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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8호] 귀농자탐방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5:32 60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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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리 김이장님을 찾아가다

김순정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일꾼)



차 없이 취재를 다닌다는 핑계로 종종 귀농자들을 기사로 부리는 호사를 누릴 때가 있다. 이번에도 아니 다를까 김종덕씨가 직접 보은터미널로 마중을 나와 주셨다.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길, 오랜만에 나왔다며 여기저기 찾아갈 곳이 많다. 농협에 들러 일을 보고, 면사무소에 찾아가 면장과 사무소 공무원을 만나 인사를 한다. 이젠 집에 가나 싶었더니 마을회관 옆에 화장실을 하나 지어야 한다며 땅주인을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눈다. 한번 나가면 여기저기 찾아봐야 할 일이 분주한 김종덕씨는 노성리 마을에 이장님이시다.


노성리 김이장님

귀농자가 마을 이장이라니 귀농한지 한 10년쯤 되었거니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종덕씨는 이제 귀농 2년차의 아직은 농사가 서툰 신출내기 농부다. 더구나 귀농한지 3개월만에 이장이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모두 눈이 똥그래져서 묻는다. “아니 어떻게 3개월만에 이장이 되셨어요?” 그래서 우리도 역시 눈을 똥그랗게 뜨고 똑같이 물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선선하다. 김종덕씨는 2년 전 노성리로 홀홀단신 귀농했다. 그런데 마을이장을 맡고 있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통에 김종덕씨기 이장이 되었던 것. 사람 사귀는 것을 좋아하고 일이 생기면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성격이 좋게 보였을까. 낯선 곳 들어와 농사지으려면 한번이라도 아쉬운 소릴 해야 하는 자신이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자기고집을 내세우지 않는 김종덕씨의 노력이 마을사람들에게 받아들여 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선의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그이지만 마을이장이 맘 편한 자리만은 아니다. 동네일을 챙기다 보면 해달라는 일은 많고 해줄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어 때 아닌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맘에 담아 두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만다는 그이에게서 귀농의 한 가지 지혜를 배우는 듯 했다.


어떤 이는 내가 귀농해서까지 그리 사람들 눈치 보며 살아야 하느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귀농은 도시에서 끊겨버린 이웃과 더불어 사는 법을 다시 배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농사일이란 것이 본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같이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몸으로 배워가는 과정임을 받아들인다면 귀농의 즐거움은 또 하나 늘어나지 않을까. 

마을주민 대부분이 나이 지긋한 노인들이라 김종덕씨는 그야말로 마을의 일꾼이며 귀염둥이란다. 올 봄 마을에서 봄나들이를 갔을 때도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출발 할 때부터 도착 할 때까지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한다. 색색이 단장한 시골 아낙들 사이에서 노래 부르는 그이의 모습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 듯 했다.

우리가 노성리 이장님에게 가장 아쉬워 한 것은 바로 이것. 노성리는 30호 정도 되는 가구가 여기저기 뚝뚝 떨어져 지내는 마을이라 “아, 아, 마을주민께 알려드립니다~”로 시작하는 동네방송을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아빠 ,이젠 농사 다 지였으니까 집에 와!

김종덕씨가 귀농을 결심했을 때 부인은 지지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와 형제들은 “왜 굳이 남 안하는 걸 하려 하느냐”며 반대가 심했다. 가족의 반대에도 한살이라도 젊을 때 내려가지 않으면 농사로 먹고사는 것이 아니라 전원생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열심히 설득했다. 농사는 자기 가치관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며 친환경농업은 가능성이 있다며 밀어 붙인 끝에 2004년 12월에 노성리로 내려올 수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과 농사짓는 땅은 실상사귀농학교 1기 출신인 윤용경씨에게 5년 계약으로 임대한 것이다. 실상사귀농학교 동문회장을 맡으며 인연을 만들어 놓은 덕분에 귀농할 때 드는 초기 정착비용이 거의 들지 않았다. 처음부터 농사로 자립하기 어려우니 농사를 배우는 시간이라 생각하고 혼자 내려왔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생활이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단다. 특히 아이가 한참 자랄 때 떨어져 있는 것이 아이 인격형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염려스럽다. 가을걷이도 끝낸 겨울이 되면 아이는 “아빠, 이젠 농사 다 지었으니까 집에 와!”하며 전화하기도 한단다.

