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의 역사 속에서 생활협동조합 > 마을공동체

본문 바로가기

인드라망 아카이브

협동조합의 역사 속에서 생활협동조합

인드라망사무처
2022-11-08 22:27 592 0

본문

협동조합의 역사 속에서 생활협동조합
이정호(인드라망생협 상무이사)


1. 요새 ‘불교생협연합회(준)’의 실무활동가들은 생협운동의 역사에 대하여 공부하고 있다. 새삼스레 다시금 생협운동에 대하여 공부하는 것으로 인해 작은 기쁨이 하나 더 생겼다.
개인적으로는 1998년 몇 달에 걸쳐 생협의 역사와 기초이론에 대하여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생협과의 연대활동과 귀농학교 운영과정에서 각종의 현장실습을 통해 현장을 익혔다.
요즘 공부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이제 공부를 하면서 좀더 큰 폭의 그림이 들어온다. 예전에는 생협의 기본개념이 학습의 중점이었다면, 이제는 흐름과 맥락성속에서 생협을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또 하나의 재미는 이론과 실천적 과제가 한꺼번에 들어온다. 지난날의 생협공부는 이론적 무장을 몇 달에 걸쳐 속성으로 하고, 각종의 현장공부는 몇 년에 걸쳐 지리한 시간을 지나면서 가능했다.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생협운동의 7대 원칙’에는 학습과 교육의 기회를 꾸준하게 실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또한 이 학습과 교육의 기회를 일반인들에게는 협동조합의 의의를 확산시켜야 한다는 명제로 적극 권장하고 있다.


2. 생협은 협동조합의 일종이다. 협동조합이라는 방법론은 인류가 약 160여년전에 발견한 지적유산이다. 이러하니 ‘생활협동조합’에 대한 이해는 ‘협동조합’의 기원에서 시작하는 것이 맞다.
요즘의 협동조합은 ‘농업협동조합’, ‘임업협동조합’, ‘노동자생산협동조합’, ‘농민생산자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 ‘의료생활협동조합’, ‘교육생활협동조합’, ‘주택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 많은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익숙한 것은 이른바 ‘농협’과 ‘신협’이다. 그리고 최근들어서는 ‘생협’이 고개를 살포시 내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협의 현대적 대두는 90년대 초반 동구사회주의권의 실험이 현실적으로 막을 내린 이후로 볼 수 있다. 당시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대안으로 인류가 실험하였던 큰 흐름이 좌절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일부의 지식인들과 실천가들이 ‘암중모색기’에 들어갔다. 이들의 눈에 띈 것이 사회주의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아니면서도 분명하게 존재하던 ‘몬드라곤’이었으며 일본의 생협이었다.
당시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거둘 수 없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생산양식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한 소유권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의사결정의 민주주의에 대한 방식이었다. 자본주의는 이에 대하여 생산양식의 사적소유와 그에 입각한 위로부터의 독재적 의사결정의 타당함에 대하여 합리화 하는 제도였기에 그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몬드라곤’과 ‘일본생협’은 소유자와 경영자와 이용자가 하나인 요술장치를 가지고 있다고 비춰졌다. 소유자와 경영자와 이용자가 하나라면 소유권의 문제와 의사결정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이 생겼다. 당연히 이에 대한 치열한 학습과정이 수반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초창기에 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이 ‘협동조합만능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주의 혁명의 역사속에서 협동조합은 레닌식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판판히 그 ‘비혁명성’을 폭로당해온 터였다.
실재로 우리나라의 농협의 역사는 충분하게 이를 증명하는 경험을 선물했다. 우리나라의 일군의 활동가와 지식인들에게 한 10여년의 기간동안 ‘몬드라곤’과 ‘일본생협’은 이러한 이중적인 위상에 놓여 있었다.


