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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0호] 귀농자탐방 - 양평 김흥수씨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5:42 64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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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이 산을 옮기리라 - 불교귀농학교 1기 김흥수 -

김순정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일꾼)



날이 흐리더니 도착할 때 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표지판도 없는 정류장에 내리니 저 멀리 우리를 마중 나온 김흥수씨가 보인다. 마을로 오르는 길에 저 밭은 누구네 밭이고 지금 무얼 기르는 중이며 이 마을 농사대가는 누구라는 설명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마을 끝, 길이 끊어진 곳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춤하고 있을 때 김흥수씨가 길도 없는 산길을 앞서 걸어 올라간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길도 없는 그 속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곳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김흥수씨의 뒷모습을 보니 마음속에 저절로 한 가지 말이 떠오른다. 도대체 귀농이란 무엇일까.



동네 사람이 찾아준 땅

“여기 보면 말이지, 고추 곁가지를 잘라줘야 하거든. 그런데 손으로 잡아끊으면 고추대가 아무래도 상처를 받는단 말예요. 그래서 귀찮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쪽가위로 깨끗하게 잘라줘야 돼요. 하나를 배우더라도 빨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확하게 배우는 게 중요해요.”


김흥수씨의 설명이다. 아닌게아니라 김흥수씨의 고추밭을 보니 여느 밭과는 다른 것이 간격이 넓직넓직하고 군인들 서열 하듯 정확하게 맞춰 심어져 있다. 이렇게 꼼꼼하게 일하는 폼세는 21년간 직장생활의 영향도 있는 듯하다. 포항에서 21년간 직장생활 중 지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니 그 바지런함과 철저함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철저함과는 다르게 귀농을 결심한 동기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어느날 서울 왔다가 수원을 지나가는 길에 포도농사 짓는 사람들을 보았는데 그 모습이 너무 낭만적으로 보이더란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던 차에 때마침 명예퇴직신청자를 받자 에라 잘됐다 싶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 땅을 사려고 알아보던 동생들에게(물론 농사를 짓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내 땅도 알아봐 달라 부탁해 퇴직금으로 양평에 땅을 마련했다. 어떤 사람들은 귀농지를 찾기 위해 몇 년을 돌아다닌다던데 동네한번 안가보고 덜커덕 땅을 사고 농사에 덤벼들었던 것이다. 귀농자는 고사하고 아는 사람 한명 없는 곳에서 말이다.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참 막막하더라고. 그런데 어떤 아주머니가 확 달려들어서 해보라고, 사람 하는 일은 다 할 수 있다고 해서 달려들었던 거지.”


땅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만 더 해보자.

“농사 지을라고 들어와서 동생들이 알려준 땅을 가봤거든. 그런데 밭이 정리를 해야겠더란말예요. 동네분에게 좀 도와 달랬더니 그분 하는 말이 여기보다 더 좋은 땅이 저기 있는데 자꾸 그러더라고. 난 그 밭이 내 땅 전부인줄 알았거든. 그래서 어디 좀 가보자고 했더니 막 산속을 올라가더니 지금 이 땅도 내 땅이라고 알려주더라고. 그때는 여기가 갈대숲과 잣나무 천지였지. 그 분이 나도 모르던 내 땅을 찾아줬으니 술 한 잔 사라고 해서 술 사드렸지. 허허...”


이렇게 땅을 찾고 그 후 8년 여간 김흥수씨가 농사지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귀농 첫 세대가 겪었을 좌충우돌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농사짓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으니 애써 수확한 고추를 말리다 반 넘게 썩어 버린 적도 있고, 탄저병에 속수무책 당하기도 하고 옥수수를 수확해 껍질을 몽땅 벗겨버려 옥수수알이 다 말라버린 적도 있었다. 하루 종일 고추를 따도 7-8천원 벌이밖에 안될 때는 서글퍼지기도 했다. 길도 없는 700여 평 땅을 혼자서 지게로 짐을 지어 나르며 농사짓기 7년, 작년에야 경운기를 마련했다.