혼자 농사짓다 보니 농사일 바쁜 철에는 밥 차려 먹는 시간이 아까워 점심도 거르고 일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마을사람에게 하숙 좀 치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머리 허연 할머니들이 하루 종일 조물락거리며 마늘 까고 콩깍지 까주는 일이 농사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줄 아느냐며 물을 때 나이 많거나 적거나 다 제몫이 있는 농사일이야 말로 사람이 귀이 대접받는 일이구나 싶었다.  

너무 바빠 혼자 외로워할 틈도 없다는 그이지만 몇 년째 영농일지만은 빼놓지 않고 쓰고 있다. 일년치를 모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해 놓은 솜씨를 보면 참 대단하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집 안 여기저기 보이는 농사관련 책들을 보면 농사꾼도 절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노력한 만큼 빛을 발하는 것, 그러고도 나머지는 하늘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 농사 아닐까.



도시에서 잘 살아야 시골에서도 잘 살지

김종덕씨가 농사짓는 땅은 집 주변으로 3천평쯤 되는 논과 밭이다. 처음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때 주변 마을사람들이 “차라리 갈아엎어라, 남의 논까지 피해준다.”고 했을 정도로 인식이 좋지 않았다. 관행농에 익숙해진 분들이라 유기농으로 농사짓는다는 것이 낯선 탓이었다. 그러나 작년 김종덕씨가 농사짓는 모습을 보고 올해 논과 밭에 무농약인증을 받자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찹쌀, 찰보리 농사를 짓는 일부 농가에서 저농약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한다며 도움을 구하러 오기도 한단다. 보은지역에서 채소류로 무농약인증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 올해 농사가 잘 되면 내년쯤엔 채소작목반에 무농약이라도 해보자고 제안해볼 생각이다.  

사람들이 유기농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서 김종덕씨는 소득이 높아질까 하는 관심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이 말은 소득이 높아지지 않으면 쉽게 관행농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기농업을 소득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농민들에 대해서 쉽게 비난하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우리네 농업현실이 척박하기 때문이고, 농민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까닭이고, 농산물을 공산품처럼 생명 없는 것들로 여기는 것이 당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이다. 이러니 돈 보다는 삶을 택한 귀농자들의 어깨가 무거운 것인지도 모른다.


삶을 선택하는 귀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김종덕씨 말에 의하면 돈도 아니고 농사기술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귀농해야 하는 절실한 이유를 찾는 것”이란다. 그래야 힘든 농사일도 즐겁게 견디고 반대하는 가족들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도시에서 잘 살았던 사람이 시골에서도 정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유인즉, 농사일은 결국 사람손이 하는 일이라 다른 사람 도움이 많이 필요한데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사람은 이 관계를 풀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산속 깊숙이 혼자 살게 아니라면 결국 사람 사는 데는 어디나 똑같다는 평범한 진리가 귀농에도 통한다는 말씀이다. 이러니 게을러도 귀농할 수 있냐는 우리의 엉뚱한 질문에 “그럴려면 귀농하지 말아야지!”하는 똑떨어진 대답이 돌아올 밖에. 


취재를 마치고 터미널 나가는 길에 다시 마을회관에 들렀다. 밤사이 풀어댄 바람에 누구네 집 창고 지붕이 날아갔다는 동네 할머니의 말에 마을이장님이 해야 할 일은 또 하나 늘어난다. 부녀회장님댁에 들러 마을사람들과 밤새 내린 비며 고장 난 경운기를 고치는 문제며 소소한 농사일과 마을일을 나눈 후에야 다시 자리를 뜰 수 있었다. 자리를 뜨는 우리 뒤로 부녀회장님의 한마디가 따라 나왔다.

“아이고 마을이장이 사실은 동네 머슴이지. 다음번에 이장할 사람은 힘들꺼여. 동네 어른들한테 저리 잘 하니 그걸 다음 사람이 어떻게 따라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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