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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생협운동본부'의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7 15:33 65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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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생협운동본부’가 지나온 길, 나아갈 길



이정호(생협이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장)



1. 인드라망에서 생협운동이 태동하기까지

1) 불교귀농학교와 불교생협학교의 인연

* 불교생협운동은 두가지 태동배경을 가진다. 하나는 불교귀농학교를 통해 형성된 귀농자들의 요구이다.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한살림 및 생협운동을 펼쳐왔던 불교생산자들의 원력이다.
* 지난 98년 제1기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장기귀농학교를 거치면서, 귀농자들에게서 큰 질문을 받았다. 그것은 귀농학교를 통해 배운 유기농업은 그것의 판로가 확보되어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에 대하여 당시 불교귀농학교를 진행했던 실무팀은 약 6개월 가량의 학습연구(이 과정에서 영화사 매장이 개설되었다)를 거치면서 ‘제1기 불교생협학교’를 개설하게 되었다. 이때가 99년 1월이다.
* 제1기 불교생협학교에는 4개 사찰에서 약 2-3명의 보살님들이 주지스님의 추천을 받아 모였다. 사전에 봉은사, 능인선원, 영화사, 수원포교당의 주지스님들을 뵙고, 불교귀농학교의 운영과 그 과정에서 겪은 ‘유기농산물판매장’에 대한 필요성을 미리 말씀드린 터였다.
* 불교생협학교에서는 주로 ‘유기농업과 생협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강의하고 ‘생협의 실재 운영사례’에 대하여 전달하였다. 그리고 몇 개의 유기농매장(개인매장과 한살림 매장)을 방문하고, 한살림 물류센터와 실상사농장을 방문하였다. 이 과정은 이 학교의 수강생들과 불교귀농학교 운영진들과의 공동학습의 과정이기도 하였다.
* 당시 실상사에서는 지금은 실상사귀농학교로 이름을 바꾼 실상사장기귀농학교가 ‘실상사농장’에서 주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금 한생명운영위원장인 이향천선생님과 우리단체의 기획실장인 이향민님이 수강생들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던 기억이 난다.
 
2) 부처님오신날 ‘유기농산물 특판’과 불자유기농생산자

* 99년 3월, 불교생협학교를 수료한 분들을 중심으로 하여, 초파일을 맞아 각 사찰에서 ‘초파일 맞이 유기농산물 특판’을 진행하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지금은 이러한 사업이 일상화 되어 있지만 당시로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기농 생산자들이 없었다.
*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시기를 즈음해서 두 분과의 인연이 있었다. 한분은 한살림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시던 유억근선생님이고, 다른 한 분은 남농영농조합대표를 하시며 당시 서울의 양천구에서 매장운영을 하고 있던 황의동 대표이었다.
* 이 두 분의 도움하에 조계사와 봉은사 그리고 수원포교당, 영화사에서 특판을 진행하였다. 목적은 유기농산물에 대하여 사찰대중들에게 알리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몇 천원씩하는 농산물을 팔아서 몇 일만에 5-700만원의 매상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적어도 5-700명 많으면 일 천명에 달하는 사찰대중들이 호응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 이 과정에서 실상사 농장에서 올린 솔차의 에피소드가 재밌다. 솔차를 막걸리 병에 담아 부랴부랴 올렸다. 그런데 그때도 발효중이라서 따뜻한 5월의 날씨에 두껑이 ‘뻥뻥’ 터져버렸다. 이를 본 몇몇 거사님들은 ‘진짜다!’라며 좋아라고 사기도 했다.

