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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내주시는 선물 보따리

인드라망사무처
2022-11-13 22:05 7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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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보내주시는 선물 보따리

김귀옥(거창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현재 인드라망 운영위원)



우리 집의 먹거리를 책임지는 분이 친정어머니이시다. 우리 어머니는 인드라망 생협에서 보내는‘제철 꾸러미’의 왕팬이시다. 특히‘제철 꾸러미’에 동봉해서 보내는 편지(?)글은 꼭 읽어보시고, 우리 집 게시판에 붙여둔다. 안 읽어 볼래야 안 읽어볼 수가 없다. 그 편지글 속에는‘제철 꾸러미’를 꾸리시는 분들의 당부 말씀과 식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간단한 요리 방법 등도 들어 있다. 내용 중 가장 압권은


‘어기여차 유정란 10알 : 암수가 어울려 놀다가 연애도 해서 낳은 계란’


‘제철 꾸러미’가 온 날 우리 밥상은 정말 풍성해진다. 그리고 무엇을 해 먹을까 하는 고민을 할 필요도 없다. 먹거리에 대한 불신은 당연히 사라진다. 먹거리에 대한 걱정의 짐을 많이 들어낼 수 있다. 명실공히 우리집의 밥상을「얼굴 있는 생산자와 마음을 알아주는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것이다.


며칠 전 8월 첫째 주 제철꾸러미가 도착했다. 냉장고에 밑반찬이 될 만한 달걀도 없고 채소통이 텅 비었는데 잘 된 일이다. 딸아이와 4일 간 동반 단식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라서 당장에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막 텃밭에서 따온 듯한 호박과 호박잎, 그리고 꾸러미의 보석인 두부, 달걀, 밑반찬인 콩조림, 강원도 특산물인 옥수수 등이 소담스럽게 들어있다.

단식을 하게 되면 음식으로부터 한 걸음 떨어져 있게 되는 데, 오히려 음식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단식을 하면서 겪게 되는 배고픔은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먹고 싶다’는 욕망에 맞닥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단식 동안은 야채효소를 먹고 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다. 오히려 몸도 가볍고, 일도 단출해지고, 생활도 단순하게 정리된다. 그러나 단식 기간 동안 외출을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게 되면‘먹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에 사로잡힌다. 그러면서 먹는 일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맛있게 먹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적인양 부추기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산더미처럼 음식을 쌓아놓고 온 세계의 식품을 판매하는 거대기업의 슈퍼마켓, 장바구니가 미어터지도록 과자며 채소 고기를 잔뜩 싣고 가는 부부들, 눈만 돌리면 세상은 거대한 먹거리로 가득 차서 마음만 먹으면,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먹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예전에는 먹거리가 부족해서 문제였다면 지금은 너무 많이 넘쳐서 문제가 되고 있다.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 해 줄 수 있습니다.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고, 혹자는 일과 좋은 유머에 쓰고, 내가 듣기로는 또 혹자는 하나님께 돌린다고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는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 과히 나쁠 것도 없겠지요.』


카잔차키스의책「희랍인조르바」중조르바가장군에게한말중일부이다. “나는 내가 먹는 걸 일과 좋은 유머에 쓴답니다.”30대쯤에 이 책을 읽고 아주 신선하게 다가 온 말이었다. 먹는 것은 먹는 것일 뿐, 먹은 음식으로 어디인가로 회향한다는 생각 자체를한적이없었던것같은데.‘ 아니, 그러면먹고나서그먹은음식으로어딘가에 보답을 해야 한단 말이야’하는 한심한 생각도 했던 것 같고, 나름‘아니야 내가 비록 저런 생각까지는 못했어도 밥값은 하고 살았어’하는 생각도 하며, 조르바의 자유롭고 거침없는 일갈이 부럽기도 했었던 것 같다.


다시 단식이야기로 돌아오면, 짧은 단식 기간이지만(남들은 보름도하고 백일도 한다지만), 먹는 일을 중단하면서 얻는 가장 큰 수확은 먹는 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보식 과정을 통해서 다시 음식의 맛을 알아가고 배운다는 것이다. 천천히 맛을 보며, 귀하게 먹으며, 소박한 식사를 만찬처럼 먹게 된다. 음식의 향도 새로 느낀다. 먹거리에 대하여 철이 든다고나 할까. 먹는 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일인지, 인간답게 먹기 위해서는 아무렇게나 음식을 대하면 안 된다는 평범한 생각에 다시 눈을 뜨게 된다.

인드라망‘제철 꾸러미’를 받으면서 우리 식구들은 채소 하나하나, 두부 한 조각 한 조각, 달걀 한 개가‘마트에 가득 쌓인 그냥 먹을 것’이상의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사람이 먹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했으니 잘 먹는 일은 인생을 잘 사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쌀 한 톨에 우주가 들어 있다고 했으니, 인드라망 제철 꾸러미에는 해와 달과 별과 바람과 사람이 들어 있다. 우주의 집합체이다. 내 몸이 그러하듯이.”


“...단순히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차원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생산과 소비, 유통, 가공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먹을거리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다국적 기업농축산복합업체들의 횡포를 막아내는 멋진 사업이기도 합니다.”


‘제철 꾸러미’편지 소식란의 글이다. 이런 거창한 뜻까지는 몰라도 그냥 우리 식구들, 우리 이웃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또 희랍인 조르바처럼 우리가 먹은 것을 좋은일에 바치는 마음으로 인드라망 제철 꾸러미 운동에 물방울 하나 보태면 좋겠다. 이런 좋은 운동이라면 이웃에게 마음껏 권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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