그뿐이랴, 마을에서 환경농업을 하는 사람은 김흥수씨 뿐이다. 동네 동생이며 형님들이 그렇게 농사지으려면 이 마을에서 나가라고 환경농업은 배에 기름찬 사람들이 놀면서 하는 거라는 소리도 들어야 했다. 그렇게 애써 농사지어 욕심을 부릴 만도 하건만 판로가 없어 농협에 일반농산물 가격으로 물건을 내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속이 상했다. 가게 쌀 가격이 내려도 내가 싸게 사먹어 좋기보다, 농사짓는 사람들 뭐먹고 사느냐는 걱정이 먼저 드는 농사꾼이 김흥수씨니 그 우직한 심성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귀농이라는 말도 낯설었던 10여 년 전 귀농을 택했던 분들이 넘어가야 했던 일들이 이런 일뿐이었겠나 싶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리석다 싶을 만큼 우직하게 농사일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것도 남들 하지 않는 환경농업을 말이다.

“불교귀농학교 가서 이야기 들으니까 강사님들이 전부타 환경농업을 해야 된다고 이야기 하더라고. 환경농업 이야기를 들으니 관행농보다 환경농업이 선도농업이란 생각이 들어서 환경농업을 해야겠다 싶었지. 모든 병은 음식에서 온다니 농사꾼은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가진 땅은 잘 지키고 싶어서 남들이 뭐라 해도 이렇게 농사지어요. 이것도 환경운동 아니겠어.”



농사일과 사람을 만나는 일

농사일과 사람만나는 일 중 어느 것이 더 힘드냐고 물어보니 둘 다 힘들단다. 시골마을 텃세가 만만치 않아 타지 사람이 들어와 사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이다. 마을에 처음 들어와서 생겼던 이야기 중 하나.


“어느날 동네 내려가니 형님들이 부르는 거야.(형님이라고 해도 60세는 되신 분들이다) 그러더니 컵 한가득 소주를 부어 주며 마시라는 거야. 아휴, 이렇게는 못 먹는다고 했더니 이런 것도 못 먹으면 동네에서 나가랴. 뭐 그렇게 몇 잔 먹고 취해서 올라오다가 90살 되신 어른을 만났지. 동네 어른한테 뭔 술을 그렇게들 마시냐고 했더니 ‘개들은 아직 어리니 그렇게들 마실 때지’라고 하더라구. 하하. 정서의 차이가 그렇게 나는 거지.”


정서의 차이가 나더라도 마을에서 적응하는 방법이란 별것이 없다. 인사 잘 하고 동네 나가 일하고 있는 사람 있으면 거들어 주며 막걸리 한잔 얻어먹기도 하고, 뭔 일을 하거나 내 욕심 부리지 않고 하다보면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생긴단다. 이제는 김흥수씨 집이 동네 사랑방이 되어 술 좋아 하는 마을사람들이 제집처럼 드나드니 동네 안방마님들에게는 꽤나 눈치가 보인다. 국수라도 삶으면 꼭 먹어보라 부르는 사람도 있으니 이래저래 욕심 없이 일한 덕이 나타나는 것일까.



당당함과 치열함 그리고 여유

이런 저런 고생스러운 점도 많아 혹시 일에 지쳐있지 않을까 싶겠지만 김흥수씨는 힘이 넘쳤다. 김흥수씨기 한해 한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는 농사법을 빼꼭히 적어놓은 몇 권의 노트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 치열함 속에 자기 밭 주변에 반딧불이 날아다니고 메뚜기가 뛰노는 변화가 자기가 하는 일이 틀리지 않다는 당당함을 선물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서 오는 힘과 삶의 꿈틀거림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완성시켜나가는 즐거움이 느껴지는 만남이었다.


귀농해서 정착하기까지 모두들 나름대로 부침을 겪는다.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귀농을 선택했건 아니건 삶을 바꾸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피할 수 없다. 굳이 이 어려움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세상 잣대로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이 속에 숨겨진 우직한 진실성이 언젠가는 커다란 산을 옮기는 힘이 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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