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은 절박하지가 않다. 지금 무너지는 농촌의 현장에 서있는 뜻있는 사람들의 심정은 너무 처절하다. 숨 넘어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의 심정이다. 가슴이 찢어진다. 몸부림치고 몸부림쳐도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이다.
우리는 해마다 명절때가 되면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는 실향민들을 본다. 돌아가야 할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의 슬픔은 절절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 모두다 실향민이 되어가고 있다. 돌아가야 할 농촌도, 그리워 할 고향도 사라져 가고 있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농촌마을이 없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 옹기종기 모여 따뜻한 정담을 나누는 정겨운 고향마을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삭막할지 숨 막혀 온다. 그리울 때 돌아가야 할 어머니,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잃어버린 국민들의 상실감은 어떤 문제를 몰고 올까? 낳고 길러준 어머니,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경험하지 못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마음 놓고 달려가 넙죽 큰절을 올릴 할머니, 할아버지의 넉넉한 가슴을 빼앗긴 현대인들의 허탈감은 어떤 부작용으로 나타날까? 마음대로 응석 부려도 되는 편안하고 넉넉한 할머니, 할아버지의 가슴에 안겨보지 못할 우리 아이들의 미래 삶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방관 하다간 생명도 위험-
농촌 문제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향 문제가 우리 각자 자신의 문제임에 눈떠야 한다. 내 생명의 고향인 어머니, 아버지의 숨넘어가는 것을 방관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은 도덕성 상실의 마지막 모습이다. 내 삶의 넉넉함을 길러준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만 있는 우리들의 태도는 황폐화된 삶의 극한적 모습이다.
생명의 위험은 바로 국가사회의 위기다. 도덕성의 황폐화는 바로 우리 삶의 위기다. 생명의 위기, 삶의 위기의 상황을 자기 문제로 인식하는 도덕성이 살아나야 한다. 우리들의 절절한 염원인 생명평화의 세상을 위해 비상한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

05. 6. 30 경향신문 [생명 평화 이야기]‘고향의 품’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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