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11호] 귀농자탐방 - 횡성 한영미님 > 인드라망소식지

본문 바로가기

인드라망 아카이브

[소식지 11호] 귀농자탐방 - 횡성 한영미님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16:26 666 0
  • - 첨부파일 : 2105761435_d75e992f_BBECB8B3C1FD_B3BBBACE.jpg (106.0K) - 다운로드

본문


일당백 그들의 삶! - 횡성 한영미 회원

김순정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처) 



이번 달은 서울 가까이 횡성으로 나들이를 했습니다.


가는 날이 때마침 복날이라 폭 고아놓은 닭 한 마리 복날잔치로 후하게 대접받았습니다. 고기 옆에 빠질 수 없는 달지근한 막걸리도 한 사발 마셨습니다. 시골 살이 이런 맛에 산다고 말하고 싶지만 장마로 피해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마냥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찾아간 한영미씨 댁은 큰 피해가 없답니다. 그래도 한 식구처럼 지내는 여성농업인센터 회원 가족이 장마피해로 초상까지 치르는 등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농활에서 귀농까지

한영미씨는 농사꾼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고 횡성여성농업인센터장입니다. 한영미씨가 횡성으로 귀농한 것은 92년, 14년 전이네요. 다 아시겠지만 그때는 ‘귀농’이라는 말이 없었던 시절입니다. 귀농이라는 말 대신 ‘농촌투신’ 이런 말이 있었던 시절이지요. 농촌투신이란 말을 들으면 알겠지만 논농사 밭농사 보다 아스팔트농사, 농민회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던 때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귀농처럼 생태적인 삶,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 대안적인 삶이 아니라 가장 낮고 어려운 곳에서 그들과 함께 새 삶을 일구겠다는 의지가 바탕에 깔린 귀농이었지요.


이정도 말하면 눈치 채셨겠지만 한영미씨 부부는 소위 말하는 운동권 학생들이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농활오던 지역이 횡성이라 여기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고, 남편도 그 과정에서 만났답니다. 저는 한영미씨와 남편 구영석씨의 만남을 ‘약속과 편지가 맺어준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남편인 구영석씨와는 학생 때 농활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냥 아는 사람으로 지내다가 졸업하고 농촌에 갈 준비모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후에 1년여를 편지만 주고받았다고 하네요.


“편지만 주고받고 몇 번 만나지도 못했어. 두세 번 만났나? 결국 연애 한번 못해보고 결혼한 거야. 그래서 연애 때 했어야 할 싸움을 결혼해가지고 지지고 볶고 하느라고 힘들었지.” 


이렇게 말해도 연애 한번 제대로 안하고 편지만 주고받다 결혼했다니 신기합니다. 그게 가능한 건 서로에 대한 믿음과 신뢰겠지요.

서울에서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이 농사짓겠다고 하니 집안에서 반대할 만도 하건만 ‘경찰서 들락거리느니 농사짓는 게 좋겠다’는 부모님의 현명한(?) 판단에 무사히 횡성으로 내려올 수 있었답니다.



여성농업인센터에서 꿈꾸다

한영미씨의 하루일과를 보면 횡성여성농업인센터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센터에 들어가면 한쪽에 ‘배워서 남 주자’라는 붓글씨가 크게 써져 있습니다. 내 입신양명이 아니라 남을 위한 배움이라니,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요게 바로 여성농업인센터 아지매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여성농업인센터는 2002년 나라에 사업계획서를 내서 시작하게 된 지역 일이라고 합니다. 농촌 사람들도 도시사람 못지않게 교육과 문화에서 소외받고 싶지 않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서 여성농업언센터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공부방과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여름에는 각종 캠프도 진행합니다. 엄마들과 한지공예도 하고 옷 만들기도 하고 대체의학도 서로서로 공부합니다. 한지공예를 배워 자격증까지 딴 사람도 몇몇 된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위해 뜸도 떠드리고 관절염 예방 체조도 같이 합니다. 이쯤 되면 웬만한 동네 문화센터 부럽지 않을 정도지요. 덕분에 여농업인센터에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엄마들이 북적대며 들락날락 합니다.


요즘에는 생활협동조합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관행 농은 물론이고 환경농업 하는 농민들도 생활을 잘 들여다보면 친환경적으로 사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 농민들도 유기농먹거리, 친환경 생활용품을 쓰면서 좀 더 생태적으로 살아보자는 이유가 한가지구요, 또 다른 이유는 농민과 소비자가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여성농업인센터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농민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러나 지금 휘청거리는 농촌문제가 농민들만 가지고 될 문제인가요. 농민과 소비자가 같이 풀어야 할 문제라 횡성지역에 있는 소비자와 함께 만나는 자리를 고민하면서 생활협동조합을 만들려고 노력중입니다. 가까이 있는 원주생활협동조합이 훌륭한 모델 겸 지원자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원주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같이 만든 생활협동조합으로 한영미씨는 물론이고 횡성농민회에서 친환경농업하는 분들은 대부분 원주생협으로 생산물을 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여성농업인센터 회원들끼리 생활 재를 주문해서 공동으로 받는 초보적인 형태지만 언젠가는 횡성에도 멋진 생활협동조합이 만들어지겠지요.


그런데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여성농업인센터가 국가사업에서 지자체사업으로 바뀐 뒤로 계속 보조금을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합니다. 지자체가 마음먹기에 따라 지원금이 끊길 수도 있는데 그러면 센터를 유지하기가 힘들어 집니다. 물론 ‘방과 후 학교’나 어린이집을 운영비까지 계산해서 비싸게 받을 수도 있겠지만 헐거운 농민들 주머니 사정상 쉽지 않은 일입니다.


농촌 살린다고 몇 백억씩 쏟아 붓는 돈이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이런 곳으로 잘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농촌을 살리자면 사람들이 농사짓고 살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언제 농사짓지 않으면 보조금을 준다는 그런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까. 누구 말대로 농사지을 수 있는 판을 깨지 말아달라는 게 농민들 바램 인데 몇 백억 들어와 봤자 거의 농사 판을 깨는데 쓰이고 있으니 이게 살리자는 건지 죽이자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관계로 만들어지는 삶

한영미씨는 얼마 전에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아니, 새로 지었다기보다 조립식 작업장을 집으로 꽤 멋지게 리모델링했습니다. 농사짓는 포도하우스와 논 사이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집입니다. 문전옥답이라고 했는데 집만 나서면 바로 앞이 논밭이니 이정도면 정말 근사하죠. 그런데 이 집을 인연이 있는 목수가 지어줬다고 합니다. 이러니 꼭 거저 얻은 복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횡성 내려와 남편과 함께 농민회 활동하며 여성농업인센터에서 북적대며 보낸 시간이 쌓아놓은 인연이 겁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돈으로 주고받을 수 없는 관계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농촌에 사람이 많아지면 학교도 늘어나고 곳곳에 시장도 늘어납니다. 꼭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깃들어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활기도 생기도 다른 사람도 내려와 살기가 쉬워지겠지요. 가난하지만, 돈으로 거래되는 양은 적지만 우리생활을 돈이 아닌 관계들로 더 많이 해결할 수 있다면 농촌도 살만하지 않을까요. 농사는 돈보다 정성으로 지어야 한다는 한영미씨의 말처럼 ‘배워서 남 주자’는 횡성 아지매들의 말처럼 말입니다.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