2. 물류센터, 매장협의회 그리고 불교생협운동본부

1) 사찰매장과 물류센터를 엮는 매장협의회

* 99년 5월 초파일특판 이후, 이를 계기로 봉은사에서는 8월에 유기농매장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우리의 최초 물류센터였던 컨테이너가 봉은사 한 켠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능인선원과 수원포교당이 99년 9월을 거치면서 각기 사찰에 개설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2번의 불교생협학교를 거친 수강생들이 약 1년여의 기간동안 각 사찰에서 활동을 전개한 성과였다.
* 이러한 영화사를 포함한 네 개 사찰에서의 매장설립 과정은 참으로 놀라운 성과였다. 평소 생협운동과 유기농업운동에 대하여 알지 못하던 분들이고, 평균 4-50대의 보살님들의 활동으로 네 개의 매장이 설립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 이것은 당시 불교귀농학교와 실상사장기귀농학교라는 흐름으로 도법스님의 활동이 각 주지스님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었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교육과 홍보사업이 가져온 큰 성과였다고 볼 수 있겠다. 네 개의 매장을 열었던 분들은 약 1년동안 두 번의 ‘불교생협학교’를 거쳤던 분들이었다. 그리고 한번의 초파일특판을 같이 겪으면서 불교귀농학교의 실무진과 함께 ‘귀농운동의 사회적필요성과 이 사업과 생협의 연관성’에 관한 체계적인 학습을 공동으로 진행한 분들이었다.
* 이 기간동안 우리단체의 생협운동은 ‘매장협의회’라는 최소한의 조직틀을 갖추어 진행하였다. 이 협의회는 각 사찰매장의 책임자들이 매월 1회 참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협의체는 2001년을 거치면서 점차 사라졌다.
* 이 매장협의회의 역할은 실로 컸다. 당시 불교귀농학교의 실무진은 이 매장협의회를 통해 매장의 담당자들과 교류했고, 또 매장의 책임자들은 이 회의를 통해 많은 정보를 소통하고 교육되는 장이기도 하였다.
* 이 매장협의회를 통해 봉은사에 있었던 물류센터는 2000년 봄을 기해 구로동으로 이전하는 논의를 진행하였고, 한번의 생협학교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갖가지 유기농생산물을 매장협의회를 통해 구매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상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피드백도 이 단위를 통해 꾸준히 진행할 수 있었다. 매장협의회 회장님은 유억근선생님이었고, 협의회에는 회장님과 불교도농공동체운동본부(준) 사무국장과 각 사찰매장의 책임자들이 함께 하였다.
* 초창기 매장협의회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 나간 것은 각 사찰의 매장이 각기 사찰에서 ‘뿌리’를 내려가는 문제였다. 당시 매장협의회에서는 이를 위해 두 가지 정책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가 물류센터의 물류비용을 6%에 한정한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약 10%를 유지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약 1년 6개월간 6%대를 유지했다. 그리고 약 1년 6개월간은 8%대를 유지했으며, 작년부터는 약 10%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의 정책은 각 매장이 유지되기 위한 최소한의 물류센터를 사찰매장들의 동참에 의거해서 마련해 간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1999년 11월 구로동 물류센터의 경우 각 사찰들의 동참하여 허름한 창고를 얻었고, 현재의 시흥물류센터의 경우도 각 사찰의 동참과 생산자들의 동참으로 창고임대료와 냉장고, 트럭 등을 구입할 수 있었다.
* 이와같은 매장들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한 초창기의 정책은 각 매장이 사찰에서 생존의 틀을 마련하고, 최소한의 물류센터의 존재로 일정한 성과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초반기의 정책이 꾸준한 ‘교육, 홍보사업’으로 성과있게 이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현재 불교생협운동본부의 유동자금의 어려움이 있게 되었고, 이러한 부담이 많은 부분 각 생산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2) 매장협의회를 넘어서 불교생협운동본부로!

* 매장협의회가 2000년을 기해 사라지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2000년도 내내 진행되었던 ‘지리산살리기운동’에 우리단체의 많은 역량들이 투여되면서 생협에 조직적인 노력이 미진했다. 이러한 흐름은 당시 사무처장이었던 필자가 한동안 생협부분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것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우리단체의 중요한 의결단위였던 집행위원회에서도 생협에 관한 것이 한동안 중요하게 의제로 올라오지 못하게 된 것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두 번째로는 당시 생협부분을 실무적으로 책임지고 있던 활동가들이 ‘생협운동’의 전망을 인드라망 운동과의 관련성에서 찾지 못하여, 여타의 생협과의 차별성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데서도 기인한다. 세 번째로는 생협운동의 초창기에 생협의 교육과 홍보에 집중할 역량을 얻지 못하고 대부분의 활동을 생활재와 생산자를 확보하고, 물류를 정착하는데 집중해야 하는 상황적 조건도 한몫한다고 볼 수 있겠다.
* 그러나 이러한 매장협의회의 활동정지는 향후 그것이 가지는 후유증이 너무나도 컸다. 2001년 12월을 기해 매장과 물류센터를 연결하는 매장협의회의 부재의 문제의식이 공식적으로 생협간담회를 통해 제기되었다. 그래서 2002년 3월에 ‘불교생협운동본부’ 발기인대회를 통해 ‘생협법인’을 준비하게 되었다.
* 1999년 10월에 시작된 매장협의회를 통한 물류센터와 매장의 협력관계는 2000년을 지나면서 이미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매장따로, 물류센터따로’인 시기가 약 1년간 지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물류센터 활동가들은 매장협의회라는 틀 속에서 매장담당자들과 큰 틀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단순 배달맨으로 위치지워지는 과정을 겪게 되었다.
* 이러한 상황속에서 추진된 ‘불교생협운동본부’로의 전환작업은 쉬이 진행되지 못했다. 2002년 3월에 발기인대회를 가졌지만, 2003년 1월이 되어서야 ‘생협법인’을 창립하는 일정을 밟았다.
* 당시 ‘불교생협운동본부’ 생협을 만드는데는 두 가지의 문제의식이 함께 제기되었다. 하나는 당시 물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투명한 거래에 대한 필요성이었다. 또 하나는 교육과 홍보사업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을 위한 최소한의 꼴을 갖추자는 의미였다.

