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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6호] 귀농탐방기-전순우 유현미님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1 05:02 72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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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면의 나무네 가족사진을 찍다 -전북 남원 산내면 전순우, 유현미 님 댁 / 이현이



봄이다. 함양에서 인월로 가는 낮은 토담엔 산수유 꽃망울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작년 9월이었던가, 나무네 집을 찾아 마천의 문산 마을로 가는 굽이진 길을 땀을 흘리며 올랐던 기억이 난다. 뒷산에 옴폭하니 안겨서 아늑했던 집, 그 집의 나무 마루에 앉아 목수 일을 한다는 전순우 님과 큰 딸 ‘나무’와 ‘태인’,‘두인’-쌍둥이 형제와 유현미 님을 처음 만났었다.


같은 대학, 풍물 동아리의 오랜 지기이자 동기였던 부부는 결혼을 하고 세 아이를 낳고, 불교귀농학교와의 인연으로 2000년 1월에 남원의 산내면으로 귀농을 하였다. 산내면으로 가족이 모두 귀농을 한 경우는 그들이 처음이라 한다. 전순우 님은 한옥을 짓는 목수일을 배우러 외지(外地)로 나가 있을 때가 많았고, 아직 어린 세 아이를 돌보느라 유현미 님이 고생이 많았다. 그래도 지나 놓고 보니 고생이지, 그 때는 힘든 지도 몰랐단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실상사에 들렀을 때, 유현미 님은 다리목의 이층집을 가리키며 처음 귀농해서 살았던 집이라 했다. 실상사를 끼고 흐르는 계곡물이 내려다 보이는 그 이층집을 올려다 보며 세 아이들과 홀로 고투를 벌였을 그녀의 모습을 잠깐 떠올려 보았었다.


6개월이 훌쩍 지나 만난 전순우 님은 수염이 덥수룩이 나 있었다. 일부러 기른 것은 아니고, 그동안 마천에서 산내면으로 이사를 하고, 한옥 일을 하다 보니 깍을 시간이 없었단다. 이사 온 상중기 마을에 집 지을 터를 마련했다. 예전부터 눈 여겨 보았던 곳인데 인연이 닿았다.


이 마을은 11가구 중에 4가구가 귀농 가족 혹은 귀농인이다. 얼마 전에는 저기 보이는 아랫집 훤민이네의 아래채를 지었고, 내일부터는 지리산생명연대의 김혜경 씨의 집을 손볼 예정이라는 그의 설명이다. 집집마다 아이들도 많아 문산 마을에서 적적했던 아이들에게 즐거운 일이 되었다. 아이들은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인 산내초등학교에 다닌다. 냉이가 천지라며, 한 바구니 가득 냉이를 캐 든 유현미 님은 예의 서글한 웃음이다.


예전 집에서는 보이지 않던 닭장이 보인다. 육계는 아니고 산란 닭이라 했다. 하루에 여덟 개 정도의 유정란을 얻을 수 있는데 아이들의 좋은 간식거리가 되고 있다. 마루 밑에서 흑구라 불리는 강아지가 나온다. 기르던 개가 닭장을 덮치는 바람에 다른 데로 보내 버리고 가장 무던하고 느려 보이는 놈을 한 마리 남겨 놓았다. 붉은 산수유 차를 마시며 다시 그들 보금자리의 툇마루에 앉았다. 부엌에서 왁자지껄, 산수유 원액을 마셔 버린 아이들의 ‘아이 셔’ 하는 아우성 소리에 웃음을 배어 문다.


바람에 서걱이는 댓잎소리와 처마 밑 풍경소리가 듣기 좋다. 햇살이 푸지게 잘 드는 집이다. 그 햇살에 얼굴이 점점 달아오른다. 마당의 나무에 딱새가 날아왔다, 직바구리가 날아왔다 한다. ‘박새다’, ‘아니다, 오목눈이’다, 동갑내기 부부의 잠깐의 논쟁이 있다. ‘오목눈이는 전체적으로 흰색과 검정색이 섞였고, 박새는....“ 아내의 구체적인 설명에 자칭 ‘언제나 아내의 말을 경청하고 따른다’ 라는 삶의 신조를 가졌다는 남편이 열세다.


