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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 삶을 준비하는 소리

인드라망사무처
2022-11-13 23:32 7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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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 삶을 준비하는 소리
 

하루는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근처 아주 작은 저수지에서 와글와글 개구리 소리가 난다. 처음에는 무슨 아기 새들이 알을 까고 나와 노래를 하는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꽃샘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도 덜 떨어진 개구리들이 마구 울어대는 소리다. 아,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도 위대한가? 그 추운 겨울, 얼어붙은 땅속에서 가만히 잠자며 기다리던 개구리…. 그러다가 시나브로 따뜻해진 기운이 언 땅을 녹이기 시작하자마자 도무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땅 위로 팔딱 올라온 것이다. 더 이상 차가운 땅속이 아니라 맑고 따스한 하늘을 보고 싶은 조바심, 따뜻한 봄바람을 쐬며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은 떨림, 이제 곧 만나게 될 암컷 또는 수컷을 향해 사랑의 노래를 실컷 부르고 싶은 두근거림, 이 모든 것이 그 한 몸 땅위로 치솟게 했으리라.
 
이제 나도 슬며시 일어나 옷 갈아입고 거름을 치러 나가야 한다. 하기사 나는 겨울 내내 생태 뒷간에다 받아 놓은 똥과 오줌을 퇴비 간으로 옮기는 일을 해오지 않았나? 이제 그 퇴비 간에서 거름을 꺼내야 한다. 대안학교를 갓 졸업한 막내(아들)와 함께. 같이 일을 하면 일 자체도 많이 쉬워지고 재미도 있지만, 뭐든지 아이에게 하나씩 가르쳐주고 싶은 생각도 있다. 내가 뭘 특별히 잘 해서 가르쳐준다기보다 같이 하다 보면 저절로 일머리를 터득하게 될 것이다. 또, 언젠가는 내가 사라지고 없더라도 아이가 혼자서 해내야 하지 않겠나?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인생이고 생명의 흐름이다.
 
퇴비 간에서 막 꺼낸 거름은 참 신기하게도 잘 숙성되었다. 가무잡잡하면서도 고슬고슬하다. 미생물들아, 정말 고맙구나. 감사 인사가 절로 나온다. 밥에서 고맙게도 똥이 나오더니 바로 그 똥들이 톱밥을 만나고 풀을 만나고 부엽토를 만나 마침내 이렇게 거름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이 거름을 써서 텃밭에서 밥을 만든다. 물론 여기서 밥이란 꼭 쌀만은 아니다. (언젠가 벼농사도 짓고 싶기는 하다.) 콩이나 푸성귀, 매실도 다 밥이다. 이제 이 거름은 매실나무와 감나무, 대추나무를 더 잘 키울 것이다. 또, 감자, 고추, 상추, 방울 토마토, 들깨, 고구마, 그리고 김장 배추까지 키울 것이다. 일부 채소, 특히 김장 배추를 자급한다는 것은 내 삶에 큰 기쁨이다. 아파트 몇 채보다 작은 텃밭 하나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보다 텃밭에서 일할 때 더 즐겁고 느끼는 것도 많다.
 
그래서 아무리 허름하더라도 시골에 집 한 채, 생태 뒷간과 거름 간, 그리고 텃밭이 삼위일체가 되면 별로 부러울 게 없다. 게다가 닭장에서 수탉이 울고 암탉이 꼬박꼬박 유정란을 낳아주기만 한다면 금상첨화다. 슬프게도 우리 집에선 지난 가을, 털 많은 개가 사냥개 기질이 있었던지 닭을 10마리나 다 죽여 버렸다. 조류독감 이전에 우리 집에서는 강아지가 닭을 살처분한 게다. 얼마나 속이 상했던지, 개를 다른 집에 보내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참기로 했다. 닭장을 제대로 손보지 않은 내 잘못이 더 컸다. 그 텅 빈 닭장 안으로 무심한 봄볕은 날마다 한두 시간씩 놀다 간다. 가끔 쥐들이 닭장을 콘도처럼 애용하기도 한다. 그래, 제발 거기서만 살아라, 집 안으로 들어올 생각일랑 거두고 말이다. 우리는 어쩔 수없이‘ 따로 또 같이, 같이 또 따로’ 살아야 하나니.
 
3월 중순, 마침내 막내는‘ 농사를 배우러’ 제주로 떠났다. 제주 여성 농민회엔‘ 언니네텃밭’이라는 꾸러미 사업단이 있다. 그 농민들과 함께 일하며 농사일을 하나씩 배우겠다고 나선 게다. 그래, 아빠는 곁다리로 작은 텃밭을 일구면서도 대중 강연에 가서는 유기농이 답이고 농사가 중요하다고‘ 말’하며 살지만, 너는 바로 그 농사일을 본업으로 하는 농민이 되어 농토에서‘ 일’하며 살려고 하는구나. 나중에 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나 일단 네 뜻이 참 거룩하구나. 고맙다, 막내야. 그 사이에 주변 어른들이 네게“ 어린 것이 농사는 배워서 뭐 하게?”라든가“, 농사일, 힘들어!”라고 해도 너는“ 힘들지만 재밌어요.”라고 대답했다니, 그 참 기특하다.

그래, 이제 네 인생의 봄도 막 시작되었구나. 농사는 사람을 땅과 하늘에 이어주는 귀한 일을 한다. 들바람이나 흙냄새와 함께,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 함께 일하며 산다는 것이 무언지 많이 느끼길 빈다. 그렇게 너도 조금씩 철이 들고 삶의 기쁨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또한 농사는 땅도 살리고 다른 사람도 살리지만 네 자신도 살린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아니, 네 자신이 스스로 팔팔해질 것이다, 마치 와글와글 울어대던 개구리들처럼.
 
게다가 제주의 봄바람은 여기보다 훨씬 부드럽지 않더냐.

 
강수돌_마을이장을 맡아 함께 사는 삶을 온몸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조치원 골짜기에서 사람농사, 먹거리 농사를 지며 사는 농부이자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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