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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5호] 산골사는 즐거움 - 아! 기다리 고! 기다리던 햅쌀밥!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3:35 67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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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기다리 고! 기다리던 햅쌀밥!



이 산골짝에도 몇 년전부터 콤바인이란 거이 들어왔다. 콤바인이 논에 들어가자마자 순식간에 굉음과 나락먼지를 날리며 나락이 가득가득 든 푸대들을 발 앞에 내동댕이쳐준다. 와 사람손이 쓸모없어지는기다. 그저 입 따악 벌리고 섰다가 새참이나 재깍재깍 내놓는 수밖엔. 일년농사 뒤끝에 사람 맘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하건만 아직도 콤바인이 하는 추수는 당췌 적응이 안 되는데. 가을들녘에 사람들이 없다. 일 끝낸 콤바인이 사라지면 트렉터나 경운기가 와서 푸대들을 정미소로 실어가면 그뿐. 예전 떠들썩했던 타작마당을 떠올려선 안 되는 거였어. 이젠 옛날 어슴푸레 어릴적 기억으로만 남겨두면 되는 거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우예됐던동 추수는 말 그대로 추수 아니겄소. 햅쌀맛을 이젠 볼 수 있겠구마. 아! 기다리 고! 기다리 던! 햅쌀로 지은 밥맛! 건조망을 깔고 나락을 널어 펴 말렸다. 나락이 햇살에 바싹 말라야 방아를 찧기가 좋고 나락보관도 잘 된다. 벌레나면 골치가 깨진다고. 잘 말리지 않은 나락은 여름에 바구미가 끓어 밥맛이 도망가지. 시중에 팔리는 쌀들은 벌크라고 하던가 건조기에 말려서 찧는다고 하대. 한 이틀 말렸다. 사흘 정도는 말리면 좋은데 여엉 하늘이 말리는군. 방아를 찧어보자. 조그마한 방아기계를 돌린다. 현미면 현미 백미면 백미 원하는 대로 찧어져 나오는데 쏟아져 나오는 햅쌀을 손으로 받아 한움큼 입안에 털어 넣고 꼬득꼬득 먹는 맛. 음. 잘 말려졌군.


갑자기 맘이 급해져 쌀 한 바가지 찧어들고 부엌으로 날랐다. 어여 밥 좀 해묵어보자고. 배고파 몬살겠네. 가마솥에 불 때서 밥해묵으면 금상첨화겠으나 가마솥 깨져 떼내어버린지 오래. 아쉬운 대로 압력솥에 해본다. 칙칙~ 김이 올라온다. 슬슬 밥냄새가 새나온다. 얼라들이 뛰어온다. 이야... 밥 되는 냄새 오랜만이다. 맛있겠다. 숟가락 들고 밥상머리에 얼렁 앉아버리는 얼라들. 다른 반찬 없어도 그저 김치 한 대접하고  그렇게 밥을 묵었다. 다들 밥만 푹푹 퍼먹는데 몇그릇째고? 밥 한 공기 겨우 먹는 나무꾼조차도 두 그릇째. 고새 꼬맹이 네 그릇, 작은넘 밥통 껴안고 먹을 기세.  맨날맨날 이런 밥만 해줘. 요새 입맛이 떨어져서 여엉 맛있는 것이 없다시던 할매 할배 간만에 입맛을 되찾으셨다. 우리가 운제 입맛 없다 했노. 맛만 좋구마. 이제 묵은 쌀은 떡이나 해묵자.


뒤늦게 가을비를 맞아 쑥쑥 자라는 어린 배추 뽑아다 들기름 두르고 겉절이하고 두부랑 무랑 돔방돔방 썰어넣고 바글바글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금방 뜸 들여 내놓은 김 설설 나는 햅쌀밥. 뭘 더 바라리. 이럴때 말 시키면 미운털 박히지. 암... 내 밥 오데갔노? 한눈판 사이에 밥그릇 쌈 난다.


<하늘로 구멍 뻥~하니 난 산골짝 비안곡 나무꾼과 선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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