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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에서 지낸 하룻밤(2002년도)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8 16:17 58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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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에서 지낸 하룻밤(2002년도)
이정호(생협이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장)


1. 새벽예불과 참선을 마친 시간이다. 실상사 뜨락에는 작은비가 내리고 있다. 주변에서는 오랜가뭄을 덮어주고 있는 고마운 비에 대해 좋아한다. 아침공양을 위해 모여든 공양간에는 약간의 아쉬움과 세세한 마음씀의 위로 말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실상사는 오랜가뭄에 반가운 비나, 사찰생태문화기행팀에게는 약간의 고충이겠군요'

2. 지난 두 달동안 인드라망생명공동체와 조계종사회부, 맑고향기롭게, 불교신문사, 중앙신도회는 주기적으로 만나 '사찰생태문화기행'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의논했다. 다소 길어진 행사의 제목에는 연유가 있었다.

첫째, 90년대 들어 문화기행이라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국토를 다닌적이 있다. 이는 우리민족과 함께 숨쉬어온 길가의 작은 돌맹이와 잡초마저도 정감있게 바라보는 심성을 대중적으로 공유한 커다란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기행'에는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고 있는 문화유산의 '신앙성'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부족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문화유산이 가지는 대중의 희원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수행할 수 있는 불교계에서 채워져야 할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번의 실상사의 사찰생태문화기행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진 몇 개의 단체들이 함께 새로운 문화기행의 방식을 모색하기 위해 가진 행사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 문화유산의 약 6-70%를 보유하고 있는 불교계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기행이 만들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둘째, 최근 들어 기행 혹은 여행의 주제가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흐름이 '생태기행'이라는 방식이다. 생태계 파괴와 그로인한 '총체적인 생명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대중들의 생태계에 대한 소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갯벌생태기행 들꽃기행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소위 '환경주제가 있는 기행문화'는 당분간 대중들의 벗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프로그램도 역시 '기행'과 '관광'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기행은 여행대상지와 여행자가 하나가 되기 위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관광은 여행대상지는 여행자들을 위한 장소이고, 여행자는 최대한의 편리함을 추구하면서 여행지를 구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진정한 생태적인 것이란 떼거리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갯벌에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놔두면 된다는 비아냥도 가끔 듣는다.
실상사 사찰생태문화기행은 '둘러보며 즐기기'에서 벗어나 '대상과 하나되기' 혹은 '대상에 몰입하기'를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사찰의 생태적 친화성에 대해 기행이라는 방식을 통해 '알아보기'를 시도한 것이며, 민족문화재를 박물관에서 꺼내어 '현실속에서 살아있는‘ 대중들의 희원의 상징으로 '위치짓기'를 시도한 것이다.

3. 제1차 사찰생태문화기행의 프로그램은 크게 세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의 단락은 생태문화기행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다.
차안에서는 주최측의 행사의 의미를 말하고, 참여자들의 기대에 대해 서로 말했다. 이 시간을 통해 참여자들은 행사에 대한 기대를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김재일님의 아라리를 통해 접근한 자연과 인간문화와의 관계는 흥을 돋우는데 굉장했다. 정선아라리의 쉬엄쉬엄 넘어가는 가락은 아침에 높은 밭으로 향하는 숨소리가 심어져 있음이다. 그리고 진도아라리와 밀양아라리의 경쾌함은 너른 평야지대의 넉넉함을 품고 있다. 그리고 생태시 낭송 시간에는 오랜만의 경험이 잊혀진 '소리로 읽는 감각'을 일깨우며 마음을 차분히 내려앉게 했다. 실상사에 도착하여 진행된 김재일님의 강의는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생명위기에 대한 대안으로 불교적 생활양식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을 시사했다
두 번째의 단락은 주지스님의 환영법문과 새벽예불과 좌선 그리고 실상사의 문화재 및 귀농전문학교 탐방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단락에서는 구산선문 최초가람으로서 실상사가 가지는 역사적 의미와 새롭게 진행되고 있는 실상사의 생명공동체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모습을 경험했다.
몇번의 강의와 농장실습체험을 통해 진행된 '실상사와 하나되기' 프로그램에서 많은 참여자들이 공감을 표했다. 그동안 귀농학교 현장교육장으로서의 실상사는 귀농교육 참여자들로부터 크게 공감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의 경험은 색달랐다. 평소 귀농이나 생명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갖지 않던 참여자들이 새로운 사찰운영과 사찰모델에 관심과 동의를 표한 것이다.
세 번째 단락은 지리산의 생태체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상사에 인근하여 있는 '화림원'(화엄학림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한 수행도량)까지 약 1킬로미터의 오솔길을 따라 피어있는 야생화와 이름모를 풀들과 몇분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대화하며 걸었다.
그리고 실상사에서 약 3-4킬로미터 떨어진 함양군 마천읍의 한 험한 계곡을 탐방했다. 굉장한 비경이었다. 아쉽게도 그 협곡은 수몰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리고 인근 지역의 수십개의 사찰은 습한 기후대로 바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인근의 서암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서암에서는 호남대의 오구균 교수님의 열강이 시원한 산사의 나뭇밑에서 진행되었다.
지리산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가치는 실로 대단했다. 수도 서울 면적의 70%에 달하는 광활한 구역의 지리산은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지켜지고 있는 몇안되는 생태적 보고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식물의 3분의 1가량이 지리산에서 서식하며, 3가지 기후대가 함께 나타나는 곳으로 각종 천연기념물과 환경보호종이 자생하는 지역이라고 표현했다. 오랫동안 지리산의 식생과 생태에 대하여 조사, 연구한 생태학자의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나온 것은 예의 그 지리산댐의 문제에서이다. 기후대의 변화를 초래할 지리산댐의 건설을 반드시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4. 서울로 향하는 차안이다. 곤히 주무시는 모습들이 곱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에서는 향후 새로운 형식의 사찰생태문화기행에 대한 의미있는 실험을 한층 발전시켜 나갈 계획을 가지고 있다. 이는 두가지 방향에서 모색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나는 실상사와는 또 다른 사찰을 대상으로 사찰생태문화기행을 시도해 보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으나 의미있는 시도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실상사를 중심으로 한 지속적인 사찰생태문화기행을 잡아보는 것이다.
사실 실상사의 경우는 아주 특이하다. 천년의 고찰이며 새로운 생명문화운동을 시도하고 있는 가람이며, 사부대중 공동체를 지향하며, 사찰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 구성을 위해 지역민들과 화합을 시도하는 사찰이다. 이러한 특이함은 한국불교 혹은 한국사회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어떤 것이든 문제의식의 건강함과 지속적인 노력이 곁들여진다면 분명 많은 대중들이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착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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