3. 불교생협운동본부와 생협법인화

1) 물류센터의 안정과 생산자의 조직

* 초창기에 우리는 매장협의회를 통해 물류센터의 운영과 매장간의 협의를 이루어 내고자 했다. 그러나 물류센터에서 다루어지는 유기농생산물의 양이 많아지고, 각 매장의 매출액이 증가하면서 매장협의회라는 틀은 재정적인 투명성을 확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주로 이러한 애로사항은 사찰매장에서라기 보다는 생산자들과 생산업체로부터 생겨났다. 세금계산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법인화’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 물류센터가 ‘법인화’를 통해서 재정과 물류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에는 우리와 거래하는 ‘생산자’들에게 신뢰를 심어서 더욱더 많은 생산자들과 ‘직접적인 거래’를 확보하는 잇점도 가져올 수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다른 생협물류센터를 거치지 않는 생산자 혹은 생산지들과의 직거래는 그만큼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더하여 우리 불교생협운동본부(생협법인)와 생산자간의 돈독한 관계를 정립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 ‘(생협법인)불교생협운동본부’의 창립은 이렇듯 생산자들과의 관계개선에서 잇점이 머물지 않았다. ‘생협법인’의 창립을 통해 우리는 불교계의 사찰과 단체에서 요구가 있을시 언제라도 물류를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게 된 잇점도 생긴 것이다.
* 물류센터의 안정화를 통해 불교생협운동본부가 다루는 유기농생산물이 약 500가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것에는 ‘상품의 다양성과 물류의 적정규모화’의 기반을 갖추게 된 것이기에, 초창기 ‘여러 종류의 생협물류센터’로부터 물류지원을 1차적으로 받아 ‘각 사찰’매장에 공급하는 시스템은 벗어날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2) 사찰매장 운영지원과 교육홍보사업

