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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혁을 꿈꾸며 - 불자에게 있어 사찰이란 무엇인가?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8 16:14 50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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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개혁을 꿈꾸며 - 불자에게 있어 사찰이란 무엇인가?
-개혁을 꿈꾸는 불자에게..
이정호(생협이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장)

불교를 개혁하자면, 현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지난  94년 개혁불사를 통해 조계종 중앙종무기관을 개혁하는 작업을  진행했으니, 이제는 교구본사들을  개혁할 차례인가?  그리고 4년후부터는 또 지역말사를 개혁하는 작업에 들어가면 되는가? 이렇게  불교개혁은  진행되는 것이 바른 방법일까?
아니면, 80년대말부터 내내 불교개혁을 주장했으나, 그것이 가지는 알맹이가 구조개혁에  머물렀으니, 한 생각 돌리는  연습들을  이제는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인가? 이제는 구조개혁을 넘어 의식개혁 운동을 벌여나가면 불교개혁의 방향이 옳게 잡히는 것일까?그것도 아니면, 현재 조계종 혹은 불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출가자들이 제대로 된 여법한 수행생활에  충실하지 못해서 그러니, 출가자들을 열심히 감시하고 혹은 독려해서 옥석을 가려내는 작업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현재 불교계가  다른 사회분야보다 한  20년은 뒤 떨어졌으니, 힘써 일해서 다른 분야를 추월하는 작업에 골몰해 볼까?

조금 혼란된 상황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쯤은 우리들 머리속에 이미 이 모든 문제를 해산시켜버리는 기민한 사유방식이  스멀스멀 몰려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차분히  인과관계를 따지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끝없는 높이로 추상의 세계로 나아 갔다가도  현실의 준엄한 구체성으로 내려올 줄  알아야 할 것이며,  현실의 암담함속에서도 꿈속의 아늑함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 양쪽의 어느곳에 파묻힐려는 자신의 의식을 끄집어내  흔들어주는 도반들이 한없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는 98년 사태를 거치면서 조계종의 일상이 문제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그런 조계종의  일상을 이루는 한 군상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이제는 조계종의 일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조계종의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스스로를  던져넣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이 전쟁터가 개별사찰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계종의 개혁을  꿈꾼다면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조계종의  개혁을 꿈꾼다면 사찰로 들어가서, 조계종단에  들어오는 돈의 종류를 여법하게 바꾸어야 합니다. '재가연대'의 몇몇분들은 조계종의 돈을 투명하게 혹은 여법하게  관리하자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더군요.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들어온 돈을 관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떻게 돈이 들어오는가가 더욱더 큰 문제입니다.  조계종단의 많은 돈은 신도들의 태어남과 죽음 그리고 몇몇 애경사를  사찰에서 치룸으로 인해 얻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돈이 국가권력에 의해 합법화를 용인받은 관람료에 의해  지탱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돈이 큰 전각과 큰 불상 불사에 의해 충당되고 있습니다. 준엄하게  자문해 봅시다. 이게 '법을 주고 밥을 비는' 석가모니의 잣대에 맞는 방식입니까?
우리가 제아무리 불교 바깥에서  그리고 사찰외곽에서  떠들어봐야, 오늘도 불교계의 7-80%의 돈은 이렇게  들어오고 또  동양최대, 세계최대의 불사로 흘러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집행되는 루트는 약 한세대동안 형성된  설계업, 건축업, 목재업, 시멘트업, 철근업 등등에 의해 형성된 카르텔에 의해 집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단으로 집약되고 있는 200억의 예산은 이렇게 쓰여지는 돈의 몇%정도이겠습니까? 이런 관행이 중앙종무기관이  제대로 잡히고, 교구본사가 제대로 서고, 나아가 개별사찰이 제대로 서는 과정을 거쳐 시정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불교개혁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행동을 조직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이야기로 그쳐 버립니다.
이제 우리는 저마다 사찰로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사찰의 출, 재가 종무원으로  그리고 어떤이는  사찰의 신도회나 청년회로 자리를 잡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서, 그동안 전세대가 만들어 놓은  동양최대의 건축물을 그리고 동양최대의 불상을 천년을 이어갈 불법홍포의 도구로 철저히 만들어내어야 합니다. 그 전각에 사찰주변의 주민들이 구름과 같이 모여들어 법담을 나누는 장소로 바뀌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 불상이 소외되고 가리워지 이 땅의 서민들을  한껏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석가모니의 화신으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전세대의 하드웨어적 불사가 정말로 제대로 된 넉넉한 불사였음을 증명해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세대에게 남겨진 과제는 전세대가  이룩한 그 불사의 전통을 이어갈 소프트웨어와 인재불사를 이루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한국불교를 주무르고 있는 거대한 카르텔은 여법하게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국가권력으로부터 보장된 관람료는 필요없어질 수 있습니다.
나아가 이제 주민들과 사찰은 더 이상 애경사에 관계된  개인이벤트 형식으로만 만나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수행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찰의 땅과 전각과 불상과 각종의 문화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는 대단히 큽니다. 정말로  우리가 마음만 조금  바꾸고 나의 삶의  버르장머리만 조금 바꾸면 단박에 알  수 있는 가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가치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바꿈의 과정을 사찰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찰은 그야말로 불교의  처음이요, 마지막입니다. 수천년을 이어오면서 불법의 모습을 이땅에 구현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며, 수행공간이며,  생활공간이며, 문화의 터전이며, 공동체의 구심입니다.
사찰은 삼보가 어우러지는 공간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하나로 뭉쳐지는 현재의 시간입니다. 우리가 사찰을 수행과 생활이 어우러지는 공동체로 만들어보려는 진지한 노력을 시작한다면, 아마도 더욱더 아름다운 찬사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법우들의  생각은 어떠신지요?(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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