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8호] 인드라망소식 - 작은학교 > 인드라망소식지

본문 바로가기

인드라망 아카이브

[소식지 8호] 인드라망소식 - 작은학교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5:37 710 0

본문

작은학교 이야기

 


어수선한 3월이 지나고 4월은 어느정도 안정을 찾는다. 신입생 1학년들이 점차 주변에 익숙해지고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2학년은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3학년은 4월 9일에 치룬 검정고시를 통해 혼란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행사가 많은 5월이 다가오면서 한숨돌리는 4월의 끝자락에서 작은학교의 또다른 교육현장인 작은가정의 한켠을 들여다본다.


* 아래 글은 4월 25일 홈페이지에 오른 글입니다. 6개의 작은가정 중에 학부모생활관1)으로 운영되고 있는 ‘언덕배기’에서 일주일을 생활교사로 살고 있는 선우영희님이 쓴 글입니다.



일요일에 언덕배기 아이들을 만났다. 고은,정윤,수림,승헌,기현. 수림과 기현은 전에 같이 살아본 경험이 있어 익숙하고,고은과 정윤은 내가 누구인지 모르니 새롭고, 승헌은 같이 지내보지는 않았지만 낯설지가 않다. 마루고 마당이고 부엌이고 어수선하다. 냉장고부터 살펴보았다. 언덕배기 냉장고에는 묵은 반찬들이 많았다. 새로운 반찬을 먹기 전에 있는 것들부터 치워야 했다. 저녁 당번인 승헌이와 부엌을 정리했다. 바닥도 쓸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찌개에서 국으로 변신한 김치찌개와 언제,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오래된 반찬들을 꺼내 먹었다. 맛은 그다지 없지만 버리지 않고 먹었다는게 중요하다.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 얘기를 들었다. 한샘이 오셔서 같이 저녁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아이들과 과일을 먹으면서 서로 소개를 했다. 기현이가 " 이 어머니 보통 어머니가 아니셔." 그랬다. 가만히 듣고만 있을 정윤이가 아니지. " 힘이 느껴져." 무서운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아이들이 막 웃었다. 내가 "너, 관심법 쓰냐?" 너무 어려운 말을 썼나,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한샘 빼고.


묵학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짧은 시간에 서로를 익혔다. 묵학시간에 아이들이 들락날락거리는소리가 들렸다. 일요일 저녁. 정윤이, 수림, 고은이는 열시가 되기전에 방에 불이 꺼졌다. 승헌이와 기현이는 묵학이 끝나고 부엌에 나와 먹을 것을 찾아 먹는다. 한창 먹을 때다. 월요일 아침, 승헌이가 준비한 아침밥을 일찍 먹고 모두들 학교로 일찍 갔다. 아이들이 가고 난 뒤, 가스를 잠그고 보일러 확인을 하고 나왔다.


학교에서 돌아오자 나도 배가 고팠다. 어제 정윤이 어머니가 갖고 오신 떡을 고은이랑 나눠 먹었다. 고은이는 집에 일찍 온다. 오늘은 노을이가 학교에 오지 않아 더빨리 왔다고 했다. 고은이에게 학교 텃밭에서 뽑아온 쪽파를 다듬으라고 하고 고구마를 구웠다.오늘 저녁은 삼치조림을 상추와 쑥갓에 쌈장을 넣어 싸먹고,냉동실에 숨어있는 낙지를 찾아 이름도 근사한 해물파전을 부치기로 했다. 하나씩 집에 오는 아이들이 따끈따끈한 고구마를 보고 입이 귀에 걸린다.


저녁 당번이 늦자 수림이가 알아서 쌀을 씻는다. 상을 차렸다. 아이들이 좋아라 한다. 쌈이 순식간에 줄어든다. 늘 밥을 급하게 먹는 정윤이도 이것저것 먹느라 숟가락 놓을 줄을 모른다. 억샘도 오시라 해서 저녁을 함께 했다. 참, 정윤이 어머니가 가져온 추어탕도 있어 맛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고, 밥먹고 나서 과일을 먹으면서 또 얘기를 들었다.


맛난 것을 먹이면서 몇 가지 부탁을 했다. 오며가며 ''어머니''에게 인사하기, 온수 많이 받아놓지 않기, 신발 정리하기, 묵학시간에 들락거리지 않기, 음식 나눠먹기( 아침여는 모임에서 알림시간에 알리기), 음식물 찌꺼기 바로 버리기 따위였다. 바람이 엄청 불어 입술이 마르는 날이었다.


화요일이다. 이른 여섯시에 미지가 영상다큐 촬영 때문에 왔다. 어제 승헌이가 자기 전에 여섯 시에 깨워달라 해서 깨웠더니 수림이랑 ''수림이의 하루를 찍는다고 언덕배기 아침이 시끌시끌하다. `지나가는 사람 1`고은이도 덩달아 바쁘고,''지나가는 사람 2''인 나도 빨랫줄에 속옷과 양말을 널면서 프즈를 취했다. 큭큭. 지영이도 오고, 탁발순례를 떠나는 형돈이도 와서 아침밥을 같이 먹었다. 하늘을 보니 구름 하나없이 맑은 날이다. 아이들이 쏴 빠져나가고, 난 다시 아이들 문앞에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집을 나섰다. 골목을 나오면서 냉이풀을 한묶음 뜯어 예쁜 털실로 묶었다. 세리를 만나 전해 주었다. 오늘은 세리 생일이란다. 오늘은 나.화.수가 있는 날이라 모처럼 한가하다. 오늘 저녁은 뭐해 먹을까?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