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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지 12호] 농장 소식

인드라망사무처
2022-11-27 22:49 64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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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암 가는 길

 

 

실상사에 딸린 작은 암자을 오르기 위해 일요일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호젓한 산길을 요리조리 올라가던 길,

상쾌한 아침공기에 일주일간의 피로가 싹 달아나는 듯 기분이 좋다.

간간히 부지런한 이들은 진작부터 암자의 달디 단 물을 챙겨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벌써 100일,

찔레꽃이 한창이던 5월 초순에 왔다가

지금은 곱디고운 해바라기

구름 사이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개천가에 줄줄이 피어있다.

입추가 지나도 한여름이다.

써레질, 모내기가 한창이던 그때,

산내 벌판으로 쏟아져 나왔던 이들은 쨍-한 한낮의 햇살 때문인지

이제 모두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개 혓바닥 날름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몸이 힘들면 차라리 마음은 평온하였나 보다.

몸이 되면 차라리 잠이 잘 왔나보다.

몸이 쑤셔 이리저리 뒤척이다보면 새벽은 눈뜨면 왔었는데,

몸이 익숙해지고 마음이 게을러지니

쓸데없는 곳에 눈이 가고

쓸데없이 마음을 쓰고

쓸데없는 생각으로 뒤척이다 부은 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게 되는데...

 

작년 5월 귀농학교를 졸업하고 집짓기네 탐방이네 하며 천방지축으로 지내다가, 다시 도시로 리턴즈를 생각했다가, 또다시 여기 실상사농장을 선택했을 때는 지구를 살리겠다고 덤비던 나로부터 내 한 몸 비빌 둔덕을 찾는 나로 돌아섬이었다. 차라리 승천이나 해버릴 것을 하늘과 땅의 어디쯤에서 내려디딘 땅은 부드러움도 아니요, 낭만도 운치도 그 무엇도 아닌, 하루 세끼 밥 한 그릇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음을...


약수암 맑은 물을 표주박에 담아 맛있게 먹어본다. 그리고 저 건너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지리산 자락 어느 이름 모를 봉우리도 쳐다본다. 아침 안개는 벌써 걷혀 있다. 발끝에 차이는 작은 돌멩이들이 길섶 들풀 사이로 사라지고 미끄러지듯 서둘러 내려오는 산길엔 아직도 서늘한 아침 기운이 남아있다.


내일(8월 중순)부터는 가을 배추갈이에 바빠질 것이다. 로타리도 치고 밑거름도 충분히 줬으니, 한편에선 모종을 키울 것이고 또 한편에선 두둑을 만들어 멀칭도 할 것이다. 고추는 고추대로 수확하여 말리기를 예닐곱 번 반복하여 통고추 상품으로 팔릴 것이고, 그 다음엔 마을 어른들 말씀처럼 백일홍이 세 번 피었다 지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가을걷이가 시작될 것이다.


봄 일이 그렇듯 가을일도 만만치 않을 것이지만, 일이 고단하고 관계가 버거울 때면 매양 주절거리는 말이 있다. 시골 일이 다 그렇지,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지금까지 실상사 농장 자원봉사 황대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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