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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2호] 산골에 사는 즐거움 - 니그카이 내그카지 니 안그카면 내그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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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27 16:38 65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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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그카이 내그카지 니 안그카면 내그카겠나!

산골아낙 



한 달여 비가 징하게 퍼붓다가 한 달여 비가 징하게 안 온다. 머 이런 날씨가 다 있노 말이다. 성질이 있는 대로 나서 말간 하늘보고 “니 그 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면 내 그카겠나!” 라고 허구헌 날 주구장창 삿대질 하는 선녀를 보다가 어느 정신 있는 이가 조용히 한 말씀 해주시드라. “이건 인간이 하늘한테 할 말이 아니라 하늘이 인간한테 할 말인거 같은데예.” 라고, 맞다. 그 말이 맞다카이. 내 모리는기 아이라 알면서도 한번 해봤다 아이가.  하도 속터져서.


깨농사 고추농사 올해 흉작이란다. 초장에 7천원을 줘도 고추가 없다고 장날마다 장꾼들이 한마디씩을 한단다.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고추들이 속을 들다보면 말캉 다 보잘것없다. 깨사 머 시꺼멓게 다 타버린지 오래고. 그나마 운 좋은 이들만 아직까지 퍼렇게 깨가 달려있다카던데. 아직 두고 봐야지 몰겠다 마. 한해 농사는 가을 수확 철에 다 거둬서 곳간에 쟁여놓아야 큰소리칠 수 있단 말이 딱 맞는 말이다.


한여름 땡볕에 입맛 잃고 기력 잃고 무기력하게 널브러져 있기 쉬운 이런 날씨에는 우예됐던동 먹는 걸로 힘써야 한다. 들에서 소금땀 비지땀 다 짜내고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말끔해진 얼굴을 하고 들어와 먹을 걸 찾아보면 딱히 찬물밖엔 없는데, 어쩌냐. 그렇게 낭패만나기 싫어 들일 끝내며 들어올 적에 미리 이리저리 먹을 걸 둘레둘레 찾으며 들온다.


밭 자투리에 심은 오이 밭에 가서 늙은 오이 하나 건져와 오이냉채 맹글고, 비탈에 심은 호박덤불 뱀 쫓아가며 휘휘 걷어 내가 애호박 운 좋게 따와 들기름에 썰어 볶고, 다싯물 후닥닥 내어 국시 삶아 말아 묵으면 한여름 점심 한 끼 그런대로 때울 수 있다네. 밭고랑 풀 잡다가 이런저런 풀 반찬 해묵는 것도 도가 터서 이젠 물려버렸다카이. 그럴 땐 온통 콩가루 집안을 맹글어야한다. 들깻가루도 좋지만 고소한 맛이 강해 금방 질리므로 콩가루를 번갈아 해묵으면 훨 낫다카이. 콩가루로 뭘 해묵는다고?


배차 열무도 여름철에 묵을 만 하지만도. 묵은 지만치 입맛 땡기는 것이 있을까. 팔팔 끓인 물에 콩가루  넉넉하게 풀고 구수한 맛이 나도록 익힌 다음 묵은 지를 넣어 끓이면 머리 맞대고 먹는 얼라들 박치기 하는 줄도 모르고 밥 한 그릇 훌 뚝딱이다. ‘넘의 살’을 좀 넣으면 훨 좋다하나 굳이 안 넣어도 누가 뭐라 안 하드라. 두부가 별거더냐? 순두부가 별거더냐? 두유가 별거더냐. 콩가루만 있음 두루두루 다 해결된다. 콩가루물 만들어 냉콩국시 시원하게 말아 묵고나면 한더위 잠깐 잊을 수 있고 배차 뚝뚝 손아귀로 잘라 끓이다가 콩가루 풀어 익혀 먹으면 없던 입맛도 살아 돌아오더라.


일일이 장봐다가 음식 장만할 수 없는 바쁜 농사철, 산골 살아 오일장에 가봤자 한나절 걸려 몸살 나는 이런 산골짝에선 들에 절로 나는 나물들 뜯어다 콩가루 묻혀 쪄 묵으면 머 별 반찬 필요 없다더라. 심심풀이삼아 텃밭에 정구지 한 평 갈아놓으면 정월에서 구월까지 뜯어묵는다해서 정구지라카던가? 정구지랑 또 이른 봄철 마늘잎 뜯어다 콩가루 묻혀 밥 위에 찌면 어느 뉘가 그새 후딱 다 쳐묵었노, 동작 굼뜬 이는 젓가락 들고 헛손질할 만치 이뿌지. 


날이 말이 아니다. 소낙비라도 좀 와야 살겠다. 온 여름내 입맛 없다고 묵는 타령만 해댔더이 몸까정 말이 아니게 둘둘거린다. 비가 오던 안 오던 농사일은 기다려주지 않고 오늘도 몸속의 소금물 좀 빼내야 쓰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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