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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4호] 살아가는이야기 - 21.097km 반성문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3:21 71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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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 21.0975km의 반성문

김성희 (인드라망회원, 소식지편집팀) 



30km를 약속한 달림이 들이 출발하고 21km 달림이 들과 함께 출발 선상에 섰다. 길은 앞에 있고 나는 달려야 한다. 격려와 흥분을 뒤로 하고 경기장을 나섰다.  오로지 육신 하나만을 짊어졌을 뿐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은 천근만근이다. 걸을 때는 미쳐 느낄 수 없었던 육신의 무게가 달리면 달릴수록 버릴것을 떠올리게 한다. ‘무엇을 버려야 하나?’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된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버리지 못하는 악착이 더욱 힘들게 하고 드디어 반환점을 돌았다.


되돌아 가는 길. 내가 달려온 길이 고스란히 보인다. 심장이 터져 나갈 것 같이 힘들었던 무심한 오르막길이 이제는 내리막 길이 되어 지쳐가는 육신을 쓰다듬는다. 힘내라고 잘하고 있다고... 과연 잘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생명을 얻은 대가로 이 세상에 얼만큼 빚 갚음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폐를 끼치는 삶이어서는 안되겠다는 또 다른 형태의 욕심이 까칠한 삶을 살게 하지 않았는지 돌아 볼 일이다.


경기 막바지에 다다르지 걸어 가는 사람, 주저 않자 포기 하는 사람, 심지어 토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대신 해줄 수 없는 길 위에서 서로를 향한 안타까운 시선들이 오간다. 길가에서 보내주는 응원의 박수가 몇몇 달림이 들을 일으킨다. 마음이 찡하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향해 위로를 주고 받고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놀랍게도 그것이 큰 힘이 된다.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 결승점은 무의미하다. 우리 모두 그것을 알면서도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57명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두고 그들의 나약함만을 탓할 수 있을 것인가?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기준에 모든 것을 맞추고 사는 현대 사회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교묘하게 스며 들어 있는 자본주의적인 기준은 생명을 바라보는 눈을 멀게 하고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프리미엄 붙은 아파트가 자랑스러운 주거 공간의 기준이 된다. 무리를 해서라도 재력을 과시할 수 있는 차를 구입 하고 자녀들의 친구도 이익, 불이익을 게산해서 만들어 준다. 내 안에도 어김없이 자리잡은 그것은 현대인의 훈장터럼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이런 뻔뻔함과 몰염치가 기준이 되는 세상에서 자아를 행한 깨달음은 곧 몰락의 시작이다. 철저하게 무지 해야 한다. 한치의 빈틈을 보였다가는 도태 될 것이 뻔하니까.


그런데 무언가 허전하다. 열심히 채우면서 살고 있는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해 사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위한 발걸음이 절실해 지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도달하려는 결승점의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낯선 사람들과의 경기에서 이겼다는 단순함은 아닐 것이다. 그들과 싸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존재했기에 나의 달리기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적인 기준에 초토화 된 생명의 다양성을 깨닫고 그것들의 열악한 삶의 공간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나를 살리는 길이며 내가 결승점에 도달하는 길이다.


이제 잘못된 삶의 기준을 버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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