3. 인류사에 있어 ‘협동조합’은 1844년에 영국의 로치데일이라는 곳에서 탄생했다. 로치데일은 산업혁명의 국가 영국에서도 가장 섬유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러한 곳에서 협동조합이 탄생한 것에는 당연하게도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자본주의 초창기에는 급속한 노동력의 집중이 필요했다. 큰 공장들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당연한 현상이었다. 교통이 발전되어 있지 않았던 그 시절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밀집지역을 대공장 주변에 형성했다. 로치데일이 대표적인 곳이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살았으나, 아직 그곳에는 생활의 편의를 갖추지는 못했다. 시장이 가까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았고, 몇 개 안되는 가게는 당시 노동자들의 생필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에는 부족했다. 노동자들의 생필품은 턱없이 부족해 비쌌으며, 그 품질 또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의 일부는 당시 유명한 공상적 사회주의자였던, 오웬의 사상을 알고 있었다. 일군의 노동자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문제를 함께 논의하기 시작했다.
오웬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 공동체를 실험한 ‘유능한 경영자’였다. 물론 오웬의 시도는 그가 가진 이상과는 별도로 현실속에서는 구현되지 못했다. 위로부터의 이상에 의한 생산공동체의 건설을 상상했던 오웬은 비록 자신의 실험은 험난했으나, 협동조합이라는 인류의 자산이 탄생되는데 긍정적, 부정적 경험적 교훈을 주었다.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위로부터의 이상적 공동체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협동의 이념’과 조합이라는 형태를 통해 자신들의 가장 근원적인 이해를 풀어가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필품을 싼 값에 안정적으로 들여오기 위해, 조금씩 출자를 하였다. 그렇게 마련된 자본금으로 작은 가게를 열었으며, 이 가게에 들여온 생필품을 반드시 현금을 주고 스스로 이용하였다. 물론 그 생필품은 과거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 좋은 것이었으며, 안정성이 있게 공급되었다.
이 가게는 어느새 약간의 잉여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 노동자들은 이 잉여를 순서를 정해서 사용하자는 원칙을 합의하였다. 그들은 제 비용을 제외한 이 잉여를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각 출자자들에게 배분하는 순서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영국의 경험은 20세기를 맞기 전에 이미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초기 협동조합은 이렇듯 초창기 영국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을 협동을 통해 해결하고자 생겨났다. 1-2차 세계대전을 겪고 새로운 과제가 지역과 시대를 달리하면서 제기되기까지 이 유형은 크게 변화되지 않고 100년을 유지하였다.


4. 협동조합의 역사에서 ‘생활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는 일본에서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협동조합의 역사는 대략 세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진행되었다고 평가된다.
제1시기는 일본의 근대화시기에 있었다. 이 시기의 협동조합은 1870년대 이후 일군의 지식인들에 의한 계몽적 형태의 협동조합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대중화되지 못했다.
제2시기는 일본의 자본주의화가 가속화되었던 20세기초반에 노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이 시기의 협동조합은 대개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운동을 통해 조직적으로 훈련된 토양에서 출발하였다. 그랬기에 제1시기의 일부의 지식인 그룹중심에 비해 대중적 기반을 가질 수 있었다.
제2시기의 기본 동력은 노동자들의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키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협동조합운동이 노동운동과 함께 성장하면서 정부로부터 사회주의 운동으로 간주되어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제3시기는 2차 대전이후 전후복구시기에 나타났다. 1948년을 즈음하여 일본에는 생협법(우리나라는 2000년 정도)이 제정되었다. 물론 생협법 재정까지 많은 생협들이 생겨났으며, 정부는 이를 합법화의 길을 위해 법을 재정한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생협들이 생겨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생활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었고, 생활협동조합이라는 협동조합운동의 새로운 단계를 열기도 하였다.
약 50년이 지난 오늘날 일본생협은 조합원이 약 2200만명(인구가 1억 2천만, 2001년)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2차대전 이후 약 50년간의 유럽의 생협운동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의 생협운동은 이 시기에 특히 1970년에서 1990년간의 20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되었다.


5. 우리의 공부는 대략 네 가지의 의문으로 이어졌다.
하나는 2차 대전이후에 유독 일본의 협동조합운동이 ‘생협’이라는 새로운 장을 마련하면서 화려한 부활에 성공했을까?하는 의문이다.
둘은 그 기간동안에 유럽의 협동조합운동은 어떠한 길을 걸었냐는 것이다.
셋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생협 혹은 협동조합이라는 ‘운동’은 어떻게 해야 개인적으로도 좋으며, 사회적으로 좋은 운동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이다.
네 번째는 시대와 지역을 달리하여 생협운동의 이슈는 약간씩 달리하여 왔다. 대표적으로 초창기 로치데일의 경험과 일본생협의 기본이슈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국의 한살림은 또한 차별성을 가진다. 이 각각의 차이점을 보자면, 현대 우리사회의 생협운동의 중심이슈는 어떻게 잡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의문이었다.
우리의 공부는 이러한 의문을 풀어가는 것으로 더 진행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문제들을 다루어 볼까 한다. 그리고 우리 공부의 큰 의문인 ‘귀농과 생협이 어떻게 만날까?’, ‘농업농촌의 회생과 생협운동’, ‘평화적 일자리와 생협운동’, ‘생명평화의 세계질서와 생협운동’ 등에 대한 확고한 관계정립을 위한 과정은 계속될 것이다.

이정호 합장(2007년 2월)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