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10호] 살아가는 이야기 - 현장귀농학교에서 > 인드라망소식지

본문 바로가기

인드라망 아카이브

[소식지 10호] 살아가는 이야기 - 현장귀농학교에서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5:38 709 0
  • - 첨부파일 : 577468149_ca1ac9b2_BBECBEC6B0A1B4C2C0CCBEDFB1E228C0CCC0CEBCAE29.jpg (121.9K) - 다운로드

본문


아직 멀었다!

이인석 (현장귀농학교학생)



새들이 정신 없이 울어댑니다. 따로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이 이 새소리에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됩니다. 도심에서는 자동차 경적소리와 사람들의 재잘거림에 아침을 시작하지만 이 곳은 새소리와 산을 넘어오는 바람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습니다. 어떤 분들은 참으로 여유로운 농촌생활을 상상하시겠지만 저에게는 새들의 재잘거림이 왠지 모르게 불안합니다. 얼마 전에 파종한 콩을 새벽녘에 꼭 파먹는 버릇이 새들에게 있습니다. 힘차게 올라오는 콩의 새싹을 매몰차게 파먹은 흔적을 보면 농촌의 여유로움은 저에게 사치처럼 느껴집니다.


인드라망 현장귀농학교에 참여한지 이제 두 달하고 보름이 조금 지났습니다. 처음 이곳 경북 봉화 춘양에 내려오면서 스스로 마음가짐을 한 것이 있습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어렵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제 내가 평생 가야 할 길이 아닌가? 너무 큰 욕심보다 조금씩 내 몸과 마음을 농부로 만들어가자” 농부가 된다는 것. 그것이 제가 현장귀농학교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에 머물면서 저는 아직도 많은 것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고추와 참깨를 하우스에 심으면서 올해는 공부하고 배운다는 맘으로 작물을 보살펴야지 했지만, 내심 수확하면 얼마나 될까 하며 돈부터 계산하는 못된 습성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종한 싹이 안 올라오고 잘 자라지 않으면 괜히 불안한 마음에 조바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남들보다 앞서야지 잘해야지 하는 경쟁심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러한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밭을 만들고 모종을 심고 파종을 하고 김매기를 하는 것들이 다 힘들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곳에 사시는 어떤 분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농사일을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 작물에게도 영향이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작물을 심고 가꿀 때 즐거운 마음으로 대해야 작물도 그 기를 느끼며 씩씩하게 자라는 것 같다는 말씀이 저에게 뼈아픈 충고로 다가옵니다.


이곳에서 제 농사를 지도해주시는 선생님은 집짓기가 한창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집일에 농사일에 정신없이 바쁘십니다. 하지만 그 분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항상 얘기하십니다. 저도 이 곳에 내려오기 전 생태귀농학교 수업을 들으며 무엇인가 내 손으로 생산한다는 기쁨이 아마도 내 육체의 고단함을 이길 것이라 자신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농사일을 하면서 아직은 그 맘이 생기지가 않습니다. 그냥 힘듭니다. 가끔 꿈에서 삽질과 호미질을 하는 꿈을 꿀 정도로 몸의 피곤함과 아픔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아직도 제가 가진 욕심과 자만, 편리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농사라는 것이 단지 노동이 아닌 삶의 명상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아내가 저를 위해 블러그에 쓴 글 속에 위안을 얻으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봅니다.


“짝꿍이 어머니 생신을 맞아서 서울에 올라왔다가 어제 다시 봉화로 내려갔다.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로 서울 우리 집에 와서 맘 편히 쉬고, 냉장고를 괜히 열었다 닫았다하며 내용물을 확인하는 오랜 버릇을 즐기면서 굉장히 즐거워하는 모습이다. 집에 와서 편안해하는 모습에 한편 기분이 좋다가도 한편 안쓰럽다. 봉화에서 불편하게 살고 있어서 더 서울 집이 편리한지 깨달을 듯하다.


어제 아침에 다시 내려갈 짐을 챙기면서 꼭 군대에서 휴가 나왔다가 복귀하는 기분이란다. 가면 다시 힘들고 고된 생활이 기다리고 있음이 그 시절을 연상시키나보다. 얼마나 힘든지, 또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간 살아오던 습(習)을 버리고 거듭나기 위해 그저 ‘나 죽었네’ 하고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하루를 보내고 있을 그 모습에 마음이 아린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서울에서 편하게 누리고 있는 나는 미안한 마음에 더 정성을 다해 열심히 생활하려고 한다. 짝꿍이 힘든 것에 비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지하철에서 헤어지는데 나도 정말 애인 군대 보내는 심정인지 눈물이 핑 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무엇보다도 불편한 것이 우리의 정신을 깨어있게 한다고 하셨는데, 짝꿍은 스스로 선택한 불편함에서 점점 정신이 더 또렷해지고 있을 것이다. 분명 하루하루 더 맑아지고 있을 것이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