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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것이 평화다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8 17:06 65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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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것이 평화다
매닉(피자매연대 활동가/불교귀농학교 18기)


팽택시 팽성읍 대추리에 가 본 적이 있는가? 산 하나 없이 끝없이 펼쳐진 논 위로 철새들이 줄지어 비행하고, 저녁이 되면 저 멀리 지평선 송전탑 사이로 붉은 해가 아름다운 노을을 수놓고 늬엇늬엇 넘어가는 그곳. 한 초등학교 교사가 그 노을이 하도 아름다워 “바람이 머물다가 들판에...”로 시작하는 동요를 지었다는 그곳.

‘대추리’ 하면 흔히들 먹는 대추를 떠올리지만, ‘대추’는 큰 대(大)에 가을 추(秋)를 쓴다. 이름 그대로 대추리 일대는 누구나 부러워할 곡창지대이다. 그 너른 들녘은 주민들이 일찌기 맨손으로 바다를 막아 갯벌을 농토로 바꾼 것이다. 바다를 막고서도 십 여년을 소금기를 울쿼내고 거름을 주는 등 지금의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주민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원래 대추리 마을은 지금의 평택미군기지 자리에 있었다. 1952년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들어오면서 대추리 주민들은 가제도구 따위를 챙겨나올 새도 없이 하룻밤에 맨몸으로 쫓겨나야 했다. 추위와 배고품에 굶주리다 못해 대다수의 아이들과 노인들은 죽고말았다. 고향을 뺏기고 가족을 잃은 서러움을 뒤로 하고 주민들은 힘을 합쳐 미군기지 철조망 바로 옆에 지금의 마을을 만들었다. 그런 통한의 세월을 고스란히 가슴에 묻어온 80, 90이 다 된 노인 분들이 지금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투쟁의 주인공들이다. 정부와 국방부는 ‘외부세력’이 들어와 순진한 마을 사람들을 세뇌시켰다고 떠들어대지만, 한번이라도 대추리에 가 본 사람은 안다. 오히려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의식화’되어버린 ‘외부세력’들이 더 많다.

팽택 미군기지확장 저지투쟁은 미군에 의해 침탈당한 주민들의 한맺힌 역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동시에, 현재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에 의해 한반도가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평화운동이다. 평택미군기지확장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PR)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GPR이란 간단히 말해 예전에는 그 주둔 지역에만 국한되어 있던 미군을 어느 분쟁지역이건 미국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도록 전략의 판을 새롭게 짜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 주둔한 미군이 유사시 ‘신속기동군’이 되어 중국이나 러시아 등 주변국들을 선제공격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말 속에 담긴 의미이다. 기존의 방어군에서 공격군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 전체가 미군이 도발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 쉽다. 이러한 의미들을 숨긴 채 정부는 평택 기지를 확장하는 대신 서울의 용산기지 등 다른 큰 기지들을 반환받는 것이어서 우리에게 더 이익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지확장이 GPR의 일환이라는 것은 왠만한 보수언론들도 이미 기사화한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에게 기지를 내주어야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여론은 팽배하다. 똑같은 국익론이 이라크 파병 때에도, 김선일씨가 죽임을 당할 때에도 유령처럼 우리의 주위를 떠돌았다. 과연 미군기지확장을 둘러싼 ‘국익’의 깊은 뜻은 무엇인가? 기지를 확장해서 이익을 얻는 세력은 누구인가? 좁게는, 기지가 넓어지면 상권이 넓어져 장사가 더 잘 될거라 믿는 근처 기지촌 상인들이 있고, 넓게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체제 속에서 농업을 포기하고 핸드폰, 자동차, 컴퓨터를 팔아 더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세력들이 있다. 이들은 한미자유무역(FTA) 등을 추진하는 세력들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미국과 미국을 등에 업은 개발독재세력은 민중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미국 중심의 상품 경제와 시장에 종속시켜 더 이상 미국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도록 한반도를 그야말로 ‘기지촌화’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이런 미국식 라이프 스타일과 시장경제를 향한 개발주의의 망령은 군부독재가 물러가고 참여정부가 들어선 요즈음, 오히려 ‘신자유주의’, ‘세계화’ 바람을 타고 더욱 노골화된 양상을 띄고 있다. FTA가 한반도를 ‘기지촌 경제’를 넘어 남미처럼 완전한 ‘식민지 경제’로 포섭시키려는 미국의 전략이라면, 주한미군 재배치는 이를 위한 물리적이며 실제적인 힘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는 붕괴 직전에 있다. 만성적인 경기불황에 외채 규모는 천문학적 숫자에 이른다. 지금의 온갖 현란한 소비문화는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 빌려온 외채에 의해 지탱하고 있다. 최근에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의 군사 도발은 이러한 경제를 조금이라도 더 유지시키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다. 그러므로 기지를 내어주는 것은 앞으로 곧 파탄날 미국식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농업을 희생하고, 농촌과 시골을 파괴하고, 생명과 평화를 말살하고, 풀뿌리 민중의 자립과 자치권을 내팽개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미군에 의한 침탈을 직접 겪어왔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계속 농사짓는 것이 한반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 민중의 평화와 자립을 위한 비폭력 직접행동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폭력의 삶을 회복하는 길은 비폭력의 길을 따라 가는 것뿐이다. 간디가 소금을 독점하고 전매하는 영국 제국에 대항해서 직접 손으로 소금을 채취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행진해 갔듯이, 대추리, 도두리 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평택으로 평화행진을 떠나야 한다. 간디와 함께 걸어가던 민중들이 제국의 경찰과 군대들이 쏜 총과 칼에 맞아 쓰러졌듯이, 2006년 5월 4일과 5일, 대추리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곤봉과 방패에 맞아 피흘리고 연행되었다. 하지만 작은 시냇물이 모여 큰 강물을 이루듯,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논둑을 따라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대추리, 도두리로 줄지어 들어가 국방부가 농사 못짓게 쳐 놓은 철조망을 끊어야 한다. 어떻게든 주민들이 계속 농사 지을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바로 생명평화의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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