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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6호] 산골사는 즐거움 - 아궁이 불 때면서 뭘 할까?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3:53 70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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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 불 때면서 뭘 할까?

  


슬슬 불을 때야만 잠 편히 잘 수 있는 그런 철이 돌아왔다. 아궁이 그득그득 통나무 장작을 쳐넣고 가마솥 물이 설설 끓게 해야만 이 산골겨울은 뜨시다. 오며가며 땔나무가 얼마만치 남았나 그거 헤아려보는 거이 큰일이다. 처마까지 닿아 우와! 부자다. 라고 환호성을 질렀던 때가 엊그제인데 오늘 보이 오메나 우짜까이 누가 땔나무 다쳐땠니? 좀 아껴써야지이. 또 나무하러 가야겠네. 가을에 미리미리 준비 안 해놓은 거이 참말로 후회스럽다 안카나. 가을걷이에 정신 못 차리게 바빠 땔나무 할 새가 없었다구우. 늘 게으른 변명이다. 아침저녁 쌀쌀한 가을에는 해거름에 한번 때주면 되던 것이 서리가 허옇게 내리고 찬바람 불어대는 요즈음엔 아침저녁 꼬박 잊지 말고 때줘야 하게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땔나무가 헤푸겠노 말씨.


해가 일찍 져버리고 부연 외등이 켜질 무렵 산골마실은 사람기척이 없어진다. 농사철에도 사람구경하기 힘들었는데 농사일 다 거두고난 지금 겨울에사 말해 무엇하리. 다들 뜨신 집안에 들앉아 재미난 이바구나 나누던가 동네 메주 쑤는 아랫채 아랫목에 들앉아 접시나 몇 개 깨며 노닥거리는 거이 다일거이다. 부지런한 산골사람들이라 김장도 거진 다 했을꺼이고 내년 정월 전까지는 별로 할일이 없을걸?


그런 산골마을에서 제일 시끄럽고 부산을 떨며 노는 집이 바로 얼라들 많은 선녀네 집이다. 울도 담도 없어서 이짝저짝에서 훤히 다 보이는 집마당을 딜다보면 개 한 마리와 들고뛰노는 꼬마들이 늘 있다. 물건너 얼라들 산너머 사는 얼라들 자기네 동네에선 놀 친구가 없어 애써 물건너 산너머 놀러 온 얼라들이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앉아있다보면 이 얼라들이 쪼차와 구구절절 요구사항이 많다. 군고구마 해묵자고요. 감자도 궈먹자고요. 군밤도 맛있어요. 숯불 꺼내서 고기도 궈먹자구요. 이놈들 입은 살아가지고 와글와글 잘도 떠든다. 얼라들 부모가 데릴러 오기 전까지는 맘놓고 노는데 머 다 늦은 저녁에 산골짝에서 놀아봤자 뭐하고 놀겠노. 그저 아궁이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장난 하거나 군고구마라도 궈먹거나 머 그렇지.  요새는 고구마를 쿠킹호일에 싸서 굽는다. 그러면 덜 타고 말랑말랑하다네? 그냥 고구마를 던져넣었다간 깜박 까묵고 시꺼먼 숯덩이 맹글기 일쑤여. 그짓거리 마이 해봤다구. 올해 농사지은 호박고구마 한 상자를 끙차 들고 나와 두고두고 궈먹는다. 감자도 한 자루 아궁이용으로 따로 두었다.


한참을 불때다가 아궁이 안을 딜다보면 바글바글 바알간 숯덩이들이 모여있다. 고구마를 호일에 싸서 던져 넣는다. 부지깽이로 이리저리 좋게 자리잡게 뒤적인다. 고구마를 그 위에 살짝 올려놓아두고 진득하게 잊어먹고 기다리면 맛있게 익지. 하지만 얼라들은 그새를 못 참아 부지깽이로 쥐불놀이 흉내를 내고 땅바닥이며 벽마다 낙서며 그림을 그려놓기 일쑤다. 제일 많이 쓰는 낙서는 지들 이름이요. 친구들 별명이다. 뿔난 도깨비도 쓱쓱 그려놓고 와글와글 웃는다. 얼라들 뛰놀다가 깜짝 생각나 뛰온다. 그새 됐을껴. 어디 보자아 안 탔을까? 우와, 말랑말랑 언넝 얼라들마다 하나씩 앵겨준다. 입 좌악 벌어진다. 후아 후아 불면서 잘도 먹는다. 한입 뺏어먹는다. 하하 웃는다. 아! 뜨거, 아! 뜨거를 연발하며 신나게 까먹는다. 노란 고구마속이 얼라들 얼굴만치 환하다. 손에 묻은 꺼멍을 누구 얼굴에 묻힐까 호시탐탐 노리니 얼라들 펄쩍 뛰며 까무러치게 웃는다. 아궁이 흙바닥위에 되는대로 퍼질러 앉아 불을 때다가 이런저런 군입다실거리 구어 먹어가며 얼라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금새 주위가 꺼매진다. 아이구 니들 집에 가야겠다. 너들 아부지 언제 오시노? 데릴러 오신다고는 하셨나? 이 산골짝에서 저 산골짝까지 걸어갈 순 없다. 덜컹덜컹 시골버스도 끊겼다. 요샌 여덟시면 끊기드라. 오늘 못 가면 자구가지. 사실 머 걱정할 거이 없는기다.  우리 고구마나 더 궈먹자. 감자도 꺼내와라. 밤은 뉘집에 가면 마이 있노? 저기 윗집 할매네 함 가봐라. 좀 있을거다. 니들이 달라고 하면 좀 주실껴.


온 겨우내 물건너 산너머 얼라들 다 불러 모아다가 오늘처럼 놀아봐야겠다. 골짝골짝 마을 마을마다 얼라들이 둘셋이나 될려나. 더 이상 태어나는 얼라가 귀하므로. 올해는 감자 고구마농사 푸지게 지어놓았으니 겨우내내 입이 놀 사이가 없을게야. 동치미나 넉넉하게 더 담궈 둬야겠지. 아궁이 앞에서 원 없이 불 때게 나무나 더 해다 놓고. 군불 땐 구들장에 등때기 자글자글 지져가며 얼라들이랑 머리 맞대고 누워 옛이야기 한자리씩. 머 그러다보면 어느새 겨울 다 가겠지 머.


<하늘로 구멍 뻥~하니 난 산골짝 비안곡 나무꾼과 선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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