* 이러한 성과를 뒤로하고 지금까지의 한계와 앞으로의 과제들도 또한 남게 되었다.
하나는 물류센터의 운영을 생산자들의 배려와 협력에 지나치게 의지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물류센터를 통해 약 8억원이 유통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약 7천만원 가량의 유동자금이 부족한 상태라는 것은 이정도의 액수가 생산자들에게 돌아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재 적어도 불교생협운동본부의 창고임대료와 냉자시설의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물류부분’의 상당부분을 전적으로 생산자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 두 번째는 각 사찰신도대중과 매장관계자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사업이 미진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불교생협운동본부의 사업은 생협의 두 축인 ‘물류’와 ‘교육사업’ 중에서 ‘물류부분’에 해당하는 ‘생산자확보, 물류센터 안정화, 공급체계의 체계화, 생산물의 질 확보’ 등에 역량을 집중적으로 두여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고스란히 앞으로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 생협운동의 두 축은 ‘물류’와 ‘교육사업’인 것이다. 초창기 우리단체의 생협운동은 철저히 ‘교육사업’부터 시작하고, 유지하는 풍토를 가지고 있었다. 매장협의회를 통한 생협학교의 운영과 매장과 물류센터간의 회의체계를 통한 교류와 협력은 매장책임자들과 사찰대중들에 대한 교육과 홍보사업을 담보하는 형식들이었다. 앞으로 이러한 것을 복원하기 위해 매장책임자들과 물류센터의 활동가들 그리고 이사회와 사무국의 공동노력이 절실하다.
* 세 번째의 과제는 생산자 및 생산지와 사찰매장과의 직접적이고 인간적인 연결을 매개하는 것이다.
앞에서 제기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물류사업과 교육홍보사업이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는 불교생협운동본부 이사회와 사무국의 역할이 더욱더 커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소비자 그룹인 ‘사찰매장 관계자와 사찰신도분들’이 우리의 생산자와 생산지에 대한 정보를 풍부하게 접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우리의 생산자그룹인 ‘생산자위원회’ 소속의 생산자들이 사찰매장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생협운동본부의 주요 사업장이 ‘물류센터와 각 사찰매장’이 되어, 이것을 연결하는 역할이 주였다면, 이제는 ‘각 사찰신도대중과 생산지’들로 확장되어야 하고 구체화 되어야 하여야 할 것이다. 교육홍보사업의 핵심은 정보의 순환과 당사자간의 소통을 매개하는 일이다.
* 네 번째의 과제는 ‘불교생협운동본부’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한 ‘개별조합원과 사찰매장지원’ 사업에 관한 문제이다.
개별적인 생협조합의 경우 가장 중요한 사업이 ‘개별조합원’에 대한 교육홍보사업과 조직화 사업이다. 그러나 불교생협운동본부와 같은 ‘1차 조합간의 연합조직’을 바라보는 ‘2차조합’의 경우에는 ‘개별생협의 교육 그리고 연대와 협력사업, 생산지 확보’등이 될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은 차원을 달리하는 두 가지 성격의 사업인 것이다. 우리 ‘불교생협운동본부’가 2차조합의 위상을 추구하는 한 이러한 모순과 충돌지점을 해결키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4. 불교생협운동의 현황과 전망

1) 불교생협운동본부와 사찰유기농매장

* 현재 불교생협운동은 주로 ‘불교생협운동본부(생협법인)’와 각 사찰의 유기농매장의 틀을 갖추고 진행되고 있다.
* 불교생협운동본부는 생협법인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리고 각 사찰매장은 각 사찰에 소속되어 있는 유기농매장의 모습을 띄고 있다. 이 둘간의 관계는 불교생협운동본부가 각 사찰매장에 대하여 유기농산물 도매물류업자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표현하는 이유는 현재 불교생협운동본부와 각 사찰매장과의 협의구조를 갖추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 각 사찰의 유기농매장의 매출액이 월 약 500만원에서 1,500만원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액수는 참으로 심각한 액수이다. 중견 생협의 매장을 보면 월 5,000만원에서 1억을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심각한 격차를 메우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는 지금 끊어져 있는 불교생협운동본부와 각 사찰유기농매장과의 유기적 협의구조르 복원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각 사찰별 상황에 맞는 매출증대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것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본다.

2) 불교생협운동본부와 개인매장

* 개인매장은 지난 3년여의 기간동안 주로 소액의 물류를 타 물류센터를 대신하여 우리와 거래하는 방식으로 인연을 맺어왔다. 그러나 이 인연들은 현재의 매출액만 보더라도 우리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을뿐더러 앞으로 이념과 정책적 차원에서 보다라도 그리 바람직한 관계로 나아갈 가능성이 적어 보인다.
* 따라서 지금시기 개인매장은 일정한 액수를 점층적으로 약속하여 그것의 이행여부에 따라 우리들과 중장기적 관계를 정립해 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으로 개인매장은 우리의 이념과 철학을 함께하는 개인사업자들의 동참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성은 있다. 인드라망의 회원과 예비귀농자 중에는 우리의 뜻에 동참할 수 있는 잠재적인 유기농사업자들이 꽤 있다고 본다. 이제는 이러한 분들을 발굴하고 교육하고, 육성하여, 도반이 되는 계획을 세워가야 할 때이다.

3) 불교생협운동본부와 개인조합원

* 현재 불교생협운동본부에서 개인조합원의 매출비율은 극히 미비하다. 그러나 불교생협운동본부에서는 개인조합원의 매출확대를 위한 활동을 기획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본다. 도리어 불교생협운동본부의 시급히 개인조합원과 작별을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 대신 불교생협운동본부는 각 사찰매장과 협의 기구를 만들고, 각 사찰별 매출증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우리와 뜻을 함께 할 개인매장 사업자들을 육성하는 사업들을 만들어 진행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개인조합원들은 빠른 시일내에 ‘(가칭)인드라망생협’을 꾸려내어 개별조합으로서 ‘불교생협운동본부’에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 불교생협운동본부는 현재 ‘생협법인’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은 맞지 않다. 불교생협운동본부는 일정한 형식을 갖춰 개인매장과 개별조합과 생산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사단법인’의 방식으로 변화되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 불교생협운동본부와 ‘친환경공양미운동’에 대하여

