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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8호] 산골에 사는 즐거움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5:26 58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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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궂은 날, 돌미나리적이나



날이 꾸무리... 아무래도 비가 한바탕 오긴 올 성 싶다. 덮을거 다 덮고, 비설거지할 거 다 해놓고 들앉아, 오랜만에 놀려고 했더만... 점심에 날궂이 돌미나리적이나 꾸먹자고. 이런 날 돌미나리적 좋지~. 이맘때쯤이면 얼매나 연하고 맛도 좋고 향도 좋은데.


낫 들고 외발 수레 끌고 논에 간다. 옛날에 산골마을 공동우물로 쓰던 큰 우물이 마을 한복판에 하나 있었는데, 이젠 안 쓰지. 그 우물 물길이 밖으로 터져 나왔는지, 그 밑 울 논도랑으로 물이 사철 흘러나오는데, 주위가 온통 미나리꽝이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요, 누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닌데, 해마다 이렇게 무성하게 지들맘대로 터잡고 자라 올라온다. 베어내도 베어내도 그만치. 작년엔 서너 수레 했는데. 올해는 몇 수레나 될란고?


울 논에 찬물 들어온다고, 벼한테 안 좋다고 둑을 만들고 도랑을 만들어 따로 물길을 잡아뺐는데, 도구칠 때 가끔보면 미꾸라지도 있고, 도룡뇽인가? 비슷한 놈도 있고, 도구를 치다보면 별놈의 것들이 다 잡힌다. 긴 장화를 신고 첨벙첨벙 들어갔다. 하이고~. 풀반 미나리반이다. 따로 애써 가꾸질 않았으니 수확량이 좋길 바라는 건 욕심이지. 그저 되는대로 베어다가 수레에 실으니, 두어 수레. 이것도 어디냐.


낫질을 하는데 참개구리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리 펄쩍 저리 펄쩍. 깜짝깜짝 놀래킨다.


쇠뜨기들이 키만 키워 자리를 안 비켜준다. 미나리 닮은 키 큰 풀이 쑥쑥 자라있다. 한참을 늪지대 같은 쑤비 속을 헤집어가며 낫으로 베어내 수레로 들어 날랐다. 진흙 내음. 크으, 독하다.


논을 일차 갈아놓아서 울퉁불퉁 말도 못 하게 험하다. 수레 바퀴가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고. 조금 갔다가 앞에 가서 바퀴를 빼내고. 또 조금 갔다가 바퀴 빼내고. 흘러내린 미나리 줏어 올리고. 낫으로 베어낼 때보다 나르는 거이 더 힘드네그랴. 우째야 좋노! 그래도 끌고는 가야것제?


낑낑거리고 겨우겨우 논 바깥으로 나왔는데, 고만 힘이 다 빠졌다. 기어이 끙끙대며 끌고 와 마당에 부려놓으니 할매께옵서 이거 다듬어서 적 꾸란다. 일어설 기운이 한나도 없어서리. “할매요, 적은 할매가 맛있게 꾸니께 지가 다듬을께유~. 히히히“ 할매가 웃으시며 한 단 다듬어 들어가신다.


작은놈 엄마닭이 병아리 몰고 댕기는 걸 입 벌리고 한참 보고 앉았다가 미나리 다듬는데 와 퍼질러 앉는다. "미나리가 약 된다. 좋은거다. 많이 먹어야해" 일렀더이, 지앞에 있는 미나리 조금 다듬어서 돌맹이로 콩콩 찧어서 약을 맹글겠단다. 약초로 약 맹그는거이 재미있단다. 미나리들에 딸려온 쇠뜨기도 약초맹근다고 한 다발 솎아서 가져갔다. 얘는 참 희한한 애다.


지 또래 애들이 관심 안 가지는 것들에 무진장 관심을 쏟는다. 작년 여름엔 익모초를 돌에 콩콩 찧어서 즙을 짜내어 지 친구들에게 먹인 놈이다. 배 아프다는 큰놈한테도 억지로 멕여서 생야단나게 했던 놈이다.


밀가루 소금간 해서 묽지도 되직하지도 않게 개서 후라이팬에 치지직 들기름 두르고 돌미나리 적 꿔서 겸사겸사 할배 약술 한 잔 드리고 얼라들 불러모아 온식구가 마루에 다 둘러앉아서 먹었다.


토마토 모종은 마당가에 심었다. 닭 하고 병아리들이 못 건드리게 그물로 망을 둘러쳐놓았다. 마당에 엄마닭 네 마리. 각각 지들이 깐 병아리들 단속하느라 시끄럽다. 참 병아리들도 신기하지, 어케 지 엄마 안 잃어버리고 잘 따라 댕길까? 딴짓 하다가도 지 엄마가 뭐라뭐라 부르면 총알같이 뛰간다.


얼라들은 병아리 한번 만져보고 싶어 계속 주위를 맴도나 엄마닭이 쌈닭 저리가라 할 정도로 사나워 쪼일까 무서워 헛손짓만 계속 하다 만다. 또 부화장에서 까온 병아리와는 달리 엄마닭이 자연부화시킨 병아리들은 하도 깔차서 깐지 하루만 지나도 얼매나 쌩쌩한지쉽사리 잡아채질 못 한다.


여기나 저기나 농사일로 가득찬 봄날. 모자리 한 논에는 물이 그득하고. 이제 맹꽁이 개구리소리 요란한 그런 철이 돌아오는데. 뜰 아랫채 툇마루에 걸터앉아 돌미나리적 한 둘기 이슬 한 잔으로 목을 축이고. 앞으로 잠시도 한눈 못 팔게끔 바빠질 봄농사철의 한가운데. 하루 한나절쯤은 이렇게 비 날궂이를 하면서 쉬어도 좋지 앟을까.


남쪽 하늘에 비구름이 서서히 몰려온다. 바람도 선듯하게 느껴진다. 이제 시작하는가. 엄마닭들이 서둘러 병아리들을 몰고 꼬꼬 거리며 비를 피해 들어간다. 병아리들 죄다 엄마품속에 숨었다. 맞어, 엄마품은 저런거지. 아무리 새끼들이 많아도 이 새끼 저 새끼 다아 품어줄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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