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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0호] 산골에 사는 즐거움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5:39 66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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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 살구 복숭아는 운제 익을거나



요 며칠 아이들 밭에 올라가면 밭둑에 심어져있는 살구나무만 줄기차게 바라본다. 그동안은 무성한 잎사귀에 가려 열매가 달렸는지 안 달렸는지 당췌 보이지도 않았더랬는데, 이놈이 차츰차츰 슬금슬금 노란빛으로 변해간다. 슬쩍슬쩍 주황 빛으로 오렌지 빛으로 아이들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살구 언제 익어? 살구 먹고 싶어!" 꼬맹이 입에 붙은 말이다. 그제던가 해거름에 살구나무 밑 고추 비닐집 문 닫고 나오는 길에 보니 나무 밑에서 꼬맹이 뭘 줍는다. "엄마 살구야. 익었어!" 샘가에서 씻어 벌레 먹은데 후벼 파서 먹을만 한 놈만 줘 봤다, 맛이나 보라고. 참 맛있단다. 그때부터 오매불망 아이들은 살구나무만 쳐다보고 산다. 오늘 복숭아나무 복숭아들이 발갛게 또 변해가는 모습을 아이들이 눈치 챘다. 꼬맹이 발을 동동 구른다. 손이 안 닿걸랑. 올해는 우찌 된거이 복숭아 맛을 다 보게 생겼네? 해마다 벌레 때문에, 비 때문에 얻어 먹도 못했었는데 설익은 놈들이지만 몇 개 따서 복숭아털이 눈이나 살갗에 닿으면 따갑다고 샘에서 씻어줬다. 아그작 아그작 잘 먹는다. 한 손엔 살구 한 손엔 복숭아, 작은 놈 꼬맹이 마당 한 가운데 쭈그리고 앉아 열심히 먹고 있다. 큰 놈은 지가 따 묵겠다고 언넝 가지에서 따가지고 씻어 묵드라.


찧어놓았던 쌀을 다 먹어 또 방아를 찧어야 했다. 옆에서 아이들은 양 손에 복숭아 하나씩 들고 깨물어 먹으며 구경하고 섰고, 할매랑 선녀랑은 방아를 찧었다. 이번엔 완전 현미 말고 ‘오분도’로 찧어보자신다. 너무 쌀이 시커머니 좀 그러신가부다. 그러시라 했다.


오늘 저녁을 뭘 먹을까. 아이들이랑 바구니 하나 들고 산 밑 밭에 갔다. 섬초롱 꽃 한 아름 따고 두메부추 낫으로 베어 왔다. 굵은 햇감자 몇 개 꺼내 와서 감자튀김하고, 고추밭에 가서 풋고추 몇 개 따고, 한 놈은 보리밥으로 즉석 섬초롱꽃초밥 맹글어 묵고 한 놈은 감자 튀겨서 케찹 발라 묵고, 또 한 놈은 풋고추 두메부추 된장 찍어 묵고 참내! 가지가지 취향에다 가지가지 식성에다 가지가지 조리법으로 제각각 저녁밥을 알아서 해묵었다. 이런 집 없을껴! 더 들어갈 배가 없다고 배 두드리며 줄줄이 부엌을 나가드라. 그럼 됐지 머. 그나저나 저 살구 복숭아 채 다 익기도 전에 아이들 입으로 다 들어가겠군. 자두도 아이들 입맛 다시라고 몇 그루 심어두었었는데 처음 몇 해는 잘 따먹었다. 요새는 모든 과실수에 약을 쳐야만 얻어먹을 수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나보더라. 벌레가 먹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자두하나 건질 수 없이 싸그리 병들어, 그 자두나무는 포기하고 다른 자두를 새로 심었었는데 올해는 기대를 해도 좋을는지. 산에 절로 자라는 개복숭아는 탈도 없고 병도 없이 잘만 자라던데 왜 사람이 애써 키우는 과실수들은 저리도 약해빠졌을꼬, 의문이다. 아마도 인간들 욕심 때문에 저항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산골에는 단오를 기점으로 산나물 철을 보내고 서서히 들에 산에 열리는 이런저런 나무열매들에 눈길 손길이 가기 시작한다. 산딸기꽃이 피려고 준비 중이며 개봉숭아가 제법 갓난이 주먹처럼 매달렸으며 뽕나무 오디가 한창이다. 아이들은 심심치가 않다. 학교 끝내고 온 아이들 가방 휙 던져놓고, 어디 뽕나무에 벌레가 많이 없고 오디가 크고 굵은지 잘 찾아다닌다. 뱀딸기 있는 곳엔 뱀 있다고 알아서 슬슬 피해댕길 줄도 알드라. 도랑 가 앵두나무 세 그루 그 많이 달렸던 앵두들은 익기 무섭게 아이들 등쌀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떡버들이라나 보리똥이라나, 가지가지 엄청 달렸던데 떫은 맛 난다고 아무도 손 안 대는데, 니들이 아직 맛을 몰라 그래. 완전히 익으면 고거 참 맛있다고. 아무리 그래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아이들 외면에, 한 줌 두 줌씩 따다가 할매 할배 드시라고 마루에 슬그머니 들여놓아본다.


산골 살아 좋은 거는 머 별거 없다. 아이들이랑 이렇게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어디 뽕나무오디가 따기 좋으니 어디 산딸기가 굵으니 해가며 일삼아 쏘댕기며 찾아 묵는 재미. 밭둑이며 여기저기 심어둔 앵두 자두 살구 복숭아 익기를 기다려 오며가며 일하는 틈틈이 슬쩍 슬쩍 한 개씩 두 개씩 따 묵는 재미. 아이들은 여름이 좋단다. 아무래도 아이들에겐 싸그리한 봄 산나물보다는 먹기 쉽고 맛난 열매 따 먹기가 더 좋은가보더라. 해서 울집엔 에지간한 과실수는 다 심었다. 배 감 사과 앵두 자두 살구 복숭아 개암 매실 대추... 철따라 입 하자는 대로 다 따라 댕기려면 이 방법밖엔 딱히 없자노!!!


<하늘로 구멍 뻥! 하니 난 산골짝 비안곡 나무꾼과 선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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