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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2호] 인드라망이 만난 사람 - 봉은사가 거기 있는 까닭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2:42 66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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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가 거기에 있는 까닭 - 봉은사생협을 다녀오다

김순정



20여년 넘게 살아온 서울이지만 아직도 강남이나 역삼동 고층빌딩 속을 헤매고 있노라면 딱딱한 플라스틱 위를 걸어가고 있는 듯 하다. 손대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것보다 인공적인 것이 더 자연스러운 그곳. 한순간이라도 멈춰서면 뒤쳐진다는 조급함이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자랑스럽게 걸리는 곳에서 봉은사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일까.


삼성 역에 내려 무역센터를 지나 봉은사 앞길에 놓인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나는 항상 이 부조화가 마음에 걸린다. 이 생소한 이질감을 횡단보도 하나로 가볍게 건너갈 수 없기에 ‘저 절은 왜 저기에 있을까’ 하는 질문이 통과의례처럼 따라붙는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까.


봉은사생협에서 현선행보살님을 찾으니 부도밭 앞에 가보란다. 나가보니 부도밭 앞 길목에서 잡초를 뽑고 계신다. 오늘이 한달에 두 번 자원봉사자들과 절 경내 청소를 하는 날이라 이렇게 일을 하고 계시단다. 아침나절인데도 그이의 옷은 벌써 땀으로 축축하다.


“봉은사생협이 99년 7월 13일 날 생겼어요. 그 전에 봉은사에서 생태학교라는 걸 했는데 그걸 계기로 ‘다솜회’라는 모임이 만들어 졌어요. 사찰경내도 청소하고, 그때부터 분리수거를 얼마나 철저히 했다구. 난지도 방문해서 침출수도 보고 쓰레기도 봤는데 20년 전 미원봉지가 날짜도 선명하게 그대로 남아 있더라구. 그때부터 시작 된 거죠.


그 뒤에 인드라망하고 연락이 닿았는데, 그땐 인드라망이 아니고 불교도농공동체운동본부였나? 그렇게 인연이 되서 실상사에 교육을 받으러 갔어요. 같이 갔던 사람들이 생협 해보자고 이야기 나와서 이렇게 만들어지게 된 거예요.”


날짜도 잊지 않고 또박또박 말씀해 주신다. 99년 이라면 생협이 생긴지 어언 7년의 세월이 흐르고 있는 셈이다. 처음엔 적자도 나고 물건도 받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운영도 재정도 안정기에 들어서고 있단다. 이렇게 생협이 자리 잡기까지 든든하게 지원해준 큰 버팀목이 있으니 바로 주지스님과 자원봉사자들이다. 초기 생협이 만들어 질 때 주지스님의 노력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터였다. 생협매장 자리를 내어주고 인테리어 공사며 물건판매까지 그 노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한번은 실상사에서 도라지가 올라왔어요. 까지도 않은 건데 크기가 손가락 만해. 그거 까기 귀찮아서 누가 사가겠냐고, 그래서 안 팔리고 매장에 쌓여있는 거예요. 스님한테 이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스님이 보살님들에게 말한 거야. 사찰에서 지은 좋은 먹을거리가 있는데 우리가 사야 하지 않겠냐고. 결국 나중엔 없어서 못 팔았다니까.”


절이라 스님말씀이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도 마음내지 않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덕분에 봉은사는 친환경공양미 협약식도 가장 먼저 한 사찰이 되었다.


또 하나의 숨은 버팀목은 바로 자원봉사자들. 봉은사 신도회에는 다른 사찰에는 없는 생협부장이라는 자리가 있다. 이 생협부장님이 18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생협을 물신양면 같이 꾸려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오전이나 오후에 잠깐씩 나와 같이 하는 것이지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단다. 서로 형님 아우하며 풀 매러 가는 사람들에게 신발과 옷을 챙겨주는 모습을 보니, 마음으로 몸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구나 싶었다.


사찰마다 생협이 하나씩 생기고 친환경공양미도 올라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하는 현선행보살님. 한미FTA로 위기라지만 사찰에서 지역 농민들 쌀을 공양미로 소비해 준다면 농민도 살고 사찰도 지역에서 든든하게 뿌리 내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이야기 한다. 


그이의 바람대로 사찰들이 생태사찰로 한걸음씩 나아가기 위해서는 스님들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단다. 불자들이 앞장서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도시 한가운데서 청정한 연꽃을 피워내는 일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원래, 연꽃은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 더 아름다운 법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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