작년에 유현미 님은 지리산국립공원의 생태 가이드 강좌를 들으러 다닌다고 했었다. 실상사 경내 찻집의 서가에서 독서삼매에 빠진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야생초 이름을 외우던 기억이 난다.


그러는 동안에 시원한 맥주를 내 놓으라는 유쾌한 생명연대의 김혜경 씨가 불현듯 마당을 들어서고, 나무를 만지는 남편 곁에서 ‘반(半)목수’ 아내가 뚝딱뚝딱 만든 삐딱한 나무 의자-넘어져 ‘머리 깨는’ 의자-가 등장하고, 흑구는 김혜경 씨의 운동화 끈을 물어뜯고, 아랫집에서 아장아장 맨발로 훤민이가 걸어 와서는 엄마가 징그러워하는 끈적이 장난감으로 신이 난 태인이를 보고 씨익 웃고는 돌아간다. 이웃들에게, 새들에게, 햇살과 바람에게마저 편안하게 열린 마당이다. 마을에는 같은 연배의 부부들이 있어 자주 모여 술 한 잔 하며, 부부 문제, 육아 문제, 농사일 등 사는 얘기를 나눈다 했다.


 햇살에 달구어진 얼굴로 문살에 기댄 전순우 님은 목수일의 매력과 힘겨움, 구조적 한계에 대해 자분자분 말을 이어 나간다. 그의 큼직하고 거친 손을 바라본다. 다섯 식구의 기본적인 생계가 달린 손이다.


처음 귀농하며 시작한 한옥 목수일. 지금은 치목 현장이 가까이 있고,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던 적도 있었고, 실제 현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남기기 위해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불필요한 소모와 저임금은 쉽게 개선되기 힘든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그는 나무를 만지는 일이 만족스럽다. 예전의 목수들이 그러했듯, 언젠가는 반농반목-자급자족할 만큼의 농사를 짓고, 농사일과 병행하여 목수 일을 하고 싶다. 마련해 둔 터에다 집을 지으면 벼농사 짓는 일도 시작할 예정이다. 그에게 귀농이란, 농촌 공동체에 삶의 터전을 두고 그 구성원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유현미 님은 예전의 우리 어머니들이 그네들의 부엌에서 손수 그러했듯, 누룩을 빚어 술을 담고,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고 싶다. 전북 순창이 고향인 그녀는 작년에 매실로 고추장을 담았다. 툇마루에 베갯잇 속에 넣기 위해 대나무 채반에 말리고 있는 매실 씨앗이 그 때 쓰고 나온 것이었다. 단순한 기성 상품의 소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립’을 위한 그녀의 실천이 귀하게 여겨진다.


그녀는 8년째 자신을 포함한 가족들의 머리를 손수 깍고, 옷을 직접 만들기도 한다. 목수일이 뜸한 겨울에는 장에 나갈 수 없을 때가 지속되기도 하지만, 장만해 놓은 김장 김치에 쌀만으로도 밥상을 차릴 수 있는 건 도시가 아닌 자연의 품 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 보면, 어떻게든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전순우 님의 말을 자꾸 되뇌이게 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서 크로키 인디언인 할아버지는 “돈을 헤프게 쓴다는 것은 마음을 헤프게 쓰는 것”이라 했다. ‘돈’이라 지칭될 수 있는 물질들로부터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부족한 현실로부터 조급함과 상실감이 아닌 여유로움과 만족을 길어 내는 삶의 지혜와 그 실천을 자꾸 망각하게 된다.


숙제를 한다고 방에서 나오지 않던 나무도, 끈적이 장난감으로 놀던 태인이도, 계속 보이지 않던 두인이도 유정란을 닦고 용기에 담는 일을 돕는다고 모두 훤민이 네에 모여 있다. 아이를 낳고 내일 돌아오는 훤민이 엄마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자는 부부의 대화가 따스하다. 아이들이 깬 달걀로 구운 푸짐한 달걀 후라이를 먹고 가족사진을 찍는다. 제각기 표정이 다양한, 밝고 건강한 세 아이의 뒤에서 웃고 있는 아빠와 엄마-다섯 가족의 한 때를 담고 돌아오는 먼 길에 내내 생각했다. 행복은 전염, 아니 점염(點染)되는 것이다......!



소식지 6호(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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