1) 불교생협운동본부는 ‘**사찰생협’을 만들어 가는 역할

* 불교생협운동본부는 지금까지 개인조합원과 사찰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방법을 택하여 왔다. 그러나 향후 불교생협운동본부는 ‘**사찰 생협’ 혹은 ‘**지역생협’을 만들어가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 이러한 조직방향은 마치 ‘수도권생협연합회’가 수도권지역의 개별생협들이 함께 만들어 공동성장하고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수도권생협연합회를 수도권지역의 약 7-8개의 개별생협들이 함께 만들었고, 현재는 이 생협들을 중심으로 약 15개의 크고작은 생협들간의 연대와 협력사업을 이 지역연합회가 짊어지고 가고 있다. 우리 불교생협운동본부는 초창기 5개의 사찰매장들이 중심이 되어 구성했다면, 지금부터는 ‘불교생협운동본부’가 이 4-5개의 사찰매장을 ‘**사찰생협’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여타의 사찰에 생협을 꾸려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방식이다.

2) 친환경공양미운동은 각 사찰에 유기농매장의 계기를 만드는 역할

* 친환경공양미운동은 목적이 ‘공양미를 친환경쌀로 바꾸어가는 캠페인’을 진행하는 것이다. 엄밀하게 보면 불교생협운동본부와는 사업목적이 다르게 설정되고, 사업의 동력도 차이가 클 것이다.
* 다만 불교생협운동본부와 교차되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친환경공양미운동’을 통해 인연이 된 사찰이 ‘불교생협운동본부’에서는 유기농매장과 사찰생협으로까지 운동이 조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역할한다는 것이다. 불교생협운동본부의 입장에서 본다면 ‘친환경공양미운동’의 영역은 영업개척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6. 인드라망생명살림불사와 불교생협

* 불교생협운동본부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참여기관이다. ‘사단법인 한생명’이 지역형참여기관의 위상을 가진다면, ‘생협법인 불교생협운동본부’는 부문형참여기관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 있어서 참여기관이라 함은 인드라망의 내부조직이라는 의미와 이 내부조직이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개념이다.
*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이러한 위상에 관해 새로이 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그때 가서 새로이 논의할 필요는 있겠다. 그러나 지금시기 그것을 다시한번 논의할 필요성은 없겠다 싶다. 지금도 ‘불교생협운동본부’의 활동은 ‘불교귀농학교’나 ‘실상사귀농학교’ 그리고 ‘실상사작은학교’와 ‘한생명의 지역활동’, 인드라망가을한마당의 활동이 함께 하는 것에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임에 틀림이 없다고 본다.
* 아직까지 불교생협운동은 생협운동에 우리 인드라망생명공동체가 지향하는 ‘연기적 세계관’과 ‘소지역도농공동체’, ‘생태사찰과 사부대중공동체’의 내용들을 상즉적으로 구현하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 조직적 목표로 합당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생협운동에는 귀농학교가 있으며, 작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화와 공동체교육의 내용이 있으며, 한생명이 구현하고자 하는 ‘소지역도농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즉성의 구현이 우리 불교생협운동본부의 목표가 아닐까 한다.
*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체차원에서는 ‘각 참여기관’이 약 6-7년을 활동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전체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업들을 수렴해 가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를 ‘생명살림불사’라는 이름을 통해 모으고자 한다. (사단법인)한생명과 지리산생명문화교육원은 현재 교육원이 터전하고 있는 땅값의 부채를 청산하는 사업을 공동의 사업으로 제안했다. 그리고 교육위원회 및 불교귀농학교, 사무처 등에서는 ‘서울의 교육센터’를 확보하는 문제를 제안했고, 작은학교의 경우 학사건립의 문제를 제안했다.
* ‘인드라망생명살림불사추진위원회’에서는 이러한 공동의 사업들을 모아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전체사업으로 이 일을 풀어가고자하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 내부기관이다. 우리 ‘불교생협운동본부’에서도 ‘안정적인 물류센터의 확보’가 앞으로 제기될 가장 큰 사업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작업과 ‘생명살림불사’ 차원의 큰 접근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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