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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1호] 산골에 사는 즐거움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6:19 67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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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위에 뜬 별 하나 세어볼까



지리한 장마끝 어쩌다 보는 초롱초롱 밤하늘, 눈도 따라 초롱초롱해지는 그런 여름 별밤, 마당 평상 위에 대자로 누워 뚫어져라 하늘만 바라봐여. 요새 의외로 모기는 별로 없네. 낫으로 밭둑 쑥대궁 쓱쓱 베다가 불 놓아도 되지만, 워낙 연기를 싫어라 하는 탓에 그냥 모기 놈한테 인심 써가며 헌혈하고 만다카이. 가끔 운 억시게 나쁜 모기놈 골로 보내가며.


요즘 시절이 하수상하야 들에 풀이 장난이 아니여. 어쩌면 좋을라나. 올여름 비가 징그럽게 퍼부어 논둑 밭둑 할 것 없이 온통 풀 천지인데, 어디부터 신경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말다. 낮에 비가 잠깐 그쳤길래 웬일이냐 싶어 언넝 낫 들고 밭으로 쳐 올라갔었지. 논둑엔 차마 못 가겠더라고. 논둑이 푹푹 빠져서 논둑 무너질까봐. 벌레들도 사정 안 보고 덤벼드는 통에 긴팔 긴 옷에 비옷까정 떨쳐입고 낫질을 한다. 은근히 구름 낀 날인데도 쪄죽을거 같다. 풀도 미끄럽고 손도 미끄러워 낫이 잘 안 드네. 걍 손으로 쥐어뜯다가, 낫질을 하다가, 뽑다가, 별 일을 다 해본다.


요즘엔 바랭이가 대세다. 징글징글하다. 이제 피도 그 뿌리가 엄청 박혔다. 포기 하나가 거의 한 평 정도를 차지한 듯 싶은 그 놈도 소름 돋는다. 덕분에 방동사니나 쇠비름은 머 쪼매 예쁘게 봐 넘길 수 있을 정도다. 참비름이던가 이놈은 어릴 때는 하늘하늘 연하더이만 요새 좀 빗물 빨아 묵고 컸다고 대궁이며 뿌리가 겁나게 자리 잡혔다. 이놈 뽑을라면 엉덩방아 몇 번 찧어야 하느니. 차라리 낫질을 하고말지 싶어 낫을 갖다 대지만 나중에 이놈 뿌리에서 또 싹이 올라오는 걸 볼작시면 뒷골이 바짝 땡긴다카이. 어떻게든 뽑아번져야 속이 씨언한 놈이다. 가만 냅뒀다간 씨앗들이 징글맞게 달린다고오.


참나물밭 풀들을 일단 정리해놓고 호박하고 오이를 심어놓은 비탈을 둘러본다. 장마에 죽어나는 건 이런 연한 작물들이다. 상추는 진작에 녹아 없어졌고 배추도 작살이 났다. 유월 콩들이 깍지에 들어있는 채로 싹이 나버렸다. 콩밭 고랑엔 바랭이가 진을 치고 있고. 이런저런 풀들을 뽑다가 낫으로 치다가 먹을 만한 풀을 주섬주섬 골라놓는다. 참비름이랑 쇠비름은 푹 데쳐서 된장 고추장에 쓱쓱 버무려놓으면 그런대로 찬물에 밥 말아 묵을만하다. 작은 놈이 좋아라 하는 나물이라 어떨 땐 일삼아 따로 뽑기도 하는데, 요새 이넘들 비름이 얼매나 살이 쪘던동 ‘통통’이 아니라 ‘퉁퉁’불었드라. 정구지 밭은 몇 번 메었던고, 셀 수도 없네. 먼 밭에만 맘을 쓰고 돌아댕겼더이 집 옆 텃밭엔 풀이 그득이네. 뱀들이 눈에 안 띄는 것이 이 무성한 풀 땜에 그럴 껴.


일하다 말고 찬거리 할 거이 없나 둘레둘레 밭을 다시 한 번 한바퀴 돌아보니. 호박도 장마철이라 안 달리고, 오이도 꼬부라져 할미오이뿐이고, 고추는 슬슬 약이 올라 맵기가 눈물 쏙 빠지겠고, 이렇게 헛일삼아 밭을 아무리 헤집고 돌아 댕겨도 먹을 것이 마땅찮을 땐 천상 고구마 밭엘 가야한다. 고구마 원순 곁으로 가지 친 놈들 뚝뚝 불개 거둬다가, 통통한 놈들만 골라 따서 껍질 벳겨 데쳐 묵으면 아작아작하니 요즘 같은 철에 아주 훌륭한 반찬이 되지. 또 연한 꼬랑댕이 순을 따로 따서 양념된장에 무쳐먹으면 그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라니. 요새 고구마순은 잎도 억세지 않아서 같이 먹어도 된다구. 이런저런 개장국에 같이 넣어도 아쉬운 대로 나물 건건이 구실을 충분히 해주대.


참나물이랑 쑥부쟁이랑 두메부추랑 속새랑 씀바귀랑 뜯어 쌈거리 하고, 산 밑 비탈 샘등에 무성한 머구줄기 낫으로 쳐 베다가 데쳐 들깻가루 풀고 국간장 간봐가며 자작하니 끓여놓으면 머 딴 반찬 생각 안나. 나무꾼이 제일 좋아라 하는 밥상이지. 아이들은 표정이 좀 수상쩍지만. 근디 어째 첨엔 잘 나가다가 결국엔 묵는 야그로 끝나버리네……. 쩝!


<하늘로 구멍 뻥~ 하니 난 산골짝 비안곡 나무꾼과 선녀네>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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