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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5호] 송년사 - 도법스님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3:32 68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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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정직하게 바라봅시다 

도법스님 (상임대표)



기온이 매우 낮아졌습니다. 바람 끝도 찹니다. 이곳 충남 서해안의 순례길은 바람으로 인해 더욱 옷깃을 여미게 합니다. 겨울이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보입니다. 한 해를 돌아보고 한 해를 계획하는 시간도 다가옵니다. 일년 동안 자신이 마음과 몸으로 세상에 뿌려놓은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드는 시간들 - 빙그레 웃을 일도 많겠지만, 주로 후회되는 일이 먼저 다가오는 법이니 회한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느낌들조차 반성과 성찰의 중요한 첫 재료이니 무조건 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느낌에 머물지 않고 성찰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이 시간들이 자신의 성숙에 하나의 커다란 매듭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우리 땅 구석구석을 걸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일구는 삶과 만났습니다. 올해는 14,000여명의 사람을 만났습니다. 탁발순례 동안 전체로는 55,000여명이 됩니다. 어떤 지역에 사는 누군가를 만난 것이 아니라 바로 55,000여명의 나 자신을 만난 것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농부, 노동자, 학생, 군인, 지식인, 성직자, 행정관료, 정치인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입니다. 실로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만나면서 나름대로 그러한 삶에 다 이유가 있고 목표가 있음을 다시 깨닫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생명들도 만났습니다. 내 행위, 내 말, 내 마음… 그들과 관계된 수많은 나를 봅니다. 그 수많은 나를 돌이켜보면 기쁜 일, 마음 아픈 일, 반성해야 하는 일도 딱 그만큼입니다. 결국 순례길은 55,000여명의 사람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생명과 그만큼의 내가 만나 희노애락을 나누는 길이었습니다. 올해 우리 인드라망인들의 만남은 어떠셨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선의를 갖고 지역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자기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왠지 세상은 좀체 나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항상 반성하고 결심하고 보다 성숙한 삶을 살고자 하는데도 왜 우리네 살림살이는 항상 제 자리를 맴도는 것이냐면서 많은 사람들이 길을 묻습니다. 어떤 일을 해보다가 난관에 부딪치면 항상 원망할 대상을 찾고 분노할 대상을 찾는 것이 인간의 삶인지라,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자책하면서 노력을 포기하는 모습들을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노와 원망이 넘쳐나면 문제해결도 더 이상의 성숙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온통 그와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결을 바꾸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상황이 변화되기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생명공동체가 무너집니다.


저는 순례를 하면서 인드라망인들이 가꾸고자 하는 수행과 삶이 하나 되는 공동체, 더불어 사는 생태적 지역공동체가 올바른 것임을 거듭 확인하고 있습니다. 인드라망인들은 생명공동체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한 사람들이며, 선의를 갖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을 확인하게 되어 더욱 기쁘기도 했습니다. 곳곳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삶의 결을 바꾸고 생명공동체를 가꾸기 위해 노력하는 인드라망인들의 삶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이제 한 해를 보내고 한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인드라망인들도 올해 살아온 과정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해의 계획을 세우면서 삶의 결을 가다듬겠지요. 잘된 일도 있고 계획했다가 성취하지 못한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반성과 성찰을 위해 노력합시다.


올바른 반성과 성찰을 위해, 삶의 결을 제대로 가다듬기 위해, 먼저 자기로 돌아갑시다. 자신에게 돌아감은 자기를 비우는 것, 우리 안의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그것은 스스로 정직해지는 길입니다. 자신에게 물어봅시다. 진실로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고. 혹시 일이 잘 안 풀리고 원망과 분노가 생겼다면 자신에게 돌아가 물어봅시다. 혹시 어떤 사람과 관계가 틀어지거나 악의가 생겨났다면 자신에게 돌아가 물어봅시다. 때로는 세상이 잘못되어 있고, 때로는 상대방의 잘못이 확실하거나 상황이 어쩔 수 없을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조차 문제를 풀어가는 데 나의 할 바가 있고, 그 할 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문제가 잘 매듭지어지거나 다른 문제로 확대되기도 하니 결국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은 자신인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정직해지면 얻는 공덕이 실로 큽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버리면 자신의 중심이 서고 정체성이 확고해집니다. 그러면 평화로움과 평정심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용의 틈새가 커지고, 세상과의 관계는 소박해지고 단순해지고 원만해집니다. 새해에는 이러한 모든 공덕이 생명공동체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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